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표님께서는 인재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요. 또한, 재능(인재성)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재라는 단어를 보면 재목이라는 뜻의 材를 씁니다. 그런데 천재, 둔재 등을 이야기할 때는 재주라는 뜻의 才를 쓰지요. 이 둘의 차이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박태환은 수영계의 천재(天才)이고 김연아는 피겨스케이팅계의 천재이지요. 그렇다면 스케이트를 못 타는 박태환은 피겨스케이팅계의 둔재(鈍才)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박태환이 어렸을 때부터 스케이트를 탔다면 그는 남자 김연아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수영 재능은 수영에 대한 노력 + 잘하려는 의지 + 참고 매진한 인내 + 남과 다른 방법을 구사하는 창의력 + 이해력 등 엄청나게 많은 재능(才)들의 합산입니다. 여기서 수영에 대한 노력을 스케이트에 대한 노력으로만 바꿨다면 박태환은 스케이트로도 대성했을 겁니다. 즉, 제가 생각하는 材는 才의 패키지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호떡을 십년 구우면 호떡 굽는 재주가 생길 텐데(才를 말하죠) 그러면 사람들은 그를 호떡 인재(材)라고 부르곤 합니다.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십 년 구우면 둔재라도 그 재주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가 진짜 호떡을 잘 굽는 인재라고 인정받으려면 다른 십 년을 구운 사람보다 그가 더 잘 구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호떡 인재(材)가 아니라 누구나 그 정도 하면 할 수 있는, 호떡 굽는 재주를 가진 호떡 인재(人才) 정도인 셈이지요.
진짜 인재는 앞에 말한 다른 才들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십 년간 스케이트를 타도 김연아처럼 못 타는 이유는 스케이트 소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케이트 이외의 다른 재주들(인내심, 노력, 의지, 태도, 기타 등등)이 그녀보다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제 주변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그걸 잘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을 인재(人材)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게 그저 그림 그리고 노래하고 글 쓰는 才(재주)일 뿐이지요. 거기에 또 다른 재주들이 결합된 사람들이면 그때 비로소 그들이 피카소가 되고 파바로티가 되고 그러겠죠.
많은 경영자들이 인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그들 밑에 특정 분야에 재(才)가 있는 사람들(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은 많은데 뭐든 잘할 수 있는 재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주 쉽게 요약하자면 인재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여러 재주(노력, 태도, 의지, 창조성)를 가진 사람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뭘 잘하는 사람보다 지금 뭘 잘하지만 앞으로 다른 것도 잘할 사람이 진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2. 벤치마킹을 '복사' 혹은 '베끼기' 정도로 쉽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롤 모델이라는 존재를 그러한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고요. 대표님께서는 20-30대 시절 롤 모델이 있으셨는지요. 실제로 그 롤 모델이 대표님께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대표님께서는 그 롤 모델을 어떻게 삶에 활용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만 명에게 알려진 걸 적용하면 패러디, 천 명에게 알려진 걸 반복하면 카피, 백 명에게 알려진 걸 따라하면 오마주(hommage), 열 명에게만 알려진 걸 응용하면 벤치마크, 한 명에게만 알려진 걸 몰래 흉내 내면 표절 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롤 모델은 패러디나 카피나 표절이 아니라 벤치마크의 대상이지요. 다시 말해 추가적인 나만의 창조가 뒤따라야 벤치마크라고 할 수 있지요. 주제로 돌아가 롤 모델에 대한 제 생각은 일전에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롤 모델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컴퓨터 하나로 떼돈을 번 벤처스타가 나타나면 그를 롤 모델로 삼은 후배들이 정보통신산업에 몰리게 되고, 그 뛰어난 인재들은 다시 정보통신산업을 발전시키는 선배가 되고 하는 식의 산업발전 선순환 구조 말입니다.
