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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Jun 06. 2022

사과 | 인정(認定) 없이 인정(人情) 없다


사과할 때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는 1분은

자기를 기만한 며칠, 몇 달, 몇 년보다 값지다.

―켄 블랜차드


어릴 적에 미국에서 살면서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이 두 가지 있습니다. 너무나 많이 들은 나머지 매번 속으로 “그 말 좀 작작 해라.” “뭐 이런 걸 갖고.” 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적인 표현들이었겠지만, 저는 그게 참 낯간지러웠던 거지요.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사람들 간의 대화 자체가 이런 알맹이가 빠진 ‘공갈빵’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서인지, 더더욱 그리워지곤 하는 표현들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뒷받침하고 있는 ‘핵심원리’인 이것은 대체 뭘까요?     


①  Thank you.  

②  I am sorry.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 실제로 이 두 가지 표현이 ‘please(꼭이요, 부탁드립니다)’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고, 또 미국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훈련시키는 표현들입니다. 비록 미국이라는 나라가 마치 개인주의자들로 넘쳐나는 사회처럼 보이긴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이처럼 고마움과 미안함 등의 배려가 담긴 마음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회이지요. 즉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함은 물론, 남의 마음을 기본적으로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감사의 마음, 사과의 마음이 이들의 표현 속에 녹아있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마음에 깔려 있는 본질을 어느 정도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일상 속에서 습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유하는 문화를 당시에 너무나 어린 제가 알 도리가 없었던 거지요.   

   

그것의 ‘위력’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던 저는, 20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그 위력과 더불어 본질을 피부 깊숙이 절감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본질이야말로 우리가 관계를 채워나가는 데 있어 심도 있게 되새겨보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정(認定: recognition)입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지탱시켜주는 건 배려심이나 동정심 등의 마음만이 아닙니다. 그것을 실질적으로 지탱시켜주고 또 제대로 작동시키는 건 나 자신을 인정하듯, 상대방도 깔끔하고 솔직하고 명확하게 인정한다는 마음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자세와 태도입니다. 인지상정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남도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느끼고 받아들일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지요. 남도 나와 다르지 않은 인격과 성격과 성향과 자존심과 자존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걸 다 떠나서, 남이 그저 또 하나의 ‘나’란 사실을 인정하는 겁니다.     


“별 걸 갖고 다 절감하고 감동하네. 우리나라야말로 정(情)의 나라잖아. 초코파이 안 먹어? 우리나라 사람들이야말로 그쪽 방면으로는 전문가들 아이가?” 그런가요? 정말 이 얘기가 별(big) 게 아닌, 별(small) 건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이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인가요? 글쎄요,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에게 관심도 많고 정도 많은, 유쾌하고 호탕한 민족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희한하게도 오히려 남의 감정과 마음을 ‘녹이는’ 이런 표현들에는 익숙하지 않아 보이고, 더더군다나 남을 인정하는 데는 상당히 인색해 보입니다. 자신은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남을 인정하는 데는 왜 그리 배 아파하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개인주의자들이 많은 것 같진 않습니다만, 남에게 관대하거나 심지어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또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뭔가 여러모로 참 어색한 조합이지요?  

   

남을 인정하고, 남에게 솔직담백하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만큼 사람을 가장 빨리, 가장 쉽게 무장 해제시키고 돈도 전혀 안 들면서도, 누구에게나 확실히 통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우리가 이러한 방식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대부분 ‘고마움’을 상대적으로 그나마 덜 어렵게 여길 거라 보기에, 저는 여기서 ‘미안함’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합니다. 대체 ‘미안합니다’라는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에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쩔쩔 매는 걸까요?       


우선 자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에 사과할 이유도, 사과할 필요도 없는 거지요. 따지고 보면 자기만의 완벽주의와 두려움이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도 나와 똑같은 생각과 감정과 감성을 갖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남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나의 잘못을 시인하라고 요구하는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중심성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이고, 자신과 남을 똑바로 응시할 자신이 없는 겁니다. 언젠가 베토벤이 말했듯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없’는 거지요.     


