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창작의 애환과 완성
창작의 고통은 결과물의 만족도와 타인의 피드백에 따라 완전히 치유되기도,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열심히 쓴 작업의 결과가 성에 차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때보다 드물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창작을 지속하는 이유는 그 흔치 않은 성취의 기쁨 때문이다.
나는 곡을 쓰는 사람이다. 처음 곡을 쓰게 된 계기는 스스로 부를 노래를 찾다가 끝내 맘에 드는 곡이 없었던 순간에서 비롯됐다. 그 곡을 완성했을 땐 ‘내가 과연 작곡이라는 것을 해낸 것인가?’라는 어벙벙한 감정과 함께 ‘이거 어디서 들었던 멜로디 아닌가?’라는 자기 검열이 곧바로 따라왔다. 그래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 곡을 처음 부른 직후 청중들의 반응이 상상 이상으로 놀라웠기에 그 순간 폭발한 도파민이 여전히 곡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곡을 쓰는 일을 거듭하면서 가끔은 노래가 아주 짧은 시간에 쓰이기도 했다. ‘이런 게 영감이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필을 받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곡도 있었다. 스스로가 대견했고 뿌듯했다.
헌데 뒤늦게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면서 나의 작곡은 예상치 못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배우가 되고 싶어 들어간 학교에서 어쩌다 뮤지컬을 작곡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내가 부를 노래’뿐 아니라 ‘남들이 부를 노래’를 쓰게 됐는데 이는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노랫말도, 멜로디도 혼자 쓰던 것과 달리 ‘작가’라는 파트너가 생겼다. 파트너와의 협업은 혼자 작업을 하던 것과는 180도 달랐다. 혼자 짓고 혼자 결정하던 것과 달리 상대의 의견을 듣고 수용하거나 때론 내 의견을 열심히 관철시켜야 했다. 각자의 작업물이 상대방에게 한 큐에 오케이가 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동상이몽이어서 썼던 것을 수정하거나 심하면 전부 엎고 다시 써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창작자끼리 외로이 작품을 쓰는 pre-production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면 조금 더 많은 이들의 피드백이 쏟아진다. 프로듀서, 연출, 음악감독, 안무가, 각 파트의 디자이너, 배우들까지. 그 결과 컴퓨터 폴더에는 수많은 버전의 대본과 악보가 매일매일 업데이트되고, 지금이야 태블릿으로 파일을 갈아 끼우지만 종이로 공유하던 시절에는 매번 “나무야 미안해...”를 외치며 수없는 인쇄를 거듭했다. 실로 공연 직전까지 — 때로는 공연 오픈 이후에도 — 수정의 폭풍에 휩싸이곤 한다. 이처럼 '함께 창작을 한다는 것'은 이리도 수고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하지만 이렇게 버거운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지하듯 글을 쓰는 모든 작가들은 퇴고와 교정의 과정을 거친다. 교정이야 편집자나 교정·교열 담당자들이 도와준다지만, 퇴고는 결국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글을 다시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내 속에서 나온 것을 내가 부정하고 다시 쓰는 일, 이 과정이 아주 고역이다. 지금 출연 중인 뮤지컬 <팬레터>에서도, 김해진이라는 캐릭터는 극 중 이런 말을 한다.
“아이고, 내 글을 내가 고치려니 죽겠네...”
이처럼 수정의 전쟁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이들에 비해 파트너가 있는 창작은 상대적으로 덜 외롭다. 협업을 하는 동료들의 존재는 오히려 든든한 아군이기 때문이다. ‘나의 만족’이 아닌 ‘우리의 성취’를 위해 애쓰는 이 작업은 꽤나 매력적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내가 직접 부를 노래를 쓰던 시절과 달리 뮤지컬 음악을 쓰면서 단번에 써 내려간 곡은 손에 꼽는다. 그마저도 드라마와 붙여봤을 때, 배우들을 만났을 때, 극장에 들어갔을 때 이런저런 이유로 수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쓴다는 것은 처음 쓸 때보다 왠지 몇 배는 더 힘들 때가 있다. 우선은 나처럼 소심한 창작자는 창작물과 나를 대개 동일시하기에 나를 부정당하는 감각을 극복해야 하고, 무엇보다 기존의 아이디어를 비껴가면서 더 나은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이 괴로운 '다시 쓰기'의 시간은 아무리 경험해도 쉬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수많은 Rewriting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을 보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이들이 나의 의도를 그대로 느끼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나는 또 다음 작품을 소망한다. 아... 이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창작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