박세리와 골프 시장의 관계가 그랬지요. 박세리를 롤 모델로 삼은 박세리 키드 신지애가 지금은 또 하나의 신지애 키드를 만들고 있지요. 즉 누가 누구를 롤 모델로 삼으려고 하면 그는 자신이 또 다른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제가 속한 산업 종사자들은 열에 다섯이 “이 바닥에는 롤 모델이 없어”라고 푸념합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롤 모델로 삼을 만한 훌륭한 이들이 롤 모델로 삼았던 사람은 누굴까. 그 롤 모델의 롤 모델의 롤 모델의 롤 모델은 또 누구였을까. 세상은 가장 훌륭한 롤 모델 몇 명과 그를 본받는 아들과 손자로 꽉 차 있어 태초의 롤 모델보다 후퇴되고 있다는 말일까. 그렇진 않을 겁니다. 모르긴 해도 그 롤 모델의 계보가 그렇게 순혈적이거나 직렬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회생활 10여 년간 저는 수 백 명의 롤 모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입사원 시절, 저로선 대하기 어려웠던 기자에게 “격조했습니다” 폼 나게 통화하던 상사가 제 최초의 롤 모델이어서 저는 그 뒤로 기자들에게 “격조했습니다” 하고 전화를 걸곤 했었죠. 매일 아침 제일 일찍 출근하는 지금의 제 부하직원 김 대리도 제 롤 모델 중의 하나이고요.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제 입장에선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모든 신입사원들이 제 롤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배워가는 와중에 저 스스로 또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그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추스르고 실력을 돌아보곤 하게 되지요. 모두가 저의 롤 모델이어서 그들로부터 배우고, 저 스스로 롤 모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많이 반성하고 배우는 등 이중 교육을 받는 셈입니다.
잭 웰치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를 롤 모델로 삼았냐고 물어보면 그의 경영철학을 배우고 싶다는 식의 아주 단순한 대답을 합니다. 그게 그리 쉬우면 그 사람 책을 읽은 모든 독자는 다 잭 웰치가 될까요.
결국 롤 모델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선배, 동료, 후배들의 장점을 해체하고 조합한 가상의 인물이어야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제게 이건희보다, 빌 게이츠보다 상사의 전화통화법 하나가 더 영향을 미쳤듯이 말입니다.
도산공원에 가면 ‘도산의 말씀’이라는 조형물이 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지요.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이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그 옛날 도산도 “롤 모델이 없다”고 푸념하는 백성들을 만날 때마다 속이 터졌던 겁니다.
3. 우리나라에는 자신이 무엇을 즐기고 원하고, 잘하는지를 모르는 20-30대 인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에게 이것을 깨닫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와 팁을 주기 위해 여쭤봅니다. 대표님께서는 자신이 평생토록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발견하셨는지요. 어떤 과정을 겪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꾸었던 많은 꿈 중에 “나중에 돈 벌면 이 오락실 기계 다 사다 집에 놔야지”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그런 꿈을 꾸었는데 나중에 돈 벌어서 진짜 그 오락실 기계를 샀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
저는 사실 ‘하고 싶은 일’이란 단어 자체를 품고 살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하다 보면 늘 하기 싫은 일로 바뀌더군요. 우리 생에 그렇지 않은 일이 있던가요?
세상엔 할 수 있는 일, 하지 못하는 일,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 못하는 일이 착시현상 탓에 ‘하고 싶은 일’이 될 때도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해야 하는 일’로 짓누를 때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 하세요. 단, 할 수 있으면 말이죠. 지금 저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삽니다. 그래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할 때가 많아요.
4. 사람들이 낙관적 비관론자와 비관적 낙관론자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한다면, 대표님께서는 어느 쪽을 추천하시겠어요?그 이유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역시 늘 하던 말인데 제 경우엔 리더이기 때문에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말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정했습니다.
제 비관적인 생각은 저를 더 긴장하게 하고, 저는 우려하는 그 최악의 상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제 낙관적인 말은 제 동료와 고객을 안심시키고, 그들이 저를 신뢰하게 하며 그들은 그 최상의 상태가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게 됩니다. 즉 저는 긴장하고 제 동료는 안심시키자, 이게 제 원칙입니다.
만일 우리 회사의 올해 매출 목표가 100억 원이라고 칩시다. 이 말을 풀어보면 우리 회사는 지금 “적당히 지금 추세로 나가면 7-80억 정도는 달성할 수 있고 일이 아주 잘 풀리면 목표인 100억을 초과 달성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50억 정도 밖에 팔지 못할 상태”에 놓여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제 생각은 비관적입니다. “최악의 경우 우린 50억밖에 못 팔지도 몰라.” 하지만 제가 입으로 뱉는 말은 낙관적입니다. “일이 잘 풀리면 100억 정도는 아무 문제없이 달성될 거야!”
5. 대표님에게 홍보(PR)란 무엇인가요.
홍보에 대한 정의는 학자들의 몫이고 직업인으로서의 여준영 개인적으로 답해야 한다면 홍보는 10년 전에는 제 미래였고 5년 전에는 제 현실이었고 지금은 제 과거입니다.
