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이 되면서 시작된 약간은 이른 추석이었다.
일곱 살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여자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던 첫 조카에게, TV에서만 만나던 동국삼촌을 축구장에 가면 직접 볼 수 있다는 아주 진실된 소식을 전하면서 축구장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했다. 그리고 실제로 축구(라고 하지만 공놀이)에 재미를 아주 많이 느끼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고모가 같이 한 번 가줘야지!
남동생과 일정을 상의하면서 고른 날짜가 추석 다음날이었다. 엄마집에 있다가 같이 이동하기도 편했을뿐더러 다음날 일요일까지 이어진 긴 연휴로 일정을 잡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2019년 9월 14일 토요일,
추석이 지난 다음날, 만 오천 여명의 관중이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에 모여들었고, 나는 축구장이 처음인 조카 둘의 손을 잡고 평소보다 더 들뜬 마음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과 시끄러운 소리들에 낯설어할까 걱정했던 조카들은, 예상과는 달리 아주 신나는 표정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함께 한 조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우리 팀의 유니폼을 선물해 주는 일이었다. (형광녹색의 축구유니폼을 좋아해 줄지는 확실치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들뜬 모습으로 팬샵으로 같이 향하던 모습이 이미 사랑스러웠고, 망설임 없이 동국삼촌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겨서 입고 싶다는 말에는 살짝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역시 조카는 세상 제일 사랑스러운 존재임에 정말 틀림이 없다.
동국이형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으로 옷을 갈아입은 조카들과 함께 드디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내 자리는 언제나처럼 골대 뒤(N석-응원석), 남동생 가족의 좌석은 테이블석이었다(W석-본부석). 축구장까지는 호기심에 같이 왔다고 해도 응원석까지 함께 가는 일은 아직 너무 험난한 일이기에, 쾌적한 관람 환경을 위해 나도 한 번도 앉아보지 못한 테이블석을 준비했다. 다행히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흥미는 여전히 잃고 있지 않던 조카들이었다.
기대감과 설렘 속에 경기가 시작됐고, 가끔씩 바라본 남동생네 가족들은 놀랍게도 축구에 제법 집중을 하면서 보고 있었다. 특히 일곱 살의 큰 조카와 올케는 마치 늘 축구를 보던 사람처럼..(다섯 살의 작은 조카가 집중하기에 두 시간의 축구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네 식구의 모습은 이미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전반전은 이렇게 득점 없이 끝나려나 하던 전반 막판, 당시 팀의 외국인 선수였던 로페즈가 팀의 선제골을 터뜨렸다.
득점 후엔 역시나 모든 팬들이 함께 하는 세리머니인 '오오렐레'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러던 중 바라본 본부석 쪽의 남동생 가족들도 익숙하다는 듯이 너무나 신나는 모습으로 오오렐레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에선 나도 모르게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후반전,
두 시간을 가깝게 한 자리에 있으면서, 공 하나를 두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삼촌들의 모습만 내내 보는 것이 처음보다 지루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조카들은 후반전에도 자리를 잘 지키며 축구를 '보고' 있었다.
후반이 시작되고는 아쉽게도 상주의 김건희 선수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1:1로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러기를 내심 조카들의 축구장 방문에 이기는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고모의 마음이 전달이라도 된 건지 후반 막판 경기 종료를 채 10분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동국이형이 팀의 두 번째 골이자, 귀한 결승골을 터뜨렸다.
응원석에 모인 팬들의 환호는 뭐 당연한 일이었고, 그러면서 바라본 남동생네 가족의 자리에서도 조카들이 득점에 기뻐하며 정말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마치 TV에서만 보던 동국삼촌이 자신들의 축구장 방문을 기념하는 골을 넣어줬다고 반기는 모습처럼..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동국이형한테 고마운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이렇게나 성공적인 축구장 방문을 마친 조카들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여운을 잊지 않고 있었다.
집에 시간차를 두고 조금 늦게 도착한 고모를 본 조카들은 축구장에서 했던 응원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오오렐레'를 연신 보여주고 있었고, 이미 종일 충분히 사랑스러웠음에도 이 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던 조카들을 고모는 꽉 한 번씩 안아 주는 걸로 그 마음을 전했다.
이렇게나 모두에게 정말 완벽한 하루가 지나가며 '다음'을 더 기대하게 만들고 있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존재가 틀림없어!
이후에도 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우리 팀의 유니폼을 하나씩 더 받으면서, 축구장에 가끔은 가고 싶다고 말하는 조카들과 성공적인 두 번째, 세 번째 축구장 방문을 꿈꿨었지만 이것마저도 코로나가 발목을 잡을 줄이야...... 아무튼 코로나 새끼가 문제야, 정말..
그나저나 지금도 조카들이 축구장에 오고 싶어 하긴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