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생이던 시절, (초등학교가 맞는 표현이지만 국민학교 입학-졸업이라 당시를 그대로 써보기로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한 달만 피아노 학원을 다녀보라고 하시며 당시 교회 반주를 하던 언니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나를 같이 보내주셨다. 사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기란 말도 안 되는 일,
양손 연습도 제대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그렇게 피아노 학원을 잠깐 스치듯 다녀왔다.
당시엔 그저 아빠가 경험해 두면 좋겠다는 의미로 나에게 한 달간의 '체험'시간을 주신 게 아닐까 싶었는데, 어쩌면 아빠는 내가 이렇게 두고두고 좋아할 거라는 걸 미리 아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치듯 경험한 피아노가 아주 긴 여운으로 남기 시작했다.
무작정 해보고 싶었고, 관심은 나날이 더 커져갔다. 결국엔 교회 반주를 하던 그 언니에게 부탁해 언니가 학원에서 배웠던 피아노 책을 받아 들게까지 됐다. 피아노야 어느 교회든 늘 그 자리에 있는 물건이니까, 이제 내가 이걸 한 번 해보는 게 문제인데..
양손 연주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입장에서 아무리 귀에 익숙한 곡들이라고 해도, 막상 혼자 해보려 하니 참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조금씩 멜로디를 찾아가고 왼손으로 거들어 보기도 하던 어느 무렵에 마지막 동네로 이사를 갔고, 나는 중학생이 됐다.
역시 현관문만 열면 마주할 수 있는 교회에 피아노가 있었다.
틈만 나면 가서 맞는지도 틀린지도 모른 채 쉬운 가스펠송부터 멜로디를 쳐보기 시작했고, 당시 교회에서 기타를 치셨던 선생님께 코드의 개념을 배워 악보에 표기된 코드대로 왼손 반주를 만들어 맞춰 나가보기도 했다. (쇼팽이나 모차르트를 혼자 치기엔 너무 버거웠기에 하농이나 소나티네 초보 단계까지 간 걸로 클래식 피아노는 만족하기로 하고)
그러기를 어느 날, 주일학교(미취학 어린이부터 초등학생까지 모여 드리는 예배의 과정) 보조교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주일학교 예배엔 마땅한 반주자가 없어 아이들과 함께 무반주로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그날따라 나는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예배 시간 중간 찬송을 부를 타이밍에 벌떡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아 버렸다. 떨리고 어설펐지만 그래도 반주를 입힌 노래를 들으니 긴장이 금세 풀리는 것만 같았다.
이때부터였다. 주일학교 반주를 시작으로 토요일 저녁 학생부 예배, 그리고 주일 저녁 예배의 반주까지.
이제는 혼자 연습처럼 하는 단계가 아닌 누군가가 함께 듣고, 더욱이 부르는 노래들을 더 받쳐주는 역할을 하게 되니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찬송가, 복음성가, 성가곡집 할 것 없이 미리 순서를 받아 들고 연습에 연습을 계속했다. 피아노나 음악교육을 전공한 사람이 들으면 비웃을 실력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스스로 하고 싶은 걸 노력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1996년,
당시 주일예배 반주를 하던 언니가 다른 도시의 학교로 진학하면서 매주 그 시골까지 오기엔 무리가 있었고, 그래서 그해부터 서브 반주자의 역할을 하던 내가 대예배의 반주까지 맡아서 하게 됐다. 목소리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빠의 유일한 단점이셨던 '박치' 덕분에 늘 도입부를 맞추기가 쉽진 않았지만, 이미 저녁예배로 충분히 단련된 나였기에 대예배의 순서들도 두려울 건 없었다. 어쩌다 성가대에서 악보를 보기만 해도 눈이 돌아갈 것 같은 어려운 곡을 골랐을 땐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의 작은 소망 하나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던 찰나조차도 스치듯 우린 그해 봄에 교회를 떠나야 했고, 쫓기듯 와서 낯설게 정착한 지금 엄마가 사시는 동네의 교회에선 보조에 보조에 보조 정도 되는 '대타 반주' 쯤이나 했을까? 중간중간 잊지 않기 위해 몇몇 친구들의 결혼식 반주까지도 가끔 하곤 했었는데, 이후에 어찌나 엉망이 되었는지 지금의 나는 좋아하던 가스펠송 하나라도 제대로 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냥 나에게 살면서 많은 위로가 되었던 물건이자 악기였다.
대부분의 아이디나 계정에도 지금껏 'piano'를 쓰는 이유는 내가 피아노를 잘 쳐서도, 전문적으로 배워서도 아니다. 살아오는 내내 그저 큰 의미였던 그것의 그 느낌을 계속 기억하고 싶어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어느 날,
"집에 돈이 좀 더 많았으면 큰딸은 피아노라도 계속 배우게 해 줬을 것을......"
이라고 엄마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혼자 좋아서 계속하고 있던 걸 누구보다 오랫동안 보셨고, 엄마가 느끼시기엔 혼자서도 이 정도는 해냈으니 제대로 배웠으면 더 잘했을 거라는 아쉬움과 미안함에서 하신 말씀이란 걸 안다.
하지만 '피아노를 더 제대로 배웠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후회는 해본 적이 없다.
경험은 아빠가 주셨던 한 달만으로도 충분했고, 그 한 달이 내겐 지금까지도 더없이 큰 의미를 만나게 된 시간이었으니까.
돈을 벌면서 처음으로 생긴 여윳돈으로 샀던 피아노가 지금의 집에도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너무 오랜 시간 먼지만 쌓이게 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내일은 오랜만에 피아노의 먼지를 털고, 아빠가 가장 좋아하셨던 '찬송가 364장'을 한 번 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