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음식 중독자의 고백
나는 명실상부 엄청난 태국 음식 팬이다. 주위에서 농담으로 태국문화원 서포터즈 활동 알아보라고 했을 정도. 웃긴 건 나는 아직 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거다! 현지 맛을 모르기에 각 국에서 먹어본 태국 음식 중 어떤 버전이 태국 본토 버전이고 어떤 게 그 나라에 맞게 현지화된 버전인지 알지 못한다. 어떤 버전이던 그냥 태국 음식이면 다 좋아한다고 설명하는 게 가장 정확할 듯하다. 그렇다고 고수나 다소 쎈 향신료를 찾아서 먹을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닌데. 태국 음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엄청난 매력이 있다. 한때 Ancestry 이런 곳을 통한 유전자 검사가 유행했을 때 다들 내가 검사하면 선조 중에 태국인 몇 퍼센트로 뜰 것 같다고들 했다.
사실 어릴 때 경험한 몽골 음식에 대한 나름의 트라우마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외국 음식에 대해 그렇게 열려있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디를 가든 고추장 챙겨가야 하는 전통 입맛 유형도 아니었지만 그냥 딱 일반인(?) 정도랄까.
태국 음식을 처음으로 접한 건 청계천에서 열린 태국 문화 음식축제 비스무리한 행사 부스에서였다. 일주일간 대외활동을 함께 한 사람들과 집에 돌아가기 전 우연히 들린 장소였는데, 그곳에서 똠양꿍과 팟타이를 처음으로 먹어봤다. 멤버 중 한 분이 태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아주 능숙하게 어떤 조합으로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지 꿀팁도 알려주었고 그때 곁다리로 태국 실전 회화 몇 마디도 배웠다. 그 말들은 아직까지 자체 유행어로 사용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도 감사하고 신기하다! (아이 라이크 더 왜이 유 래프. 보고 있나요..?)
나름의 신선한 첫 만남 이후 시간이 흘러 흘러 본격적인 중독이 시작된 건 2017년 캐나다에 있을 때였다. 다운타운에 나름 유명하지만 구글 리뷰는 찬사와 혹평을 오가는 한 태국 식당이 있었다. 찬사는 평범한 수준인데 혹평은 너무나 잔인해서 더 불안한 그런 곳이었다....약간 고민했지만 사장님과 직원분들 모두가 다 태국에서 오신 분들이기에 뭔가 신뢰가 갔고 나름 직장인 점심 맛집으로 소문이 나있어서 애매한 마음가짐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을 만났다. 외국인 입맛에 맞춰서 원래 소스 대신 토마토소스를 추가해서 만든 팟타이였는데 살면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그곳에 얼마나 꽂혔으면, 한국에 돌아오기 전 환송회 식당을 원하는 곳으로 정하게 해 주셨을 때 빛의 속도로 그 식당을 골랐다. 아무리 집에서 내가 만들어 보아도 그 맛을 재현할 수가 없다. 이태원, 연남동, 합정, 성수 유명하다는 태국 음식점은 다 가봤는데 아직 그곳의 맛을 재현한 곳은 찾지 못했다. 사실 같은 곳이 없다는게 너무나 당연하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당장에라도 그걸 먹으러 10시간 비행기 타고 가고 싶을 정도... 이렇게 제가 태국 음식에 진심이에요.
막상 태국 본토에 가서 찐 팟타이를 먹으면, 내가 꽂혀있는 그 맛도 그냥 그 환경에 적응된 버전임을 확실히 깨닫고 놀랄 것 같긴 한데.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아요.
#배고파서 쓰는 오늘의 구구절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