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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Dec 26. 2021

일탈

강남 외출과 영화 <피부를 판 남자>

꼬박 이틀 동안 바빴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서둘러 겨우 제때에 맞춰 마무리합니다. 파일을 보내고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곧바로 영화 예매 사이트에 접속합니다. 며칠 전부터 별러 온 영화를 찾아갑니다. 남은 좌석은 3개. 잽싸게 예매하고 출발합니다. 


상영관은 코엑스몰에 있습니다. 전철에서 내려 지하도시를 통과합니다. 수많은 가게가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눈 닿는 곳 어디든 세련되게 빛납니다. 은은한 조명 덕분인지 살갗에 닿는 공기는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바닥에는 티끌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쓸고 닦느라 하루 종일 진을 뺐을 전동 청소차는 모퉁이 곳곳에서 달콤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마스크 탓에 확인할 순 없지만 코를 거쳐 폐로 들어오는 공기 역시 맑고 깨끗할 게 분명합니다. 땅속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를 유지하자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내질러야 할까 잠깐 궁리 하다가 집어치웁니다. 


옷과 액세서리 코너를 지나 식당가에 접어듭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음식 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치즈의 강을 건너면 마라 향이 따라붙고 이어서 가쓰오부시 국물이 코를 자극합니다. 어느 향도 넘치게 자기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전체 속에 자신을 맡겨 둘 뿐입니다. 지하도시 식당가에서는 조화로운 코스모폴리탄이 이미 완벽하게 구현됐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요란하지 않고 밝으면서도 우아한 거리를 걸어갑니다. 들뜰 법도 한데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아주 오래전이긴 하지만 분명 왔던 공간입니다. 그런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언제쯤이었는지 그리고 어땠는지 도대체 까마득합니다. 그만큼 어색합니다.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기분입니다. 


파스타가 입에 맞지 않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글로벌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어렵사리 들어간 식당에서 고민 끝에 알리오올리오를 골랐습니다. 조리법이 간단해 집에서 몇 번 만들어 먹은 뒤로 내내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고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이태리 광부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는 말에 묘한 동지 의식이 발동한 것도 사실입니다. 


올리브오일과 통후추, 편마늘이 소란스럽지 않게 어울리는 게 포인트입니다. 식당에서 받아 든 접시는 멋스러운 플레이팅에 비해 맛은 기대에 못 미칩니다. 감질나는 오일 향에 마늘은 한두 조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왕창 때려 부은 듯한 후추는 다른 향을 모두 집어 삼켰습니다. 매운 걸 힘들어하는 탓에 먹는 내내 연신 물을 들이킵니다. 


사무실에서 나올 때부터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뭔가에 몰입하면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늘어납니다. 평소와 다른 집중도가 며칠 이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 기운이 빠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맥이 풀린 채 들어선 낯선 공간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었으니 어깨가 처지고 발걸음이 질질 끌리는 건 당연합니다.




얼마만의 극장 나들이인데,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억울함을 떨쳐버리려고 일부러 아닌 척 해봅니다. 왼발과 오른발 사이의 폭을 최대한 벌리면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양새가 됩니다. 어깨는 앞뒤 진폭을 잔뜩 키워 건들건들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 상태에서 뒷무릎을 완전히 펴지 않고 걷습니다. 말미잘처럼 흐느적거리는 주유소 풍선인형 같아 보이면 성공입니다. 


휘적휘적 펄럭펄럭 온 몸을 나대며 극장까지 이어진 긴 회랑을 걸어갑니다. 안락하고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에서 분리되어 혼자 에어캡슐에 들어앉은 것처럼 딴 세상을 걷습니다. 일행이 있었다면 꼴불견인 꼴에 기함을 하고 도망치거나 박장대소하며 웃겠지만 혼자라 다행입니다. 지나가는 사람 어느 하나 이 기괴한 몸짓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눈길한번 건네지 않습니다. 


극장에 들어서서 의자 깊숙이 몸을 찔러 넣습니다. 낯선 행성에서 귀환한 우주비행사처럼 비로소 긴장에서 풀려납니다. 기묘하고 우스꽝스런 걸음걸이가 생기를 불러온 게 분명합니다. 주구장창 산동네 이야기만 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강남 한복판으로 감행한 일탈이 마침내 안착합니다.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모처럼 동업을 하는지 유쾌한 흥분으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영화 <피부를 판 남자> 포스터, from 홍보 사이트

영화는 <피부를 판 남자>입니다. TV에서 소개하는 걸 보고 개봉하는 날에 맞춰 가고 싶었습니다. 방송에서 제시한 키워드는 난민, 예술의 경계, 자본의 힘, 인간 존엄성입니다, 실제로 극장에서 본 영화에는 맵싸한 주제들이 줄줄이 엮여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하나하나 묵직한 여러 이슈들을 작은 소쿠리에 막 욱여넣은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난민’이라는 살 떨리는 단어가 그저 소품으로 사용됐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악마 같은 예술가*” 제프리가 주인공을 종신계약의 멍에에서 해방시키는 과정은 너무 갑작스러워 좀처럼 설득되지 않습니다. ‘작품’의 파손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고, ‘작품’을 경매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노골적으로 던지지만 임팩트는 제한적입니다.


알리오올리오에서는 후추 향이 오버한 나머지 다른 재료가 모두 묻혀버렸습니다. 영화는 좋은 재료를 모아놓긴 했는데 제대로 버무리지 못한 느낌입니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데다 어느 하나도 자기주장을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합니다. 홍보 사이트는 ‘자유, 돈, 명예’를 구호고 내걸고 있지만 영화관을 나설 때는 왠지 공허합니다. 


인상적인 건 소품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 어디엔가 배치되어있는 공작새와 고양이는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권에서 중요한 문화적 아이콘일 것 같습니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감시하기 위해 주인공을 계속 따라다니는 경비원의 모습은 개인의 삶을 포박한 자본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울이 있습니다.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하는 거울은 아웃포커싱된 화면처리와 함께 혼란스럽고 분열된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냅니다.


집으로 가기위해 전철을 탑니다. 잠시 일탈했다가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어마어마한 이슈가 배경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등짝을 판 시리아 청년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고, 등짝을 산 악마 작가는 천사가 되어 그 과정을 돕습니다. 둘 다 처음 가본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고 온 것처럼 가볍게 처리되었습니다. 영화가 동력을 잃고 싱겁게 느껴진 건 일탈의 무게와 원상회복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 '악마같은 예술가'는 영화 홍보 사이트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 이 작품은 살아있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 

자유, 돈, 명예를 드립니다! 당신의 피부를 팔겠습니까? 


자유, 돈, 명예를 원한 `샘`은 악마 같은 예술가 `제프리`가 던진 계약서에 서명한다. 

계약은 바로 그의 피부에 타투를 새겨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평생 전시되는 것!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과 5성급 호텔, 그리고 톱스타급의 인기까지!

타투 하나로 180도 바뀐 인생을 즐기던 `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제프리`에게 팔아 넘긴 건 단순히 피부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알리오올리오, Photo by 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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