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전의 이야기
다르다와 틀리다의 다른 점
중학교 1학년, 가을,
개교기념일이라 나만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었다.
엄마가 무슨 일로 외출을 하셨었는지 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빠랑 둘만 집에 있게 됐던 날,
아빠는 아주 가끔씩 특색 있는 요리(?)들을 해주시곤 했다.
이를테면 '참치채소덮밥' 같은? 이 요리의 최초 개발자는 엄마였지만 엄마가 해주셨던 기억보다는,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는 (아주 흔치 않은) 날에 아빠가 해주신 게 나는 훨씬 더 맛있었다.
참치채소덮밥은 작게 깍둑썰기 한 여러 채소들과 참치를 케첩과 함께 볶아, 카레와 비슷한 느낌으로 밥 위에 잔뜩 얹어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요리였다. 아빠의 또 다른 별미로는 라면 요리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사실 꽤 오래전부터 케첩은 거의 입에도 대지 않고 있다. 감자튀김을 먹을 때도 그냥 먹거나 최애 소스인 타바스코에 찍어 먹어야 맛있지, 그 가공한 맛이 잔뜩 나는 케첩은 정말 질색할 정도로 싫어하는데..
당시엔 아빠가 만들어 주시던 그것이 정말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날도 아주 오랜만에 참치채소덮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이른 점심을 먹자마자였을까, 갑자기 누군가가 찾아왔다.
'똑 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아빠가 현관문을 여시는 순간, 나는 정말이지 이건 놀란 것도 아니고, 아주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유인즉 문 밖에 스님 한 분이 서 계셨기 때문이다.
당시 시골에서야 스님들이 동네를 다니면서 좋은 말씀도 나누시고 시주를 받으시는 게 아주 낯선 일은 아니었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던 건 우리의 환경이었다.
물론 교회는 당시 사택과 따로 떨어져 있기도 했고, 전혀 다른 곳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동네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사택과도 한 층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긴 했지만...
맨 오른쪽이 교회, 그 아래 파란 지붕이 사택 위치
그렇다. 지금 스님은 교회 사택으로 시주를 받으러 오신 것이었다.
너무 당황한 딸, 그런 반면에 너무 침착하셨던 아빠,
그런 아빠가 스님이 덕담과 시주에 관한 말씀을 하시자 건네신 그다음 말씀이, 지금까지도 내 삶에 있어 커다란 기준이 되어 주고 있다.
"우선 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 스님께 도움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네요, 대신에 여기까지 오르막길을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시원한 음료 한 잔 드시고 가시지요"
하시며 자리 한편을 내어주시고는 시원한 주스 한 잔을 따라 스님께 드리는 것이 아닌가,
사실 스님도 지금 본인이 방문한 집이 목회자가 사는 교회 사택이라고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오신 눈치였다. 9월이었지만 그래도 낮엔 걸어 다니기에 더울 수 있는 날씨였고, 고단하셨던지 스님은 차가운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켜시고서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셨고, 아빠는 그런 스님을 배웅까지 해주셨다.
당시엔 어린 마음에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와 다른 종교는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시절이었었던 데다 하물며 목사님과 스님의 이런 상황이라니..
스님이 가시고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스님이면 내쫓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랑 반대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유치한 생각과 발언이지만, 나는 교회를 다니니 절에 다니는 그것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여기는 그런 흑백논리적 사고를 당시엔 했었더랬다.
그러자 아빠가 해주셨던 말씀이,
"지금 왔다가신 스님이 우리랑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은 서로가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것뿐이지, 나만 옳고 나와 다른 건 무조건 잘못된 거라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빠도 방금 왔다가신 스님이 언젠가는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가장 좋긴 하겠네......"
하시면서 실제 스님이었다가 목사님이 되셨다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사실 뒤의 일화는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만 '나와 다른 게 잘못된 건 아니다'라는 얘기만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시간이 지나고 자랄수록 더. 그래서 지금도 유독 민감한 표현 중에 하나가 됐다.
사실 지금의 우린 나와 다른 걸 '틀리다'라고 많이들 표현한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것뿐이지, 어느 누군가는 맞고 어느 누군가는 틀린 게 아닌데도 말이다.
아빠는 그렇게 나에게 서로가 '다름'을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찍부터 알려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