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에게든 그 이야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서두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에겐 <로씨>가 그러하다.
석사과정 졸업작품으로 열 달 꼬박 고생해 놓고도 사정이 생겨 (금전적 문제라는 너무 뻔하고 식상한 사정)
최종 결과물을 밖으로 내놓기까지는 그 뒤로 3년이 더 걸렸다.
2016년 3월에서 2019년 8월까지 그 3년 6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는가.
단지 만들었기 때문에 ‘엄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바닥까지 마주하게 하고 그럼에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내 자식이 잘 되겠구나를 알게 해 주고 이전에 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에 동기와 용기를 주었던 존재가 로씨이다.
세상에 내보이고 나서도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행여나 나를 닮아 그런 것은 아닐까 자책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저 해맑은 얼굴로 증명해 준다.
내가 만들었지만 내 손을 떠난 이후로는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바라보고 응원해주고 할 수 있는 지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도 덕분에 깨닫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엄마’가 맨날 늦게까지 야근하는 줄 알고 이렇게라도 바람 쐬고 오라고 여행까지 보내주는 세상 고마운 ‘딸’이다.
이게 무슨 하늘에서 떨어진 복인가 싶다가
아니다 로씨가 물어다 준 박씨구나 어화야 둥둥 춤을 추며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가야지, 갈 수 있는 시간과 몸을 만들기 위해 애쓰느라
그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항상 빠르게 흘러가고
여전히 한 프레임 한 프레임 그려내는 지난한 작업의 연속인 일상에
그래도 무엇이든 남겨 놓으면 이렇게 반짝이는 가치로 세상에 빛이 된다는 것을 알아서
짬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있는데 의도치 않게 어버이날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이 공교롭다.
이 또한 로씨가 주는 선물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