[요리 가이드라인 #1]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할까를 걱정하라. ―공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사 자신이 틀렸음을 스스로 깨닫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뱉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자신과 남의 지위나 위상, 입장이 역전될 거라고 믿습니다. 곰곰이 계산해 봤을 때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클 거라고 보는 거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뒤로 날아올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눈총, 낙인 등의 다양한 왕따 증상들, 그리고 그로 인해 느끼게 될 패배감과 열등감. 우리 사회처럼 옳은 것과 틀린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에서는 후자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죄악’이지요. 그래서 엘튼 존이 말한 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우리나라 안에서만큼은 사용하기가 가장 힘든 말(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 그럼 이 이야기를 회사에 한번 적용해볼까요? 체감온도로만 보자면 회사가 사회보다 훨씬 더 무서운 곳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사평가’라는 차갑고 냉정한 법이 여러분의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사과는 어느 누구에게도 한가한 주제일 수가 없습니다. 사과 한마디 안 하는 게 당장은 사소한 티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조금씩 쌓이다보면 나중에 가서는 자신에게 온갖 유․무형의 ‘보복’이 돌아온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되지요. 사람들의 시선과 눈치, 뒷담화에서부터 팀워크 기피 혹은 제외 대상, 나아가서 승진 리스트에서 누락되는 일까지. 심한 경우 자발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뭐여? 완전히 딴 세상 사람 얘기네. 현실성이 없잖아.” 미안하지만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 모두에게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자신이 회사 안에서 잘못을 했을 때, 스스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면 좀 더 와 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질문들에 한번 대답해보시길 바랍니다. 조건이 있다면, 어떠한 위선이나 가식도 없이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것.     


①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아니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쉽게 인정이 되는가?

② 남에게 실수를 한 부분에 대해 아무런 변명이나 궤변 없이

     떳떳하고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가?

③ 남이 자신의 실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할 수 있는가?

④ 주변의 시선을 도저히 못 참는 나머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사과가 아닌,

     자신이 잘못했고 남이 그것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과를 할 용기가 있는가?

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별 어려움 없이 드는가?      


한 가지 미리 선을 그어둘까 합니다. 사과를 하고 안 하고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사과를 빨리 하느냐 마느냐도 두 번째 문제이지요. 여러분이 ①부터 ③까지의 질문 중 어느 하나라도 인정을 못한다면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사과가 진정 사과다우려면 그것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어야 할 텐데,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자신이라는 사람과, 그 사람이 저지른 행동과, 그 행동이 남에게 미칠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 자체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건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주변 사람 모두를 속이는 행동입니다.     

[요리 가이드라인 #2] 실수는 인간이면 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Doug Larson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 자신과 잘못을 당한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둘 사이를 매개하는 잘못이란 행위를 스스로 인정하는지가 바로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핵심 문제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회사생활을 ‘굵고 짧게’ 하고 싶은가요, 아니면 ‘가늘고 길게’ 하고 싶은가요? “사과, 그까이꺼 안 해도 아무 불편 없이 멀쩡하게 잘만 지내네 그려.”와 “사과, 그까이꺼 뭐 그리 대수라고. 좋은 게 좋은 거여. 해야 하면 당연히 하는 거지.” 둘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는지요?   

   

여러분이 회사를 마음 편히 오래오래 다니고 싶다면 ‘똑똑하게 사과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과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사과하고 ‘땡’도 아니고, “(잠깐) 자존심 한 번 접어주지” 식의 일회적이면서도 양보의 성격을 띤 사과도 아닙니다. 단순히 팀워크나 분위기 때문에 하는 사과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사과를 하는 건 사과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어서도 아니고, 이 순간을 어떻게 잘 모면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모두를 위해 좋은 게 결국 좋은 거니까’ 식의 일방적인 집단중심적 결과를 얻기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는 엄연히 그 과정을 위해 사과를 하는 겁니다. 한 걸음 물러나 자기 자신과 자신이 한 행동을 인정하고, 동시에 상대방 자신과 상대방이 가졌을 느낌과 생각을 인정하기 위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건 스스로를 직시할 수 있는 겸손함과 상대방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지요.  


제일기획에 다닐 때 저도 참 골치 덩어리였습니다. 하루는 몇 명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제 바로 위의 선배가 저를 처음부터 끝까지 갈구더군요. 아이디어가 영 아니어서 물고 늘어지는 거라면 그나마 참고 넘어가겠는데, 아이디어에 대한 딴지를 넘어 제 인격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우회적으로 교묘하게 곁들이는 겁니다. 그야말로 뚜껑 열리는 일이지요.     


