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첫 경기

그리고 우리 집 보물

by Honey

이른 봄부터 겨울이 시작되려는 날까지, 한 시즌 내내 열광하던 축구가 끝나고 나면,

석 달 가까이 보내야 하는 비시즌은 매년 겪으면서도 참으로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40년이 넘는 시간도 이렇게나 빨리 지나간 것 같은데, 그 시간들 속에 유일하게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그 겨울의 날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삶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러니 해마다 시즌 첫 경기가 다가올수록 그 설렘이란, 매년 반복돼도 늘 새울 수밖에 없는 일.




2013년 2월 26일 화요일,


2013년 시즌의 첫 경기가 펼쳐지던 날,

보통 시즌의 첫 경기는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로 치러진다.

(코로나 상황은 예외로 정상적인 대회가 운영될 경우)

3월 첫 주에 통상적으로 개막하는 K리그 경기 이전에 빠르면 2월 중순부터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가 시작되니 대회에 참가하는 4개 팀은 다른 팀들보다 시즌이 조금 빨리 시작되는 셈.


첫 경기가 홈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2013년 시즌의 첫 경기는 무려 동남아시아 원정이었다.

상대는 태국리그의 '무앙통 유나이티드'

객관적으로도 태국리그보다 K리그의 수준이 훨씬 높다고 평가를 받고 있으며,

홈경기에서는 그리 어렵게 상대하는 팀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동남아 원정은 참 쉽지가 않다.

(근데 우리 작년 왜 홈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겁니까..)

2013년부터 코로나 시국 전인 2019년까지도 동남아 원정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이긴 경기가 없었다.

비겼거나.. 아니면 졌거나...

심지어 태국의 또 다른 클럽인 '부리람 유나이티드'에겐 2년 연속으로 패하기까지 했었다.(2018년, 2019년)


기대감으로 시작한 2013년 첫 경기에서도 우린 아쉽게 무승부라는 결과를 얻었다.

분명 동국이형이 킥오프 5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었는데......


하지만 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이 나에겐 또 다른 일로 최고 경사스러웠던 바로 그날,

먼저 장가간 게 여전히 제일 고마운 우리 집 큰아들의 더없이 소중한 첫째 딸이 태어난 날이다.

아빠인 큰아들의 말을 빌어,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라는 말이 정말 진리라고 느껴질 만큼,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운 우리 집 보물 1호,

매치데이로는 그저 그런 날이었지만 그럼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매일이 사랑스러운 보물 1호가 태어난 날에 단지 우리 팀도 그저 공놀이를 했던 것뿐이라고..




자랄수록 더 사랑스러운 조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TV에서만 보던 동국 삼촌을 직접 보러 축구장에 놀러 오고 싶다며, 전주에 와서 고모 손을 꼭 잡은 채 손수 동국 삼촌의 유니폼까지 골라 입고 좋아하던 모습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축구 좋아하는 고모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것 같은) 우리 집 보물 1호,

이렇게 1호가 태어난 날을 다시 되짚어 보니 매일처럼 오늘도 또 보고 싶군.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날 "고모, 우승 축하해요" 라며 전화를 걸어준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아주 많이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