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 수비

직관이 아니어도 답답하긴 매한가지,

by Honey

작년 가을, 시즌을 보내는 중간에 수도권 팀의 감독이 바뀌었다.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구단의 대표와 함께 사퇴를 결정한 것.

새로 부임한 감독은 뭐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다.

U-18, U-20 감독을 역임했으며 성남도 거쳤고, 그전에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시절이었던 부산의 감독까지 지낸 사람이었다.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짹짹이에서 알게 된 친구 둘이 있었다.

당시 축구 중계에서 해설을 맡아하던 둘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쉴 틈 없는 입담으로 나와 베프를 밤새게 만들었더랬다. (웃느라 아구가 아팠을 정도)

한 명은 지금까지도 그것과 비슷한 일로 먹고살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다른 일로 먹고사는 중이다.

처음 만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동갑내기 넷인 우리들(사실은 빠른 82년생부터 80년생까지 섞였지만)은 금세 친해졌고, 그 자리에서 곧 다가올 따뜻한 봄에 함께 마실을 가기로 약속을 했다. 산 좋고 물 좋은 가평으로.

서로의 일정을 맞춰 고르고 고른 날짜가 4월 14일이었다.

그날은 부산과의 홈경기가 있었지만 여행지에서 중계를 함께 보기로 약속한 뒤 직관은 과감히 포기를 했다.

당시 안익수 감독의 부산은 시즌초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었고,

훈련 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감독의 팀답게(?) 빡빡한 수비가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나는 당연히 우리가 이길 줄 알았다.

전년도 우승팀이었고, 매치데이 당시 순위도 우리가 높았으며, 4월 들어 연승을 달리고 있던 터라 분위기도 좋을 때였으니.. (그냥 좋다고만 하기엔 최강희 감독님이 국가대표팀에 가신 후 시작된 시즌이긴 했다)

'축구 전문가인 친구들이 있으니 경기도 더 재밌겠지?'

'이기고 나면 신나게 맥주 한 캔 더 마셔야지~'

하는 호기로운 생각들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세상 이렇게 숨 막히는 경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소위 '텐백'을 구사하던 부산은 90분 내내 우리 팀과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고, 결과도 역시나 0:0..

아, 정말 쉽지 않은 경기였다. 중계가 아니라 현장이었다면 한숨을 열 배는 더 내쉬었을 뻔했다.


안익수 감독이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아니, 뇌리에 정확히 박히던 날이었다.

그 특유의 근엄하고 무서운 무표정까지도.




경기의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평까지 왔는데 일찍 잠들기는 아쉬우니 부족한 안주와 술을 사러 근처 편의점에 '차를 타고' 갔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란 뜻이다.

양손 가득 큰 봉지를 들고 갑자기 시작된 가위바위보,

지는 사람이 다 들고 숙소까지 걸어오기다.

내가 졌다...........

세상 뒤도 안 돌아보고 차를 타고 사라져 버린 친구들,

진정 숙소까지 그걸 혼자 들고 왔고, (근데 참 재밌었음, 함께 있는 사람들이 이래서 중요하다)

끝까지 큰 웃음을 잃지 않던 참 고마운 녀석들,

지금은 다들 각자의 삶이 바빠 서로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지만, 늘 여전히 그 시절이 그리운 친구들이다.



그나저나 나는 왜 지금까지도 가위바위보만 하면 지는 것일까..








<사진 출처-'스포츠서울'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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