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전의 이야기
존경하는 인물이 우리 아빠야?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써보세요"
지금도 이런 정보들을 학생들에게 종이로 나누어 주면서까지 묻는지는 잘 모르겠다.
1993년도에 중학교에 입학한 내가 사춘기를 보내던 그 시절엔 재학생에 대한 갖가지 정보들을 서면으로 조사하곤 했었다. 그 가운데는 학생 개인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와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선을 넘는 호구조사, 그리고 정말 필요한 정보인지 의구심이 드는 '설문조사' 같은 형식의 물음들도 있었다.
흔히 '갱지'라고 불리던 회색빛을 띤 복사용지에 위의 항목들이 빼곡하게 공란을 옆에 둔 채 칸이 채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용지엔 '존경하는 인물'을 적는 칸도 있었다.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달랐던 시대였기에 존경하는 인물이라 하면 대부분 위인전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주를 이루었고, 아니면 그밖에 다른 몇몇 유명인들의 이름이 간간히 보일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는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이 훌륭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존경하는 인물을 말하라고 하면 무조건 딱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우리 아빠.
직업적인 가치 기준도 물론 있었겠지만 아빠는 나에게 삶의 두 가지 부분에서 늘 거론되는 사람이(었)다.
'존경하는 인물'과 '내 평생에 나의 이상형'
물론 아빠 같은 이상형을 만나지 못해서 지금까지 '혼자 삶'을 사는 중은 아니다.
엄마는 가끔 농담조로 "딸들이 아빠로 보니까 좋았던 거지, 남편으로는......" 하시며 말끝을 흐리곤 하셨지만, 이건 지금 아빠의 입장은 전혀 들을 수가 없으니 무작정 엄마 편을 들어줄 수는 없는 걸로 하고.
그때도 나는 역시나 존경하는 인물에 아빠의 이름을 적었다.
모두들 작성이 마무리되고 제출하기 직전의 약간 어수선했던 분위기에 우연히 옆 분단에 앉은 친구의 내용이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존경하는 인물에 적힌 이름이 나와 똑같았다.
"어? 나랑 똑같다"
"응? 뭐가?"
"네가 쓴 거, 존경하는 인물, 이름이 우리 아빠 이름이랑 똑같아, 신기하다"
"응, 너네 아버지셔"
".......... 응?? 우리 아빠라고?"
사실 많이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오가며 반갑게 인사는 나누었지만 사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않던 사이.
그런데 그런 친구가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우리 아빠라고 했다.
외부의 다른 교회에 초청을 가시는 일은 거의 없던 그냥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아빠가, 중학교가 있는 동네의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가신 일이 한 번 있었다. 친구는 그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그때 아빠의 말씀이 친구에겐 꽤나 인상적인 모양이었다.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당시 친구의 설명에 정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면서도 왠지 모를 고마움과 벅차오름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그 시절의 잠깐이었을 테고, 지금 친구의 기억엔 흔적조차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고마워, 소정아,'
아빠의 장례는 우리가 살던 교회의 사택에서 치러졌다.
아빠의 장례식에는 교회를 다니시던 분, 안 다니시던 분 할 것 없이 온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와서 슬픔을 함께 했고, 그중 동네의 어르신 한 분이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슬퍼하는 상갓집은 처음 본다고......
역시, 우리 김아빠는 참 멋진 사람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