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의 보상 자책골

feat. 치타

by Honey

축구 경기에서 자책골은 가능한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일이지만, 희한하게도 잊힐 때쯤이다 싶으면 슬그머니 한 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는 한다.

지난 시즌, 24년 만의 수비수 MVP에 빛나는 너무나 멋진, 말하자면 입 아픈,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이 정도면 종교다), 우리의 주장 홍정호 선수도 시즌 중 상암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바가 있었다.

물론 경기 종료 직전, 본인이 결승 쐐기골을 넣으면서 결국엔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값진 경험으로 남게 됐지만.


그런데 하물며 골키퍼가 직접 자신이 지키고 있는 골대를 향해 골을 넣는다?

얼핏 들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이런 보기 드문 일이 실제로 있었다.




2013년 7월 3일 수요일,


최강희 감독님이 팀에 복귀하신 뒤 치러진 두 번째 홈경기였고,

상대는, 이젠 추억이 된 노란 빛깔의 맥콜 유니폼을 입고 뛰던 성남이었다.

(성남은 2014년, '일화'의 기업구단에서 성남시 소속의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분명히 전년도에 부산으로 만나 매우 힘들었던 안익수 감독이었는데, 이번엔 성남의 벤치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근데 참.. 여전히 쉽지 않은 양반이다.

감독님이 복귀하시고 치른 첫 번째 경기에서 얻었던 대승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경기는 선제 실점과 추가골까지 내어주며 참 쉽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바로 한 골을 만회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 순간에 벌어졌다.


이어진 우리의 공격 진행 중 성남의 문전 앞에서 선수들끼리 경합이 있었고, 그 경합으로 인하여 넘어진 성남의 선수가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부상당한 선수가 발생했으니 당시 성남의 골키퍼는 볼을 경기장 밖으로 걷어냈으며, 이러한 상황을 본 주심은 경기를 잠시 중단시켰다.

보통 이런 경우(선수의 부상으로 인하여 볼이 불가피하게 아웃된 상황)엔 일종의 '매너볼'로 볼의 소유권을 가진 팀이 아웃시킨 상대팀에게 다시 볼을 건네주며 경기를 이어가는 게 일종의 약속이었다.

모두가 예상하던 그림도 그랬다.

아니, 하려던 방향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주심의 휘슬로 경기가 재개되면서 우리 팀의 선수가 경기장 라인 밖에서 스로인(throw in)으로 볼을 던졌고,

그 볼을 건네받은 동국이형은 볼의 소유권을 다시 성남의 골키퍼에게 넘겨주고자 골문 방향으로 볼을 길게 찼다.


그런데 맙소사!

그 볼이 그대로 골키퍼의 키를 넘겨 골대 안으로 들어가고 만 것이다.

골대 뒤 응원석에 있던 우리들도, 그라운드에 함께 있던 선수들도, 모두가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예상치 못 한 상황에 동국이형은 곧바로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쨌든 규정상 득점은 득점이었고, 그 누구도 좋아하지 못하는 동점 상황이 돼버린 것.

동시에 그라운드 안에 있던 양측 선수들의 분위기까지 매우 어수선해졌다.

아마 다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있었을 테다..

그러다 더 큰일이 벌어졌다.


그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지금은 울산에서 뛰고 있는, 그 시절에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성격을 자랑하는 성남의 한 선수가 그 황당한 득점 상황에 대해 거친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그 거친 항의 속에 불필요한 행동(당시 우리팀 소속이었던 '박희도'선수를 밀어서 넘어뜨렸다)까지 더하며, 급기야 다른 선수들까지 합세해 말리랴, 다른 누군가는 마저 항의하랴, 그야말로 그라운드는 거의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소속팀 감독이었던 안익수 감독까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치타'를 진정시키고 있었고, 주심은 이 상황을 정리하느라 바빴으며, 그 와중에 동국이형은 멀리 우리 골대를 향해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결국 그 불필요한 행동으로 인하여 치타는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당했으며, 경기는 서둘러 다시 시작됐다.


모든 득점 상황 이후엔 하프라인에서 경기가 재개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후 경기의 진행은 모두가 평소엔 볼 수 없던 흐름이었다.

성남의 선축으로 재개된 경기는 이후에 바로 볼의 소유권이 우리 팀으로 넘어왔고,

동국이형이 이번에는 그 볼을 우리 팀의 골키퍼에게 패스했다.

당시 우리 팀의 골키퍼였던 최은성 선수는 그렇게 받은 볼을 자신이 지키는 골대에 그대로 골로 넣어버렸다.

본인의 골대에 골을 넣었으니 자책골은 자책골이지만 알고도 넣을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보상 자책골'이 돼버린 셈.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문제적 상황'에 대해 가장 올바르게 내린 결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날의 경기는 최종적으로 2:3 패배,

아쉽지만서도 당연하고 정당한 결과라고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모름지기 스포츠란 승패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늘 더 중요한 것들은 따로 있는 법이니까..








<사진 출처-'스포탈코리아'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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