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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Feb 10. 2022

풋내기

원두와 옥수수, 그리고 우물에서 숭늉찾기

1. 언더 디벨롭     


여러 해 동안 커피를 직접 볶고 있습니다. 통돌이 로스터에 생두를 넣고 10분 정도 강한 불로 굽다가 꺼냅니다. 가스 불을 끄고 원두를 쏟아부을 때는 늘 기대와 긴장이 교차합니다. 매캐한 연기 속에 미간을 찌푸리며 원두를 대면합니다. 열에 한두 번 정도는 만족스럽고 나머지는 아쉽습니다.


아쉬운 경우는 대부분 너무 덜 볶여진, 이른바 언더 디벨롭입니다. 커피 맛 좋다는 게 뭔지는 모르지만 나쁜 건 잘 압니다. 덜 볶인 커피는 풋내가 나고 신맛이 강합니다. 누구는 동전 핥을 때처럼 아린 맛이 난다고 합니다. 나나 아내나 좋아하지 않는 맛입니다. 반대로 배출 타이밍을 너무 늦췄을 때는 까맣게 타버립니다. 쓴맛이 강해 먹기 힘듭니다.


로스터는 멸치국물 낼 때 쓰는 스테인리스 통에 모터를 연결해 만들었습니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지만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오로지 시간과 소리로 배출 타이밍을 ‘결정’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으니 조급하고 조급해지다 보니 대부분 빨리 꺼내고 맙니다. 숯 검댕보다는 덜 익은 게 낫다고 봐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된장국 싱거운 건 소금을 넣으면 되지만 덜 볶인 커피는 안타깝게도 수리가 안 됩니다. 고쳐보겠다고 통에 다시 넣고 더 돌려 보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색깔은 제법 맞출 수 있어도 가열과 냉각이 반복되는 통에 일찌감치 날아간 풍미는 되살리지 못합니다. 한동안 입에 안 맞는 커피를 마셔야 합니다.

지난 주말, 커피를 볶았습니다. 이번엔 작정하고 덤볐습니다. 연기와 파핑 소리와 시간과 숨 막히는 한판 씨름을 합니다. 걷잡을 수 없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콩 터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텼습니다. 기 싸움하는 신혼부부 마냥 긴장된 몇 초가 흘렀습니다*. 드디어 불을 끄고 개봉합니다. 휴! 인내한 대가로 맞춤한 빛깔의 원두를 얻었습니다. 이제껏 먹어온 설익은 커피를 보상받는 기분입니다.


* 경험에 의하면 3~5초 정도면 결과물이 크게,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로스팅 막바지에 이르면 3~5초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2. 풋강냉이     


옥수수를 좋아합니다. 오래전 얻어 온 한송이를 종자 삼아 해마다 대를 이어가며 심습니다. 밭에서 꺾어 바로 삶아 낸 옥수수는 향긋하고 찰집니다. 뜨거운 김을 불어가며 조심스럽게 한알 한알 빼서 씹으면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손안의 뜨거움도, 여름 더위도 단박에 잊을 만합니다. 소금이나 설탕 같은 감미료를 넣지 않아도 맛있습니다. 아니, 깊은 맛을 보려면 아무것도 넣지 않아야 합니다. 때때로 옥수수를 건져 내고 난 국물을 마셔보는데, 혀끝에 전해지는 은근한 맛은 극세사 천이 피부에 닿을 때처럼 기분 좋게 만듭니다.


맛있는 옥수수지만 매번 맛있는 옥수수를 손에 쥐는 건 아닙니다. 원두와 마찬가지로 때가 문제입니다. 수염이 마른 뒤에 따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좀체 맞추질 못합니다. 물기가 빠져 거뭇해진 수염을 보고 ‘이 정도면 됐겠지’하고 꺾는데 덜 여문 게 많습니다. 껍질을 헤집어 속을 들여다보고 따도 같은 실수가 이어집니다.


