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던 경기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듭된 악연으로 있는 정도 떨어진 게 아닌가 싶은 '창원축구센터', 바로 경남FC의 홈경기장이다. (경남FC는 2023년, 새로운 시즌에도 K리그2에서 뛰게 된다. 지난 시즌 막판 플레이오프의 상승세로 1부 리그의 문을 두드리고자 했지만 결국 안양을 넘지 못하면서 2부 리그에 잔류했다)
2019년 9월 22일 일요일,
이 즈음, 대한민국은 제17호 태풍 '타파'의 영향권에 들면서 심상치 않은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토요일부터 전국적으로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었고, 제주는 항공편의 결항이 잇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축구는 진짜 웬만하면 한다. 그라운드에 물이 고여 공이 제대로 전진하지 못했던 폭우 속의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도 축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날씨 때문에 축구 경기의 진행 여부에 지장을 받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는 일이다.
이날도 날씨가 심상치 않긴 했지만 일단 창원으로 향했다. 지인과의 약속이 있어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삼공이와 함께 도착한 창원은... 역시나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며 살벌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인과 함께 점심을 먹고는 경기 시간을 기다리며 커피를 한 잔 마시기 위해 카페로 향했고,
카페에 들어선 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던 그 잠깐 사이에도 주차를 해둔 삼공이의 모습은 벌써 마치 '길리슈트'를 입은 것처럼 나뭇잎 범벅이 되어 있었다. 비도 비지만 바람이 진짜 어마무시했던 것이다.
"이대로 축구를 한다고..?"
"못 할 것 같은데요.."
결국 말도 안 되는 날씨에 이날의 경기는 취소가 됐다. 취소된 경기는 열하루 뒤인 10월 2일에 다시 치르기로 했으며, 그래도 축구만 보자고 온 건 아니었기에 이날의 창원 방문이 헛걸음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때만 해도 '날씨 때문에 축구가 취소되는 일이 있긴 있구나..'라고만 여기며 오늘을 웃어넘겼다..
2019년 10월 2일 수요일,
요란했던 태풍이 지나간 줄로만 알았는데... 달이 바뀌면서 또 다른 가을 태풍 '미탁'이 몰려왔다.
10월의 첫날부터 많은 비를 뿌려대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다시 창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오늘은 자차가 아닌 원정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창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비는 멈출 줄을 몰랐고, 오늘의 날씨도 심상치가 않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웬일인지 경기 취소에 대한 공지는 없었다.
불안한 마음이 앞선 채로 창원축구센터에 도착을 했고, 경기장에 입장까지 했다.
그런데.. 눈으로 마주한 모습은 열하루 전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 보였다. 선수들이 경기 전에 몸을 풀러 나오지도 못할 정도로 이미 그라운드에 물이 고여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벼락이 떨어지면서 경기장 전광판의 전원까지 꺼져버린 것이다.
'이런데도 오늘 경기를 한다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장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날씨의 영향으로 오늘의 경기는 취소하고, 취소된 경기를 내일 다시 치른다는..
경기감독관은 킥오프 3시간 전에 상황을 판단하고 취소 여부를 미리 결정할 수 있다던데, 이럴 거면 최소한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라도 알려주지 그랬니...
결국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커다란 걸개를 다시 걷어 챙겼고, 그 길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오던 길에 빠져나오던 창원 시내는 이미 넓은 도로들까지 물이 꽤 차 있었고, 이 정도면 더 이른 시간에도 경기의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이로써 30라운드 한 경기가 결국엔 두 번이나 취소가 됐고, 나는 그 두 번을 다 창원에 왔었으며, 문제는 여길 내일 다시 또 와야 한다는 거다.. 쉬지 않고 오가야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도시를,
2019년 10월 3일 목요일, 그리고 개천절,
약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벌써 세 번째 창원이다. 내가 진짜 엄마집에도 이만큼은 자주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행히 날씨는 쾌청했고, 공휴일과 겹치면서 그래도 제법 많은 팬들이 원정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창원에 막 도착한 이때까지는 그래도 태풍 때문에 고되긴 했어도 창원축구센터에 오는 일 자체가 싫어지진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에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원정석 쪽으로 아예 방향을 잡고 물을 뿌려대는 것이 아닌가.. 정말 나를 포함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흠뻑 젖었다. 어제 만난 태풍이 뿌려대던 비를 맞을 때보다도 더. (창원축구센터는 관중석 1열에서 손을 뻗으면 그라운드위의 선수에게 닿을만큼 거리가 가깝다)
정말이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 가운데 너무 놀란 어린 아이들은 울음까지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제야 경남의 장내아나운서가 한다는 소리가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는 과정에서 물이 '튈 수 있으니' 조심하란다. (흠뻑 젖은 아이들을 살펴보러 온다던가 하는 그 흔한 안전요원 한 명이 없었다)
1년에 수십 번의 축구를 보러 전국의 축구장을 다 다니고, 경기 전 그라운드 컨디션을 위해 물을 뿌리는 장면도 수백 번은 더 봤지만, 관중석 방향으로 '정확히 물을 뿌려대는'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 보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물이 튀는 것과 뿌려대는 것도 구분 못하는 바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물을 실컷 뿌려댄 뒤에 한다는 소리가...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다 지친 것 같은 마음에 결과라도 좋기를 바랐다.
하지만 희한하게 그 당시 우리만 만나면 보란 듯이 더 잘하던 이범수 골키퍼의 선방으로 득점기회를 좀처럼 살리지 못한 채 전반전은 0:0으로 마무리가 됐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후반전, 몇 번의 실점 위기를 넘기며 우리 송범근 골키퍼도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었고, 그러던 후반 중반, 수비수 권경원 선수가 코너킥 찬스에서 이용 선수가 올려준 볼을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이자 팀의 귀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그래, 오늘 이 원정 한 번 때문에 했던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면 오늘의 경기는 이겨줘야지'
라는 생각으로 이 경기가 이대로 끝나길 바랐으나, 아쉽게도 후반 막판 경남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났다.
아, 진짜.. 이렇게 빡세게 오간 창원에서 얻은 결과가 물벼락에 무승부라니...
하긴 뭐, 축구를 매일 잘할 순 없지 뭐......
경남FC는 결국 시즌 말미 부산아이파크와의 승강플레이오프에서 1부 리그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강등됐으며(이 경기까지 또 보러 갔다, 나는, 창원에, 아오..), 그렇게 태풍 속의 요란했던 원정은 나의 마지막 창원 원정이 돼버렸다.
<배경사진 출처-한국프로축구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