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걱정인형은 일종의 모래주머니와 같다.
달려있다고 해서 좀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눈을 가려버리는 상황은 답답하지만 이 또한 용사의 레벨 테스트라고 여기자면
어둠 속의 산책과 같은 기분으로 더듬더듬 못 나갈 것도 없다.
아무리 멀리까지 도망쳐도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버리는 이 인형과
그 징글징글한 관계로 살아온 긴 세월 덕에 이제 어느 정도는 녀석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이라는 주문이 녀석을 불러오고, 문제의 사건이 지나가면 있으라고 해도 사라진다.
비슷해 보이는 또 다른 놈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이때의 녀석은 어제의 그 녀석이 아니다.
좋은 날은 그냥 맞이하고 즐기면 되지만 궂은날은 할 일이 많아진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겨야 하고 태풍이 불면 문단속을 잘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비를 잘하라고 내 걱정해서 나타나주는 녀석이다.
그렇기에 고맙지만 지나친 참견은 사양이야-라고 하는 것이 이 녀석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과거를 가지고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나와
아마도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거리 두기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그런 친구쯤으로 여기고 있다.
나에게 달라붙어 있는 와중에도 녀석의 진짜 속내는 '네 갈 길 가 '라고 말해주는 것을 읽는다.
어쩌면 모래주머니가 아니라 트레이너일지도.
녀석은 나에게 내 갈 길 가는 법을 알려주고 제 갈 길을 유유히 떠났다.
잘 가. 고마웠어. 그렇지만 우리 다음은 기약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