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형제 중 고등학생인 나만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그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등교 시간인 8시까지 시내 학교에 갈 수 있는 버스는 6시 50분 한 대 뿐이었고, 동네의 중고생들은 그 한 대 뿐인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버스정류장에 일렬로 긴 줄을 서곤 했다.
줄을 설 만큼 준비를 일찍 서두르지는 않는 등굣길이었지만 워낙 이른 시간 탓에 매일이 분주했다.
아침은 꼭 준비해 주시는 엄마 덕분에 빈속으로 등교한 적이 학창 시절 동안 한 번도 없었으며, 이른 시간인 만큼 6시에 준비되는 아침은 늘 1인분이었다. 동생들은 바로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나 그래도 가까운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늘 내가 먼저 집을 나서고 나면 나머지 식구들이 등교 준비를 마저 하는 것이 우리 집의 오전 일과였던 것.
큰딸이라고 유달리 마음 깊이 아껴주셨던 아빠였다.
이른 시간 혼자 아침을 먹는 딸이 마음에 걸려 매일을 식탁 옆자리에 함께 앉아 주셨고,
고등학생이 된 큰딸의 첫날을 기억해야 한다며 입학식 날 교복을 입자마자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셨으며,
가끔은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오는 길이 오르막이라고 마중을 나와 업어주시기도 하시던 그런 분이셨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를 게 없는 아침이었다.
교복까지 다 챙겨 입고 마지막 순서인 아침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는데도 안방 문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던 것을 빼고는. 닫힌 문을 두고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아빠, 큰딸 아침 먹어요~"
"오늘은 딸 혼자 먹어야겠어.."
평소와는 다르게 힘이 많이 빠진 듯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조금은 서운했던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혼자 아침을 먹고 아빠에게 인사도 문틈으로 대충 한 채 서둘러 등교를 했다. 그리고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줄로만 알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시작된 5교시,
갑자기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수업시간 중에 교내 방송을 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1학년 3반 김OO 학생, 1학년 3반 김OO 학생, 지금 바로 교무실로 오세요'
의아했다. 수업시간 중에 교무실 호출이라니..
당시 담당 교과가 한문이었던 담임이 마침 교무실에 있었고, 담임은 아주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에게 얼른 교실에 가서 가방을 챙겨 오라고 했다.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많이 다치신 것 같다며..
여기까지도 이미 앞이 깜깜했다. 교통사고라니, 아빠가 교통사고라니..
담임의 차를 타고 종합병원까지 가는 길이 벌써부터 꿈만 같았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병원에 다다른 차가 병동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 블록 더 직진을 하는 게 아닌가,
당시 앞 건물은 병동이었고, 뒷 건물은 장례식장인 종합병원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순간, 그날 아침 인사도 제대로 못 했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방문을 열고 그 얼굴 한 번을 더 못 보고 나왔을까를 자책하며..
4월 24일, 수요일이었고, 그날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