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좋아하는 게 맞는 거야, 우리?
'윗물에서 놀 것인가, 아랫물에서 놀 것인가'
K리그에는 여러 팀들의 라이벌 매치(더비)가 있다.
오랜 전부터 가장 유명한 경기로 일컬어지는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모두가 알다시피 2024년부터는 치를 수가 없게 됐다..)', 우승경쟁에서 시작된 전북과 울산의 '현대가더비', 비슷한 지역을 연고에 두고 오랜 경쟁 관계를 이어가는 포항과 울산의 '동해안더비'까지.
여기에 한 걸그룹의 하프타임 공연에서부터 시작된 더비라고 하면 맞을지 모르겠지만, 2010년대 중반까지 서로 강팀으로서의 경쟁을 이어가던 전북과 서울의 '전설매치'가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다.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지금의 K리그는 33라운드까지의 정규라운드를 치른 뒤, 1~6위까지를 파이널 A, 7~12위까지를 파이널 B로 구분하는 방식의 스플릿 라운드를 통해 팀당 5경기씩을 더 치르며 우승팀과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팀 그리고 승강플레이오프팀과 강등팀을 결정한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스플릿 제도에서 전북현대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스플릿 라운드가 진행된 11년 동안 단 한 번도 하위라운드(파이널 B)로 떨어진 적이 없다는 것.
익숙하듯 우승경쟁을 하던 팀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일이 이젠 당연하지 않은 날이 와버렸다..
서울과의 정규라운드 마지막 경기날,
아홉 팀의 자리가 위, 아래로 이미 정해져 있었고, 오늘의 경기로 남은 파이널 라운드의 운명이 달라질 팀이 세 팀 있었으니 서울, 인천, 전북이었다. 서울과 인천은 같은 승점에서도 다득점으로 서울이 5위, 인천이 6위였으며 우린 가장 불리한 7위의 위치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의 서울을 만나게 됐다.
엉망진창이던 시즌 초반,
눈물, 콧물 다 쏟았던 지난봄의 원정에서도 비록 동점골을 먹고 비기긴 했으나 서울 원정에서만큼은 6년 넘게 지지 않는 경기를 이어가던 전북이었다.
(전북이 서울 원정에서 패배한 마지막 경기는 2017년 7월 2일이다. 경기 종료 막판에, 또..)
더욱이 오늘의 경기는 결과에 따라 사상 처음으로 파이널 B를 맞이할 수도 있기에 비기는 것도 아닌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경기다.
세 팀 중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위기 때마다 그 고비를 잘 넘겨온 팀이었기에 기대감을 가진 많은 팬들이 상암으로 향했고, 넓은 원정석을 초록색으로 가득 채웠다.
긴장감 속에 시작된 경기는 양 팀 모두 득점 없이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이 이어졌다.
후반전을 앞두고는 세 팀 모두 시작할 때의 순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남은 시간이 더 중요했다.
(전반 막판, 서울 나상호 선수의 득점이 오프사이드로 취소되는 순간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휴...)
이제 남은 45분으로 팀의 앞날이 결정된다.
우승은 아니더라도 무사히 파이널 A에 안착해 안정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것인지,
아니면 파이널 B로 떨어져 숨 막히는 강등전쟁을 함께 이어나갈 것인지..
모두의 간절한 마음들로 후반전 킥오프 휘슬이 울렸고, 원정석의 응원 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아슬아슬한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기며 고군분투하던 후반 14분, 팀의 위기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주던 한교원 선수가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를 앞서가기 시작했고, 원정석은 엄청난 환호로 뒤덮였다.
그로부터 다시 15분 뒤, 구스타보 선수가 헤딩골의 정석을 보여주며 추가골을 기록했고, 홈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가운데 원정석에서만 기쁨의 함성이 또 한 번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서울의 매서운 공격이 계속되긴 했지만 경기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고,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비기기만 해도 되는 경기'를 지키지 못한 서울은 결국 정규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7위를 기록하며 파이널 B로 향하게 됐고, 전북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올해도 남은 경기들을 파이널 A에서 치르게 됐다.
경기 종료 후,
경기장을 빠져나온 원정팬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장외에서 승리의 퍼포먼스인 카니발을 이어나갔고,
그 카니발에 참여한 수많은 인원의 함성과 발구름으로 상암이 한동안 들썩일 정도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올해도 파이널 A에 안착했다는 게 기쁜 일은 맞지만..
10년을 넘게 우승경쟁만 이어가던 팀이 윗동네 경계선에도 걸치지 못하다 정규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게 된 건데...
이걸 지금 이렇게 미친 듯이 좋아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배경사진 출처-'스포츠 춘추' 기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