광고회사 안에서의 회의는 대부분 개인의 독창성과 창의성과 직결된 내용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일반 회사 안에서의 회의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매번 각자의 자존심과 자존감이 걸려 있는 한 판 승부인 만큼, 모두가 무척 날이 서 있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아이디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격에 대해 논했으니 말 다 한 겁니다.     


일은 전광석화처럼 터졌습니다. 볼펜과 종이가 여기저기 날라 다녔고, 의자 부딪히는 소리는 사람들의 대화를 한 순간에 중단시켰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저는 선배의 멱살을 꽉 잡고 있었지요. “선배면 다야? 내가 그동안 쭉 참아왔는데, 나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내 눈 똑바로 보고 정정당당히 하라고. 치사하게 딴 소리 해대지 말고. 우리 계급장 떼고 맞장 한번 뜰까? 오래 다니면 다 선배야? 실력으로 당당하게 나보다 선배라고 할 수 있어?”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더 많은 말들을 쏟아냈던 것 같습니다만, 이 정도만 얘기해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말 그대로 하극상이 벌어졌던 겁니다.  

   

일주일 동안 저는 주변의 화젯거리 겸 동네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얘기하든 말든 자존심이 센 저는 끝까지 버티면서 사과를 안 했지요. 그러다 그것을 보다 못한 팀장님의 개입으로, 솔직히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과를 하는 걸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사과의 내용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가 그때 너무 흥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생각이 짧았고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절대 진심이 아니었다, 당신을 여전히 실력 있는 선배로서 존중한다, 우리 다시 잘 지내고 화이팅하자 등의 지극히 일반적인 사과 멘트들이 전해졌지요.      


그 뒤로 선배와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 잘 지냈을까요? 한 1개월 정도는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2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다시 원래의 ‘으르렁’ 관계로 돌아왔지요. 물론 싸울 당시처럼 극한 대립은 아니었지만, 서로 싸늘한 시선만 교환할 뿐 가급적 서로의 눈을 피하고 대화를 안 하려고 노력했던 건 분명 기억납니다. 사과? 결국 헛수고였던 거지요.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등이 떠밀린 채 사과를 한 거였으니, 제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둘 사이를 ‘이간질’해놓은 제 말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니 거기에 어떤 진심이 담겨 있었겠습니까? 형식적인 사과, 사과를 위한 사과, 당장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에 불과했던 거지요.    


[요리 가이드라인 #3] 실수는 언제나 용서받을 수 있다. 그것을 스스로 인정할 만한 용기가 있다면. ―이소룡(Bruce Lee)    

  

진심이 없었으니, 인정도 물론 있을 수 없었던 겁니다. 우선 저는 제 자신부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애당초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건 분명 상대방이 어떤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남이 어떻게 보든 저는 스스로 완전무결하고 완벽했기에 실수 따위는 제 소관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다 남 탓이었던 겁니다.     

 

저는 상대방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을 거라는 점은 당시에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얘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아예 고려할 가치가 없었던 겁니다. 요컨대 제가 한 행동은 충분히 이유가 있었고(이유가 없었다고 해도 얼마든지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지요), 정당화되고도 남는 것이었기에 그것의 오류를 인정하고 말고 할 것 자체가 없었다는 겁니다.            


저는 저와 상대방 모두를 속였습니다. 오히려 사과하고 나서 발가벗겨진 제 자신의 자존심과 자존감이 망가질까 봐, 상대방이 얕잡아보고 만만하게 여길까 봐, 남들이 약한 모습 보인다고 속삭이고 다닐까 봐, 결국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거짓으로 더 강하게 포장해야 했던 겁니다. 저는 제 자신의 잘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과 상처를 둘러보고 그것에 대해 솔직하고 용기 있게 사과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직시하지 않았던 셈이지요.     


