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지만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호칭이 늘 편하지만은 않았다. 전공은 재즈였지만, 나는 점점 그것만으로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는 훌륭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매니아의 음악이고,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음악을 나누고 싶었다. 사랑받는 음악, 아니 사랑받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편곡, 작곡, 프로듀싱을 통해 대중가수들과 협업하기 시작했다.
성공은 감사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은 비어 있었다. 매일 스케줄로 꽉 찬 삶, 가르치고, 연주하고,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완벽한 일상 속에서 나는 어느새 소진되고 있었다. “정말 내가 원하던 삶이 맞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의 나는 분명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하지 않았다. 열정은 그대로였지만, 그 불꽃이 내 안을 태우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완벽하게 돌아가던 삶이 오히려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결국 모든 것을 멈추기로 했다. 수업, 공연, 수입 —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모든 일들을 뒤로하고 일단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제 정말 자유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진심인가, 그걸 한번 보자.”
그렇게 도착한 곳이 베를린이었다. 다행히 버클리 시절의 친구 제인과 완 부부가 기꺼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들의 집에서 나는 오랜만에 ‘멈춘 나’를 만났다. 그곳에서 나는 음악을 만들었고, 걸었고,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그게 이상하게도 너무 행복했다.
가끔은 조성진의 공연을 보러 폴란드를 다녀오기도 하고,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친구 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본 것도 좋았지만, 진짜 나를 바꾼 건 ‘사람’이었다. 제인과 완, 그리고 마르세유의 친구 새롬과 성제, 모두 나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줬다. 결국 내가 얻은 건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시선의 변화’였다. 베를린은 내게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한 마음의 공간이었다.
버클리 마지막 학기 때 느꼈던 쓸쓸함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허기짐은 결국 나를 베를린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허기짐은 잠시 다른 것으로 채워지는 듯해도, 결국 본질적인 갈망을 만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 건, 완성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조금 덜 조급해지고, 기대를 내려놓고,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는 것뿐이다. 과거의 나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불완전한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늘 무엇인가를 증명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하루를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여전히 나는 휘청거리고, 때로는 작심삼일로 무너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한다. 매일 조금씩, 다시 작심하며,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완벽한 완성은 없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 예술이란 어쩌면 그런 순간들을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여정을 걷고 있다.
이 글을 쓰며 다시금 느꼈습니다.
결국 모든 여정의 끝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요~
음악을 할 때도, 건축을 바라볼 때도, 글을 쓸 때도 저는 결국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와 시선이 또 다른 제 감정을 일깨우고, 그 감정이 다시 창작이 되어 세상에 흘러가는 것 — 그 순환이 제가 예술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브런치에서는 그런 순환을 나누고 싶습니다. 완성된 문장보다는 과정 속의 생각을, 완벽한 대답보다는 서로의 질문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글을 읽고 느낀 생각이나 감정을 함께 나눠주신다면, 그 어떤 피드백보다 큰 영감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성장 중인 사람이고, 음악가이자 작가로서 여전히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제 이야기를 꾸준히 전해드리고, 여러분의 이야기도 들려받고 싶습니다.
서로의 삶이 잠시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자주 이야기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