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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Apr 07. 2019

나는 당신이 아픕니다

롤랑 바르트를 오마주하며

최근에 감성단상(감성시)집

비로 그대를 대신하다(가제) 완성했습니다.


햇수로 따져 보니, 감성단상(감성시)이라는 걸

써온 지도 거의 15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도 몇 편 올려놓긴 했지만,

써온 기간을 생각해보면 그동안 거의 공개하진 않았던 거지요.)

자기계발이 메인인 작가가 갑자기 웬 감성단상(감성시)집이지,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소 봉창 두드리는 느낌이 들 수도요.


사실 그 계기는 단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됐습니다.

바로 그 책에 담겨 있는 한 꼭지가

저로 하여금 이 여정의 스타트를 끊게 했지요.


평론가로선 대선배이자,

철학자로선 제 우상 혹은 영웅 중 한 분인 Roland Barthes.

그의 저서 『사랑의 단상』에 담겨 있는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가

이 모든 것의 실질적인 시작입니다.



개인적으로 과하게 애정하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이 책 안에 있는 꼭지들 중에서도

특히 애정하는 꼭지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물론, 번역 원문 그대로.


즐감하시길. Bon Appétit!


덧. 세정씨도 이 책을, 이 꼭지를 본 것 같네요.

2009년에 발표된 에피톤 프로젝트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도

시간 날 때 한번 감상해보세요.



연민 COMPASSION. 사랑의 대상이 사랑의 관계와는 무관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행하거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거나 보거나 알 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격렬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1. "그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그를 느낀다고 가정한다면

     — 쇼펜하우어가 '연민(compassion)'이라 부르는 것,

     혹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고통 속에서의 결합, 고통의 일치라 할 수 있는 것

     — 그가 자신을 미워하면 우리 또한 그를 미워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환각에 시달리거나 미칠까 봐 두려워한다면,

     나 또한 환각해야 하고 미치광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이 어떠하든 간에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끔찍한 일이기에

     나 또한 동요하며 괴로워하나, 동시에 냉담하며 젖어들지 않는다.

     나의 동일시는 불완전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이긴 하지만

     (그는 내게 걱정거리를 준다), 부족한 어머니이다.

     내가 실제로 그를 보살펴 줄 수 있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동요한다.

     왜냐하면 내가 '진지하게' 그 사람의 불행에 동일시하는 순간,

     내가 그 불행에서 읽는 것은 그것이 나 없이 일어났으며,

     이렇듯 스스로 불행해진 그가 나를 버리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와는 무관한 이유로 해서 그 사람이 그토록 괴로워한다면,

     그건 내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고통이 내 밖에서 이루어지는 한,

     그것은 나를 취소하는 거나 다름없다.


2. 그리하여 하나의 역전이 내도한다.

     그 사람이 나를 제쳐놓고 괴로워하는데,

     왜 내가 대신 괴로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불행이 나로부터 그를 멀어지게 하는데,

     왜 나는 그를 붙잡을 수도, 그와 일치될 수도 없으면서

     그의 뒤를 숨 가쁘게 쫓아다녀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

     타자의 죽음 뒤에 홀로 살아남는 그 순간부터

     모든 주체의 입에서 나오는 저 억압된 말,

     살자(Vivons!)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자.


3. 그러므로 나는 그를 '압박하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으면서 그와 더불어 괴로워하리라.

     아주 다정하면서도 통제된, 애정에 넘쳐흐르면서도

     예의바른 이 처신에 우리는 '신중함/부드러움'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연민의 '건전한' 형태이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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