6. 지금도 많은 분야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만, 저는 단순함(simplicity)이 이제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께서 보시기에 저희가 일상생활 속에서 반드시 실천하고 적용해야 하는 단순함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디자인 측면에서 단순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자면 단순함은 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굵은 녹색선 직사각형을 보면 우리는 네이버를 떠올리게 되지요. 그런데 네이버가 십 년 전 아무도 몰라주던 시절 그 상자를 들이댔다면 그래도 우리가 네이버를 떠올렸을까요. 그 사이 수많은 복잡한 디자인,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고객과의 인터랙션(interaction), 광고 공세, 홍보 등을 통한 사전 교육이 없었다면 그 상자는 한 푼 값어치도 없는 그냥 상자로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그러니 단순함은 복잡함의 은혜를 받으니 단순함이 복잡함을 욕할 자격이 없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저희 회사는 최근 회사소개서 나노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A4 크기라는 관행을 깨고 명함보다 조금 큰 크기의 얇은 회사소개서에 꼭 담고 싶은 말만 담았지요. 만일 저희가 지난 십 년간 복잡한 성공 케이스들을 과시해 오지 않았다면 과감하게 이렇게 앞뒤 자른 심플한 회사소개서를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우리에 대해서 말 안 해도 다 알지?”할 때쯤 되니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지, 오히려 회사 자산이 심플했다면 심플한 회사소개서를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한 가지 더. 과거 복잡한 TV들이 있었기 때문에 요즘 나오는 단순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걸 수도 있습니다. 복잡함 다음의 심플함이 각광받는다는 것처럼, 어쩌면 심플함의 홍수 이후에 다시 복잡하고 정밀한 디자인적인 찬사를 받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좋은 것’보다 ‘다른 것’을 추구하니까요.
8. 저는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끊임없이 정보와 노하우를 습득해 인재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로그 세대(Rogue Generation)'로 부르고 싶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여느 업계처럼 저희 업계에도 파워 블로거가 있고 또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활동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별로 응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보를 과생산하고, 또한 동시에 과소비하면서 삽니다. 정보는 자산이 아닌 재료로 쓰이기 위해 소비되는 것인 만큼 과소비를 하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재고만 쌓이게 되지요.
어떤 블로거를 보면 매일매일 외국의 최신정보를 열심히 업데이트 하는데, 그 방대한 정보를 정말로 다 머릿속에 넣고 소화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아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데 말이죠. 나중에 보기 위한 자료로 정리해 놓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들의 옷장 속에 일 년에 한 번도 입지 않는 옷들이 얼마나 많던가요. 그 정보들의 운명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보를 양이 아니라 질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 개 정리하고 저장할 시간에 한 개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훨씬 남는 장사예요.
또 업계 선배들과 혹은 동료들과 틈만 나면 모이고 정기화하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요. 그런 커뮤니티들은 대개 십 분의 콘텐츠를 위해 오십 분의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과 뒤풀이를 요구하거든요.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사교를 즐기는 거지 그걸 통해 전문성을 키우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물론 그런 커뮤니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콘텐츠의 질입니다.
제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진짜 선수는 그런 커뮤니티에 잘 안가요. 진짜 선수의 콘텐츠는 그런 곳에서 얻을 수 없다는 뜻이지요.
아마도 로그라는 캐릭터는(만화는 안 봤지만) 최대한 많은 캐릭터를 접촉하는 게 아니라 세고 능력 있는 캐릭터만 접촉해서 그 놈들의 것을 쏙 빼왔겠지요? 그렇다면 로그라는 캐릭터의 미덕은 양이 아니라 질이겠지요.
9. 대표님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인가요.필요하다면, 현재라는 단어의 의미와 엮어서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제가 수학은 잘 모르지만 과거를 적분하면 현재가 나오고 현재를 미분하면 과거가 나옵니다. 현재를 적분하면 또 과거가 나오겠지요.
지금 제가 누리는 거 아쉬운 거 모두 다 과거에 제가 잘하고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현재에 제가 잘하고 못한 것은 다시 미래에 반영되겠지요.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자 미래의 과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10. 내일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대표님께서는 무엇을 하시겠어요? 3-5가지 정도로 정리해서 말씀해주세요.
그게 If(만약)가 아닌 게, 저는 약간의 조울증이 있습니다. 우울증이 있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가까운 지인의 돌연사니 사고사니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내일이 인생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지곤 합니다.
제겐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있지요.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하면 뭘 해” 하고 대충 살기.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보기. 후자처럼 생각하려고 늘 노력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