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 계기
어떤 현실적인 상황이 발목 잡지 않는다면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퇴사와 독립 후 유독 자주 생각한 질문이었다. 회사를 관두니 따박따박 들어오는 수입이 줄어들고 혼자를 먹여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값비싼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자잘한 것들을 구매하다 보면 내 벌이는 딱 한 달용이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긴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그 정도로 여유가 부족했다.
사는 일이 힘에 부치면 마음이 약해진다. 나의 찌질함은 더욱 도드라져 보이고 부모님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그런 얄팍한 마음이 혀끝까지 차올랐어도 매번 삼켜버렸다. 또 가끔은 하릴없이 날 낳아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친엄마와는 아주 어릴 적 헤어졌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났다. 가끔 어린 시절을 엄마와 보냈다면 어땠을까, 지금 내 상황은 달라졌을까, 그보다는 내 성향이 달라졌을까, 그런 부질없는 질문이 허공을 맴돌았다.
엄마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는 다른 말없이 그저 당신께 오라고 했다. 기차를 타고 두 시간,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걸리는 곳에 엄마가 있다. 나는 굳이 힘들다 투정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이미 내 속내를 알고 있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가끔 말하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엄마는 그 누구보다 나를 걱정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위로를 받았다.
엄마는 삼십 대가 된 딸에게 “생활이 먼저 되어야 해. 생활이 안 되면 아무 것도 못 해.”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저 나보다 앞선 이들이 검증한 길을 내팽개치고 나온 지금의 상황이 더욱 묵직해졌다. 생활이 힘들다고 느낄 때, 여기보다 더 편한 곳을 떠올리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다시 취업을 하는 게 나을까, 결혼이라도 해 볼까 하는 생각은 지금보다 더 편한 세상, 어쩌면 유토피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유혹했다. 하지만 조금만 곱씹어 보면 전부 허상이다. 유토피아는 없다.
그렇게 나약한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나의 길을 걷기로 한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옳다고 믿는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보다 나다운 걸 찾아내는 것뿐. 어차피 터널은 끝나기 마련이니.
누구나 답이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시기가 있다. 내게는 석사논문을 쓰던 때가 그랬다. 학문을 파고드는 일은 늘 아리송했고 나만의 논리를 검증받는 것은 머리가 빙글 뱅글 도는 일이었다. 그런 고단함 끝에 논문 심사를 통과하자 나는 흔히 작가들이 느낀다는 산고의 고통을 내 비루한 논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알고 썼다기보다 흉내 낸 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최초로 처음과 끝맺음이 있는 글을 만들어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글로써 나를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제대로 글을 한 번 써보고 싶다고.
논문 심사 통과를 축하하는 자리가 파하고 선배와 함께 걸어가는 길, 난 뜬금없이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말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가끔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내 의식을 거치지 않고 불쑥 밖으로 튀어나온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내게 선배는 한 마디 했다. “작가가 되려면 적어도 한강 정도의 고통은 있어야지.”
당시 미디어는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에게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한참 뒤에 읽어 본 그의 세계는 확실히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선배 말마따나 내 생각에도 작가가 되려면 아픔과 고뇌를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게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했다. 글 쓰는 사람들과 책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원하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글쓰기의 세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넓었다. 운 좋게도 나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 한가운데 있었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또 요구한다. 글을 쓴다는 게 더 이상 중세의 권력도, 근대 식자층의 전유물도 아니다. 글은 개인성을 담는 그릇이다. 저마다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담는다. 그렇기에 꼭 고통과 번뇌를 겪어야 글을 쓰는 것은 아닐 테다. 그렇게 생각하자 글 쓰는 사람이 되고픈 맘이 더 커진다.
누군가 내게 물었던, 어떤 현실적인 상황이 발목 잡지 않는다면 정말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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