장거리 주말 농의 한계가 한 몫 거듭니다. 조금 더 두면 딱 맞게 익겠는데, 어쩔 수 없이 따는 경우입니다. 도시에 머무는 동안 이빨조차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해져 버리는 것보다는 덜 익었더라도 먹을 수 있는 걸 선택합니다. 알이 빽빽하게 박힌 강원도 찰옥수수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는 물렁해서 오히려 좋다지만 나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잘 여문 옥수수의 꽉 찬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가을걷이 때 일입니다. 마지막 옥수수를 밭에 남겨 두고 우려하던 일이 생겼습니다. 계획이 틀어져 주말 시골행을 한 주 건너뛰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옥수수는 돌멩이처럼 딱딱해져야 합니다. 씨앗으로 쓰거나 겨우내 말려 뒀다 뻥튀기로나 먹을 수 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삶아 본 옥수수는 최고였습니다. 처음 껍질을 씹을 때 톡톡 터지는 식감은 맹랑했고, 속살은 찰떡만큼 쫀득했습니다, 단맛은 더욱 깊어져 그윽했습니다. 달리 어쩌지 못해 내쳐둔 게 가장 잘 지은 농사가 되었습니다.

주말, 커피를 볶고 난 뒤였습니다. 난로 옆에 앉아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언 몸을 녹이다가 옥수수가 떠올랐습니다. 삶아 얼려두었던 옥수수를 꺼내 다시 쪘습니다. 한알 한알 알갱이를 터트립니다. 엄동의 찬 기운과 겨루느라 지친 햇살은 힘이 빠진 채 비틀대는데 손과 입안에는 해를 넘긴 한여름 열기가 뜨겁습니다.      




3. 우물에서 숭늉찾기     


풋내 커피의 달인이자 주구장창 설익은 옥수수만 생산하는 어설픈 사람이 사람 사이 일이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섣불리 덤볐다가 관계가 틀어지고 조바심으로 일을 망칩니다. 취미로 하는 커피나 텃밭 옥수수는 그런가 보다 하면 그만이지만 직장이나 생업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낭패입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상대방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뒤풀이를 겸한 자리입니다. 일을 계기로 처음 만나 몇 달간 함께 작업하는 내내 관계는 원만했습니다. 성심껏 일한 나를 상대는 믿어 주었고 우호적인 감정을 나눴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는 둘 사이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단 하나, 서둘러 다음 단계로 나가야겠다는 내 욕심이었습니다. 조급증은 판단을 흐트러뜨렸고 식사가 끝날 즈음 분위기는 서먹해져 있었습니다.


상대방 주도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연배로 보나 계약관계로 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시간 가는 걸 잊고 지난 과정을 복기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다독이고 잘했던 건 북돋웠습니다. 식사를 핑계로 만났지만 정작 식사는 뒷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식당은 영업을 끝내야 할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자리를 뜨기 전에 뭔가 말해둬야만 한다는 강박이 조여 왔습니다. 지금 밑밥을 깔아 두지 않으면 다음 프로젝트를 맡을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상대가 나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도 거들었습니다. 결국 그 뭔가를 말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말을 해도 되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말을 하려니 혀가 꼬였습니다. 맺고 끊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 말 같지 않은 말이 입 밖으로 기어 나왔습니다.


앞뒤도 맥락도 없는, 언어 기능을 상실한 ‘소리’가 공기를 타고 힘없이 건너갔습니다.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습니다. 애매하게 얼렁뚱땅 받아넘기는 목소리에서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 사람 뭐 하는 거지?’ 하는 느낌입니다. 분위기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드러낸 속내는 그동안 쌓아온 시간마저 지워버렸습니다. 너무 빨리 쏟아부은 커피처럼, 너무 빨리 꺾어버린 옥수수처럼 수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났습니다.


이해관계를 앞세운 대가입니다. 충분히 무르익으면 저절로 이루어질 일을 얕은 잇속으로 망쳤습니다. 비즈니스나 프로젝트를 잊고 관계에만 집중했어야 합니다. 그날 그 시간을 끝까지 우정과 신뢰를 쌓는 기회로 삼았어야 합니다. 친구가 된다면 비즈니스나 프로젝트는 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입니다. 아니, 일이 되려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1년 전 배운 ‘과숙체락(瓜熟蒂落)*’이라는 말이 허공을 떠다닙니다.     


* 과숙체락(瓜熟蒂落) 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저절로 떨어진다. 때가 성숙하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다음, 고사성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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