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카누 같은 온갖 인스턴트커피부터 캡슐커피, 핸드드립, 카페에서 사 먹는 커피 등등 하루에 최소 두세 잔은 필수로 마신다. 인스타 감성이 아니어도 정말 맛이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게 나름의 작은 기쁨을 주기도 한다. 최애 도시가 포틀랜드인 이유에도 커피가 아주 큰 공을 차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카페에 가면 초코 음료나 차를 시켰고 실수로라도 커피를 마시게 되면 (특히 아메리카노) 쓴 맛 나는 담뱃재 같은 이걸 어떻게 마시는 건 지 의아해했다. 그러다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커피 맛에 눈을 뜨게 됐다. 이제는 출근길 아아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단지 졸음을 깨거나 밤을 새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정말 그 맛이 좋아서 마시게 됐다. 몸에 카페인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이어서 끊지는 못해도 줄여야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중독이 되서인지 커피를 안 마시면 오히려 두통이 심해지는 듯한 걸 느낄 정도로 이미 카페인에 중독되었다. 그러다 요 며칠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제는 정말 커피를 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왔음을 깨달았다.
보기와 다르게 나는 허약 체질인데 나름 잡다구레한 운동을 해서 그나마 키운 체력이 이 정도다. 체력과 체격이 비례하지 않는 이 웃픈 상황..! 쓰레기 체력으로 인해 여러 잔가지 골칫거리와 동행하는 일상을 살아왔는데 요 며칠 급격히 상태가 안 좋아져 휴가를 내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중 최근 큰 사건을 만든 주요 원인은 빈혈과 저혈압이었다. 혈액 검사를 해보니 철 수치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왔다. 한 때 1년 정도 페스코 채식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영향이라고 하기에는 벌써 그게 수년 전이고, 왜 이리 수치가 낮은 지 알 수가 없었다. 철분제 처방과 함께 의사 선생님이 내리신 제1의 처방은 커피를 끊어라 였다. 그리하여 최근 5일간 커피를 한 잔도 안 마셨는데 오늘 결국 오후 중에 아이스라떼 한 잔을 마시고 말았다. 하루 실패한 걸 통탄스러워해야 할지 5일을 지킨 걸 스스로 대견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일 같이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갑작스레 멈춘 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렇게 자제력이 약한 사람이었음을 다시 느낀 자아성찰의 하루다. 과연 카페인과 제대로 헤어질 수 있을지... 오랜만에 롤러코스터의 습관을 들으면서 오늘의 구구절절을 마무리해본다.
#디카페인에도 카페인이 있다는 걸 오늘 알게 된 사람의 구구절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