세상에 본질적으로 ‘나쁜 놈’이란 없습니다. 남에게 정말 피해를 줄 의도로 나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순진하게도 우리가 정말 자주 잊어버리고 간과하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순진하게 믿고 ‘알아줄’ 사람 또한 없다는 겁니다. 회사 안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여러분이 ‘회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정받길 원한다면 매 순간 자신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나라는 사람과 더불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군더더기 없이 인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와 똑같은 대우와 취급을 받고자 하는 남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한다는 것, 그것은 자존심이나 자존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오히려 모든 문제는 진실을 피하는 데서 시작되지요.     


제 말이 아직 크게 와 닿지 않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뭐, 인정하라는 말만 들입다 해대는데 사실 인정해야 할 이유가 썩 다가오진 않네.” 그런가요? 그럼 좀 더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건 어떤가요? 고소득자일수록 ‘미안하다(I’m sorry)’는 말을 많이 한다면? 구미는 당기는데 “에이, 설마” 이런 생각이 드는지요? 그런데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마냥 허황된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2007년 10월, 미국의 비즈니스 잡지 포춘(Fortune)은 ‘연봉을 높이고 싶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라(Want a higher paycheck? Say you’re sorry)’란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기사를 나름대로 요약한 기사를 붙여놓습니다.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장 ‘돈되는’ 말 “I am sorry” (연합뉴스, 2007. 8. 29) 

“‘미안하다’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소득 더 높아”     

“미국에서 가장 돈 되는 말은 ‘I am sorry(미안합니다)’” 미국에서 ‘I am sorry’라고 사과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소득이 높다는 ‘이색’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그비 인터내셔널은 최근 7천59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오차범위 ±1.1%), 연봉이 10만달러 이상인 고소득자가 연간 2만5천달러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빈곤층보다 2배 정도 사과를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를 의뢰한 온라인 보석판매업체인 ‘더펄아울렛(The Pearl Outlet)’은 많은 고객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하기 위해 진주를 산다는 사실을 알고 이 같은 조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꼈을 때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연봉을 기준으로 10만달러 이상자 가운데 92%가 ‘그렇다’고 답변한 반면, 7만5천~10만달러 소득자는 89%, 5만~7만5천달러 소득자는 84%, 3만5천~5만달러 소득자는 72%, 2만5천~3만5천달러 소득자는 76%, 2만5천달러 이하 소득자는 52%만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과를 더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     

또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을 때도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10만달러 이상 소득자 가운데 22%가 ‘그렇다’고 답변한 반면, 2만5천달러 이하 소득자는 단지 13%만이 ‘그렇다’고 답변, 1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가 2만5천달러 이하 빈곤층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사과를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비즈니스 컨설턴트 피터 쇼는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우려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고, 다른 전문가인 마티 넴코는 “고소득자들은 더 총명하고 자신을 더 안전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들은 자신이 잘못했을 때 사과하는 게 자신의 경력에 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소득자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짓밟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더 많이 사과를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더펄아울렛의 테리 셰퍼드 사장은 “고소득자일수록 사전에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사후에 사과하는 게 쉽기 때문에 더 많이 사과를 하고 사전에 허락을 덜 구하는 것”이라면서 “이번 조사의 결론은 많이 벌고 싶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우리가 사과를 하는 건 단지 상대방에게 미안해서만이 아닙니다. 팀워크를 위해서만도, 심지어 조직이나 회사를 위해서만도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과를 하는 거고, 스스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사과를 하는 겁니다.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을 때 남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는 법이지요. 요컨대 사과란 건 인정에서 시작해 인정으로 끝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 이제 사과의 효과를 스스로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을 겁니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게 된 자신은 자신대로 기분이 좋아지고, 진심어린 사과를 받은 상대방은 또 상대방대로 기분이 좋아지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까요? 어느 누구에게도 밑질 게 없는, 오로지 남는 장사인 사과. 바로 이 사과라는 남는 장사의 비결이 ‘인정’에 있다는 점을 부디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명셰프의 30초 요리팁 |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그룹 창업자

“논리적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것에 얽매이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배려하는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게 낫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치나 논리가 아닙니다.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사과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로만 떠드는 사과보다는 마음속의 목소리, 즉 양심의 가책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고통스런 모습이 상대방의 마음을 더 잘 움직이니까요. 솔직하게 사과하고 싶을 때 사과하면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당신에게 사과할 것입니다.”                               


『닥터쿡, 직장을 요리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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