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맛집

생애 첫 해외 원정

by Honey

K리그 상위 4개 팀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인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ACL 출전권은 K리그1 우승팀과 FA컵 우승팀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며, K리그1 차순위 2팀에게 남은 두 장의 티켓이 각각 주어진다. 지난 2021년엔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FA컵에서 2부 리그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ACL에 참가하는 팀들은 다른 팀들보다 시즌이 빨리 시작된다는 점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네 팀만 겪는 가장 다른 일은 '해외 원정'일 것이다.

리그나 FA컵은 국내팀들로만 치러지지만 ACL은 이름부터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이니 아시아로 그 범위가 넓어지는 건 당연한 일.


모든 축구는 직관이 제맛이라고 했던가,

홈경기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상대팀마다 각각 다른 경기장에서 느껴지는 원정의 재미도 아주 크다.

그런데 하물며 해외 원정이라니!

해외에 있는 축구장을 이렇게 '공식적으로' 방문할 수 있으니 늘 바라던 바였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았다.

나라 간 이동이니 당일치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최소 2~3일은 휴가를 내야 경기라도 보고 오는 것이다.

조별 경기에서 만나는 팀들 대부분이 일본이나 중국팀들이니 그나마 다행이지 동남아라도 걸리는 날에는..

(그런데도 꼭 동남아나 호주팀 중에 하나를 만나게 됨)


가능할 때 모든 걸 하고 싶었다.

지금의 시간이 아니면 늘 꿈만 꿔오던 해외 원정을 다신 갈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코로나 이전까지 최소 한 번의 해외 원정을 해마다 가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기에)

그렇게 빡센 삶을 살 땐 상상도 못 하던 일을 용감하게 저지르기 시작했다.

해외라고는 3년 전, 늦은 여권을 만들자마자 떠났던 일본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나에게,

해외여행을 가는데 축구도 한다니! 이건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2013년 1월 1일, 날이 바뀌자마자 구단 해외 원정 담당자에게 냉큼 원정 신청 메일을 보냈고,

(구단이 단체로 신청과 비용을 받고 항공권과 1박의 숙소를 잡아주던 원정 방식은 그다음 해가 끝이었다)

그렇게 일행도 없는 혼자만의 해외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ACL 조별 경기는 주로 평일에 치러지는 터라 주중 며칠의 휴가는 보통의 직장인들에게 쉽지가 않은 일이었으며, 내가 신청한 원정인 J리그(일본의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 '우라와레즈'와의 경기도 역시나 수요일이었다.

평일에 쉬는 게 쉬운 직업이긴 했으나 나도 많은 휴가를 낼 수는 없는 상황이라 정말 딱 축구만 보고 오는 일정으로 수, 목 이틀의 신청을 했다.


J리그의 '우라와레즈'는 아시아에서도 강성 팬들이 많기로 소문난 팀이다.

또한 강성 팬들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응원으로도 유명하다.

팬들의 숫자가 많기도 많지만 대형 깃발을 이용한 특유의 퍼포먼스로 상대팀을 압도해 버리는 응원 방식이 아주 대표적이다. 그리고 홈 경기장으로 쓰는 '사이타마스타디움'은 일본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장으로도 알려진 일본의 상징과도 같은 경기장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지만) 첫 해외 원정으로는 손색이 없는, 정말, 꼭 가야만 하는 원정인 것이다!




2013년 4월 3일 수요일,


어찌나 설렜는지 새벽에 공항버스를 타고 대전에서 인천공항까지 가야 하는데 아예 밤을 새 버렸다.

그렇게 인천공항에서 나리타행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

도착 후 간단한 밥을 먹고는 경기장으로 바로 이동했다.


와......!!!

들어선 사이타마스타디움엔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2만 명이 넘는 홈팬들이 이미 경기장을 채우고 있었으며, 그들의 통일된 빨간 유니폼 색깔이 분위기를 더욱 압도하고 있었다.

'역시 소문 대로구나..'


경기는 이른 시간 선제 실점을 하며 쉽지 않아 보였다.

경기를 끌고 가는 입장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생애 첫 해외 원정에 의미를 두자 하며, 약간의 해프닝으로 하프타임을 보낸 후 후반전을 맞이했다. 하지만 역시 축구는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알 수가 없는 일,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기 선수의 동점골이 터졌고, 뒤 이은 동국이형의 역전골에 에닝요의 쐐기골까지 더해지며 경기는 순식간에 뒤집히게 됐다.

(동국이형이 득점 후에 했던 세리머니는 3년 전 박지성 선수가 같은 경기장에서 했던 '산책세리머니'를 다시 표현한 것으로 경기 후에도 많은 화제가 되었다. 방향도 역시나 같은 홈팀 응원석 쪽)


지금까지도 이 날의 경기는 내 직관 경기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경기장의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득점 장면들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생애 첫 해외 원정이었으니까.

이렇게 해외 원정에 맛을 들인 나는 매 시즌마다 '한 번이라도 해외 원정은 꼭 가기'란 목표가 생겼고,

자신과의 약속은 정말 틀림없이 지키는 사람이 됐다.




1년을 지내다 보면 언제부턴가 가장 기다려지는 것 중에 하나가 해외 원정이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발목 잡힌 지가 벌써 3년째..

조별 경기는 원정이라는 꿈도 못 꾸고 다 끝나버린 지금 시점에서 남은 경기를 아무리 가늠해 봐도,

이러다 올해 ACL 해외 원정마저 또 내년을 기약하게 생겼다.


코로나 새끼, 정말 나쁜 새끼.


동국이형은 다 계획이 있었어, [사진출처-다음 카페 '나의 사랑스런 친구들-김성우'님]








<배경사진 출처-'연합뉴스'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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