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제일 위험한 게,

비겨도 되는 경기

by Honey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영업 마감을 두 시간여 앞둔 저녁 8시쯤이었다.

영업시간은 10시까지였지만(음식 마감은 9시 30분) 뷔페의 특성상 입장 고객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고,

식사 중인 고객을 케어함과 동시에 하루의 마무리를 조금씩 시작하는 시간대였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직원의 무전,

"점장님, 예약 들어왔어요"

"언제?"

"지금 오신대요"

"지금? 시간이랑 안내해 드렸지?"

"네, 바로 오신대요. 예약자 '전북현대모터스'로 해달라고 하셨어요"

"응? 뭐라고? 너 이 시간에 그런 걸로 장난치면 진짜 곤란하다 ㅋ ㅋ "

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매장을 오픈하면서부터 함께 한, 그리고 지금까지도 얼굴 보며 지내는 소중한 인연들,

대장이 축구 좋아하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직원들이었다.


"진짜예요~~"

"응? 진짜라고? 잠깐 있어봐, 만나"

캐셔 데스크에서 만나 수신 전화를 확인해 보니 정말이었다.

정말 그 시간에 예약이 들어온 것이고, 그 예약자는 믿기 어렵게도 내일 내 휴무의 이유였던 '전북현대모터스'

더욱이 계속 믿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은 '대전'이며, 내일 우리의 홈경기는 당연히 전주에서 열릴 예정이니까, 그렇게 계속 의구심을 가진 와중에 예약 고객이 도착을 했고..


진짜였다.

방문 고객은 정말 우리 팀의 구단 직원이었고, 동행인들은 내일 경기에 배정받은 심판진들이었던 것.

다음날 경기는 K리그가 아닌 아시아챔피언스리그였고,

동아시아지역 조별 경기였기에 중동 심판들이 배정됐던 것이다.

지금이야 전주와 인근 도시에도 그만한 호텔들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전주에 하나만 있던 호텔에는 선수단과 심판진이 함께 묵을 수 없기에, 당시 우리와 맞붙을 J리그의 '가시와레이솔'선수단이 전주의 호텔에, 그리고 경기의 심판진들은 대전의 호텔에 묵게 됐던 것.

늦은 시간에 식사할 마땅한 곳이 없었고, 찾던 중에 우리 매장에 예약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다음날 경기에 대한 설렘으로 아주 성심성의껏 응대를 했다.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심판진에게는 몇 가지 요리를 따로 해주기도 했으니,

(뷔페에서, 그것도 마감시간에, 1인분 요리를 따로 한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이 아닌지 아마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렇게 인솔한 구단 직원에게는,

'나는 사실 전북 팬이다', '내일 경기에도 간다'라는 혼자만 반가웠을 오지랖을 떨면서 그렇게 성공적인 응대를 마친 날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날,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마지막 6차전 경기가 시작됐다.

어제 매장에서 만났던 심판진들을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났고,

우리 팀은 5차전까지 승점 9점으로, 배정된 조에서 아주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소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혹시 지더라도 같은 조의 다른 경기 결과에 따라 진출을 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팀은 (대체 몇 번을 더 만나야 그만 만날까 싶은) '가시와레이솔'을 상대로 0:2 패배를 했고,

같은 조에 속해 있던 '광저우-부리람'의 경기가 그래도 우릴 살려주나 싶은 와중에, 그 경기 역시 막판 광저우가 동점골과 역전골을 때려 넣으며(젠장), 우린 그렇게 2012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안녕을 고했다..


세상에 비겨도 되는 경기는 없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방심을 해서도 안되고, 가능성이 낮다고 포기를 해서도 안 되는 게 축구다.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릴 때 환호할 수 있는 팀은 더 간절하게 모든 걸 다해서 뛴 팀이 될 테니,




그러니 제발,

이번 주말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간절함을 보여줘,

제발, 꼭!








<사진 출처-'뉴시스'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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