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부치 Jan 06. 2017

‘바그다드카페’와 디자인의 '융합'

영화를 통한 디자인 이야기

며칠 전 부산 출장을 위해 KTX에 올랐다. 가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 한 편 보기로 했다. 평소에 좋은영화라고 이름만 듣고, 시간 있을 때는 결코 보지 않았던 1987년도의‘바그다드 카페’를 보게 됐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서 7시에서울역에서 KTX를 탔기에, 나는 편히 잠들기 위해서 조용한영화로서 선택했다. 


그러나, 나는 잠 한숨 못 자고, 정신만맑아졌다. 영화는 너무 재미있고, 생각할 것이 많은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장면도 버릴게 없는 영화였다. 이미 좋은평가가 많은 영화였지만, 탄탄한 스토리와 부조화의 조화로움을 보여주면서, 흥미와 예술성 모두 갖춘 명작이었다. 내가 ‘바그다느 카페’에서 느낀 점은 일반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완벽히 흔들어놨다는 것이다. 


‘바그다드카페’ 영화 포스터(구글 이미지검색에서 발췌)


영화의 줄거리를 이 글에서 말하지는 않겠다. 주인공은 전혀 어울릴수 없는 두 아줌마였다. 뚱뚱한 독일 아줌마 ‘자스민’과 미국의 할렘가 출신 같은 흑인 아줌마 ‘브렌다’가 주인공이었다. 영화속에서 이들의 처음 모습은 삶에 찌든 아줌마의전형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먹고 살기 위해 삶에 지쳐있는 아줌마였고,거칠고, 이기적인 마치 제3의 성을 가지고 있는듯한 그냥 아줌마였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알아주기 시작하면서 그녀들의 진정한 가치와 내면의아름다움이 발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자스민’은 철저하게 기존의 틀을 대변하는 독일 이름 ‘문치슈테트너’ 부인으로서 사람들을 마주할 때와 상냥하고, 내면의 자아인 ‘자스민’일 때가 사뭇 달랐다. 영화를다 보고나면, 아름다운 ‘자스민’만이 기억에 남는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은 ‘알다(知)’라는 동사 어간에 ‘음’ 접미사가 붙은 ‘알음’에‘답다’ 접미사가 붙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알고 있는 모든 것, 즉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미의식을찾고 있다는 의미이다. 결코 하나의 요소인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와 그것을표현하고 실천하는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어울려졌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알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는 자스민이 왜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뚱뚱한 그녀를 위하는 척하지 않는다. 결코 ‘외모가 뚱뚱해도, 착한 사람이 이쁜 사람’이라는 위안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아줌마 ‘문치슈테트너’와 ‘아름다운자스민’은 하나의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극 중의 삼류화가이자자스민의 진가를 유일하게 첫 눈에 알아차린 ‘콕스’가 있다. 


자스민은 ‘콕스’의 그림모델 역할을 하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자스민의 누드가 나오는 순간, 중년의 뚱뚱한 아줌마의 몸뚱아리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이 포즈를취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그런 자스민의 모습에 흠뻑 반할 수 밖에 없었다.


미의 관점이 예전에는 풍성함이었다. 우리나라의 황진이, 중국의 양귀비, 이집트의 크레오파트라모두가 뚱뚱했다고 한다. 우리의 고대의 기준이 그렇다고만 인정할 뿐이지, 지금의 인식으로는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서 왜 그것이 아름답다 라는 하는 건지를 느낄 수 있었다.


콕스는 여러 장의 자스민의 초상화를 그려나간다. 처음에는 아줌마 ‘문치슈테트너’를 그린다. 자스민스스로도 ‘문치슈테트너’ 부인으로서만을 보여준다. 영화는 자스민이 ‘바그다드 카페’에서스스로의 진가와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어느덧 관객들은 자스민의 진정한 매력에공감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풍성한 육체의 누드를 보게 된다. 그리고자스민의 섹시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진짜 느끼게 된다. 


