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2013

또 너야..?!

by Honey

파이널 A에 안착한 덕분인지 편안하지만 또, 편안하지 않은 채로 A매치 휴식기를 보냈다.




지난 시즌, 여러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9년 연속 트로피를 들 수 있게 해 준 FA컵.

(코리아컵으로 이름이 바뀐 건 2024년부터다)

올 시즌, 리그가 더 막막해진 가운데서도 FA컵은 또다시 준결승에까지 자리하게 된 전북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여름의 한가운데서 준결승이 이미 치러졌어야 했지만, 빌어먹을 잼버리 콘서트의 영향으로 FA컵 준결승마저 경기가 미뤄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 같은 건 하지도 않았고, 같은 날 예정됐던 다른 팀들의 경기도 태풍의 영향으로 경기를 치를 수가 없었다)


2023년 11월 1일 수요일,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준결승의 상대는 인천유나이티드.

8월 초로 예정됐었던 경기가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왔다.

더욱이 오늘의 경기를 치르고 나면 결승에 올라간 팀들은 다시 3일 뒤에 결승전을 치러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정임이 분명했지만, 더 이른 시기의 일정 조율엔 합의점을 찾지 못하며 오늘까지 오게 됐다.


토너먼트 경기가 주는 긴장감 속에서 인천과의 준결승전이 시작됐고, 전반까지 1:1로 팽팽하던 경기는 후반전에 전북이 두 골을 더 집어넣으며 3:1의 결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비록 리그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들쑥날쑥하고 있었지만 전북답게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올해도 주어졌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회에서 만난 결승전의 상대는 만날 때마다 우리를 작아지게 만드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마냥 싫지만은 않은 '영일만 형제' 포항이다.



2023년 11월 4일 토요일,


FA컵 2연패 달성이라는 부푼 희망을 가지고 스틸야드의 좁은 원정석에 자리를 함께 했다.

그동안 희한하게 팀이 잘 나가던 시기에도 포항만 만나면 중요한 경기에서 기를 펴지 못했고, 더욱이 포항의 홈인 이곳 스틸야드에서는 패배의 기억들이 유독 많아서인지 불안한 마음들도 있긴 했지만,

지난해 홈&앤 어웨이 방식으로 결승을 치르던 것이 올핸 단판으로 바뀌면서 이 한 경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기에 뛰는 선수들도, 그 선수들을 응원하는 팬들도 간절함이 더 가득했다.


attach_6545f8a1cc00f0.10598490.jpg 힘을 내, 전북! 오늘이 마지막이야! [사진출처-전북현대 홈페이지]


우승컵의 주인공을 가를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양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고, 포항의 응원석에선 'AGAIN 2013'이라고 쓰인 걸개를 들어 올리며 10년 전의 좋은 기억까지 다시금 꺼내 들고 있었다. (10년 전 FA컵 결승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전북-포항의 대결이었다. 당시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리의 안방에서 포항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경기는 이른 시간 송민규 선수가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원정팬의 환호와 홈팬들의 야유가 뒤섞인 가운데 경기는 계속됐고, 전반 막판 포항의 한찬희 선수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다시금 후반전을 맞이하게 됐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널티킥 기회를 얻게 된 전북은 구스타보 선수가 추가 득점까지 성공시키며 경기를 다시 앞서가기 시작했고, 남은 시간이 40분이나 된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원정석엔 감격과 환호가 가득 찼다.


송.jpg
구.jpg
이때까지는 정말 또 우승하는 줄 알았다고요...... [사진출처-전북현대 홈페이지]


그리고 어쩌면 우린 정말 우리의 현실을 잊고 싶어 더 큰 환호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닥치고 공격'이라는 말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도 가물거릴 정도로 지금의 우린 지고 있는 경기를 뒤집거나 이기고 있는 경기를 지키는 힘보다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불안한 경기력을 지닌 채 여기까지 와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엔 잘 버티기만 했어도 됐을 경기를 지키지 못하고 후반 막판부터 추가시간까지 내리 세 골을 더 실점하면서 이번에도 포항에게 우승컵을 내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포항팬들이 경기 전에 들어 올렸던 걸개가 정말 부적이 돼버린 걸까,

반면에 우리에겐 10년 전의 악몽이 되풀이된 셈이었다.


준우승.jpg 준우승의 기분, 우리도 너무 잘 알지.. 2등도 잘한 거지만 희한하게 기분은 별로야... [사진출처-전북현대 홈페이지]


2013년 이후 10년 만에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당연한 줄 알았던 아시아 무대는 이제 당연하지 않은 곳이 되게 생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머물게 된 파이널 A에도 언젠가는 우리의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FA컵 우승컵을 들지 못한 채 리그의 남은 경기들을 치르고 있었으며 추춘제로 바뀐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울산 원정을 앞두고는 차마 그 꼴을 보지 못하겠어서 맞물려 떠났던 홍콩 원정길에서의 늦은 귀국을 택했고, 결국 리그의 마지막 경기까지 문수에서의 징크스를 깨지 못 한 전북은 최종 순위 4위로 리그를 마무리하게 된다.



높은 순위가 꼭 좋은 축구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선수단의 규모나 쓰인 비용만 보더라도 지금 전북의 위치가 괜찮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를 거듭하며 나아지길 기대했던 팀의 분위기는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픔과 우여곡절이 너무나 많은 시즌이었는데......


과연 다음 시즌엔 지금의 우리를 추억하며 본래 우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파이널 B의 위기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