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옥상달빛
하루, 준비가 미흡했던 것과 다르게 복을 받았기에
오늘은 명동성당에서 감사를 올리고 싶었다.
순례길 이후로 부터 시작된 마음의 안식처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내가 그곳을 간다는게
내심꺼려졌었지만 지금은 제법 자연스럽다.
성당의 미사를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대만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황급하게 나를 불렀다.
매일 스쳐지나가는 길 옆에 자그만한 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 계시는 할머니
그리고 다급해보이는 외국인들.
외국인들은 어쩌다가 할머니를 도와드렸는데
가봐야한다면서 도와달라고 했었다.
외국인에게 고맙다고 하고 가도 된다고 보냈다.
이 창고는 아마 할머님이 폐지나 이런 저런 것들을 모아놓는
임시장소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냄새는 어린시절의 지하실처럼
쥐똥, 오줌의 퀘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것저것 옮기는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할머니를 두고
서울에는 뻔뻔한 노숙자가 많으니까 라고 생각하던 그때
봤다. 아니 보였다.
두건으로 감싼 얼굴안에서 줄줄 흐르는 땀.
덥지 않은 날씨이기에 이 땀은
미안함이 조급함으로 바뀌어 흐르는 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다친 다리에 대한 원망이 뭍은 땀이었다.
천천히 하시라고 말하면서도
절대 잘 수 없는 그곳에서 잘 거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곳은 정말 창고 였던 것 같다.
다리가 힘에 부쳐 얼떨결에 할머니는
내 손을 꽉 잡았다.
내가 그 손을 꽉 잡아서 부축해드리자
내심 놀라신듯 보였다.
누굴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노원쪽이라는데 자세하게는 말씀해주시지 않는다.
전화할 곳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지만 그런건 없다고 하셨다.
앉을 곳이 없어 도로변에 앉아계시면서
비가 오니까 빨리 가란다.
총각 비맞으면 안된단다.
질색팔색하며 할머니 위험하게 여기있을 거면
나도 같이 기다리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가 웃었다.
이런 청년은 처음 봤단다.
할머니 뭐 필요한거 없냐니까
그럼 목이 너무 마르다고.
마음의 문을 쪼오금 여셨다.
빵 몇 개와 음료 물을 샀다.
돈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단숨에 500ml의 물 반이상을 비웠다.
정말 물이 필요하셨구나.
할머니에게 비오니까 비 피할 곳에서 있으면 가겠다고
도로변만 아니면 가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침내 할머니가 움직였다.
이대로면 내가 안갈거라 생각했겠지.
할머니 뭐하러 다리도 아픈데 나오냐니까
먹고 살아야해서 나왔다고 한다.
할머니가 내 집은 어디냐고 해서
충무로라고 했더니
여기 그럼 명동 놀러 ?
라고 하길래
저 시끄러운거 싫어해서
명동은 성당때문에만 온다고 하니까
자기 못봤냐고 하신다.
그때 알았다.
아 그 명동성당 앞에 앉아계시는
몇 분들 중에 한분이시구나.
그러면서 복받으라고 하셨다.
정말 은총 받으라고 하셨다.
끝까지 정말정말 이라고 말하셨다.
다음에 성당가다 마주치면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몇년 묵어보이는 떼가 낀 손이 더러워서
사실 붙잡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걸으시니까
할머니가 덥썩 내 손을 잡아버린 이후로는
내가 그냥 먼저 잡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야.
충무로에 대한극장에서 손을 씼는데.
찬물인데도
손이 따뜻하다.
정확하게 할머니 손이 따뜻했다. 내손보다 더
손을 씼으면서 그냥 눈물이 났다.
미안했다.
하늘에 내리는 비가 온몸을 바로 적셔주지 않았다.
눈에 고인 눈물처럼
아쉬운듯이 스며드는 척하며 말라가고 있었다.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이노래가 생각났다.
이 노래 처럼
이상하게
마음이 아이가 되어 떠나지 못했다.
이 글은 정리하고 싶지도 않다.
생각나는데로 적었듯이
이렇게 계속 기억하고 싶다.
이미 복은 받았어요. 할머니
하늘을 어둡게 뒤덮은 연기사이로
새하얀 새들은
급히 이곳을 떠나가고
마을에 어둡게 내려앉은 연기사이로
조그만 아이들은 떠나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