‘자스민’의 ‘바그다드 카페’의 불청객에서식구로서 융합의 과정(구글 이미지검색에서 발췌)


엉뚱할 수 있지만, ‘바그다드카페’를보면서 디자인에서의 융합(convergence)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많을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의미가 이 영화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디자인의 생존과발전을 위해 재계, 학계, 정부 모두에서 ‘융합’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추진중이다. 그러나, 아무도 디자인 융합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고, 정확한 형태와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고 있다. 디자인은 ‘문치슈테트너’부인 같이 단지 포장의 수단일 뿐이지, ‘자스민’ 처럼 창의적 원동력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스민과 브렌다가 한 공간에 있다고, 그들의 우정이 생기고, 바그다드카페가 잘 된 것이 아니다. 이질적인 두 주인공은 공존할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영화에서 자스민이 모든 것을내려놓고, 바그다드카페에 동화되어 들어갔을 때, 서서히 변화하였다. 분명 문치슈테트너 부인이지만, 바그다드카페에서 자스민으로 동화되어갔다. 바그다드카페에서는 문치슈테트너 부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스민이필요했다. 디자인도 스스로의 모든 것을 허물고, 다가갈 수있어야 한다. 디자인이 잘하는 것은 단지 그리는 힘이 아니다. 잘그리기 위해서 누구나 보고 있지만, 숨어있는 내면의 가치를 발견해내는 관찰하는 힘이 있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생각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찰하고생각하는 힘을 누구나 아름답도록 느끼게 표현하는 그리는 힘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디자인을 잘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이명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또한 고집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때는 아집(我執)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줏대와 자신감이없으면, 새로운 창조라는 것을 하기는 어렵다. 또한 그들은어느 하나에 푹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타협할 줄 모르고, 함께하는 방법을 못 느낀다면, 사랑스런 ‘자스민’으로느껴지는 것이 아닌, ‘문치슈테트너’부인으로만 남아 있게되는 것이다.


융합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어떠한 변화의 노력도 없으면서서로 이질적인 사람과 분야를 모아놓기만 하고, 결과물을 원한다. 그런데, 단지 융합을 하기 위해, 이런 식의 결합만을 추구하여 붙이기만을시도한다면, 이러한 것이 융합이 될 수 있겠는가? 이건 모아둔것 뿐이지, 하나가 된 것이 아니다. 


디자인 융합(convergence)의 방향성


지금의 디자인 융합 : 디자인 중심의 R&D, 디자인교육, 디자인정책 등의 방향은 단순 결합 추구. 즉, 창조와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는 디자인의 융합을 외치면서, 디자인을 다른 무엇인가의 옆에두기만 하고 있다. 기술과의 융합, 인문과의 융합, 경영, 경제와의 융합, 단지 그 옆에 붙여만 둔다. 


쟈스민이 뚱뚱한 아줌아 이상의 무엇도 아니듯이 포장하는 수단 이상의 가치와 의미없이 옆에 가져다만 둔다. 디자인융합이 이 영화 도입부의 쟈스민같다. 같이 존재는 하지만 다른사람들이다. 저마다 바쁜데 쟈스민은 뀌다논 보리자루 마냥 식당 끝자리에만 앉아 있듯이 디자인은 그렇게융합이라는 사업과 R&D에 참여만 할 뿐이다. 쟈스민스스로 독일 아줌마에서 쟈스민으로 변했듯이 디자인도 스스로의 편견과 한계를 깰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 융합의 방향은 다음과 같은 고유의 역량들을 먼저 세분화시켜야 한다. 먼저, 차별화된 안목으로 똑같이 보지만, 누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관찰해는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생각하는 힘을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같이 느낄 수 있도록 그려내는힘이 있어야 한다. 


디자인 융합의 의미는 새로운 것의 단순 결합이 아닌, ‘관찰하는 힘’, ‘생각하는 힘’, ‘그려내는 힘’을기반으로 서로 다른 것을 하나의 틀에 묶어서 재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 영화는 꼭 보시라는 의미로 줄거리를 요약하지는 않았습니다.


책정보, 가난한 디자이너는 없다 : 네이버 책                                                           

                             

  ▶  책정보, 가난한 디자이너는 없다 : 네이버 책               

매거진의 이전글 디자인,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