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이 자라면 아몬드가 되지요
어린 시절의 나는 또래보다 아주 작은 아이였다.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르기까지 해서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 보자면, 나쁘게 말해 '볼품이 없어 보였다'가 딱 어울릴만한 그런 아이. 동네 친구들의 사소한 괴롭힘이나 놀림에도 금세 울기 일쑤였고, 그러니 장난 좋아하던 그 시절의 그 애들에겐 딱 안성맞춤인 상대였다,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면 키가 좀 자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또래들 중 가장 작았고, 마냥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들이 지나자 나는 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돼버렸다.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시절을 나중에 커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장난이 아니라 괴롭힘이 확실했으니까..
특히 2학년 청소시간에 나를 같이 버려야 한다며 쓰레받기를 나에게 대고 빗자루질을 하던 그 친구(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의 얼굴이 사실은 지금까지도 잊히질 않는다.
그때도 나는 울고 있었다.
빨리 키가 자라고 싶던 어느 날, 신체의 변화 대신 환경에 변화가 생겼다.
2학년 중간에 아빠가 다른 마을로 교회를 옮기게 되신 것.
나는 여전히 작았지만 변화된 환경이 도움이 된 건지 조금은 씩씩해지기도 했다.
물론 짓궂은 친구들은 그곳에도 많았고, 울기도 계속 잘 울었지만 싫고 불편한 것들까지 당하고 있진 않았던 것 같다. 이때의 친구들부터는 아직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키는 계속 더디게 크긴 했지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성격은 더 많이 활발해졌고, 더 이상 약하지도 않았다.
그러기를 중학생이 되기 전 겨울, 마지막 동네로 이사를 갔다.
나의 가장 행복한 학창 시절로 기억되는 중학교에선 특이하게 키순서로 번호를 매겼었다.
이 방식대로라면 나는 1학년 때 32번이었야 했다. (남자가 1번부터 시작, 여자는 31번부터 시작, 남녀 합반이었고 한 학급에 학생은 50명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이사가 12월이었던 터라 기존의 국민학교에서 졸업을 하면서 그 동네 중학교에 입학 처리를 했었고, 새로 이사 온 동네의 중학교로는 입학식 날 전학을 온 학생이 되어 버리면서, 내가 오기 전 번호 부여는 이미 끝난 덕분에(?) 맨 끝번호를 받게 됐었다.
그럼에도 작은 키는 감출 수가 없는 일,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친구들은 그 시절에 살짝 짓궂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을 선에서 가끔씩 키에 대해 놀리곤 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생긴 별명이 바로 '땅콩'.
사실 나는 사춘기가 되면 그래도 키가 좀 자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2학년이 되면서 받은 번호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32번이었다. 여전히 나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땅콩'이었고, 그러다 3학년이 되고 나니 티도 안 나게 자란 키 덕분에 그나마 받은 번호가 '35번'.
나는 이제 정말 더 이상 키는 자라지 않는구나 싶어 아주 절망적이었다. 중학교 3학년이나 됐으니 앞으로 키가 더 자랄 날은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빠도 그 시절 어른치고는 작은 키가 아니셨고, 엄마도 165cm가 넘는 당시로선 큰 키를 가진 분이셨으며, 여동생도 나무랄 데가 없었고, 더욱이 남동생들은 뒤에서 순서를 따지는 게 빠를 정도로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 왜.......... 정말 내 인생은 끝까지 '땅콩'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며 키 빼고는 모든 게 즐거웠던 중학교 시절을 열심히 보내던 막바지 무렵부터 키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던 시기엔 그보다 더 자라 그냥 또래보다는 살짝 작은 정도? 물론 평균에는 그때도 미치지 못했었다.
혼자만 더디게 자라던 큰딸이 어느 날부턴가 눈에 띄게 자라는 걸 보고 아빠도 내심은 많이 흐뭇하셨던 모양이었다. 이별이 멀지 않았던 어느 날, 주일날 대예배에서 설교를 하시던 중간에,
"우리 집에 큰딸의 별명이 '땅콩'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니 조금 자라서 이제는 '아몬드'가 된 것 같아요" 하시며 웃음을 지으시고 말씀을 이어나가신 적이 있다.
'이젠 별명이 하나 더 추가되겠구나' 하며 당시엔 살짝 창피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그런 날이었다.
그 봄마저 지나며 나는 더 많이 자라기 시작했다. 자라지 않는 게 아니라 늦게 크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후에 완연한 아몬드가 된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었지만, '땅콩'에서 멈출 큰딸이 아니라는 건 아빠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사진 출처-'한국일보' 기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