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형태 #엔잡러 #삶의방향 #디지털노마드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단순한 욕망일 수도 있고 꼭 이루고 싶은 목표일 수도 있다. 나는 어릴 적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짝사랑을 할 땐 좀 더 자신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돈을 빨리 벌면 30대부터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믿었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희열을 느끼며 작가가 되어야겠다 다짐도 했다. 보통은 뭔가 하고 싶기 마련인데 몇 해 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생겼다. 바로 취업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프런티어, 2018)>에서 틀에 박힌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라고 설파한다. 그의 글은 꼭 취업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내 생각에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저는 취업하지 않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했다. 꼭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도 다른 방법으로 먹고 살아갈 희망, 그 가능성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지인은 직장생활이 힘든 건 어쩔 수 없고, 그 보상으로서 돈의 액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거들어주고 싶은 말도 아니어서 나는 적당히 ‘그렇군요’라고 대답했다.
한때 나는 직장인이었다. 몇 해 전 퇴사를 감행하고 뭘 하고 싶은지 찾겠다는 선택을 할 때만 해도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내심 두려웠다. 당시 스물일곱 살에서 스물여덟 살을 지나는 시기였고 행여나 30대가 되면 취직하기엔 더욱이 늦은 나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합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관두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 자신을 찾고 싶었다. 나는 일터가 아닌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렀고 가족과 떨어져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만나는 사람과 주거하는 공간이 바뀌고 전보다 나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전보다 소박해졌지만 말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게 쉽지 않을 때면 다시 취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잘 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일종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게 핑계였다. 게다가 공부라든지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생활 패턴을 버리기도 싫었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도 취업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졌다. 이제 와서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타협은 하지 않겠다는 오기도 없진 않았다.
매주 여러 군데 일을 하러 다녔다. 학원 아니면 문화원에 파트타임으로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출근하는 장소도 제각각, 시간도 제각각이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이런 내게 평범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마 좀 더 안정적인 일을 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걱정이었겠지만. 뭐, 한 가지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 맘에 드는 점도 많다. 상근하지 않는 형태의 일이다 보니 상사나 동료와 부딪혀서 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 가르치는 걸 준비하는 일은 혼자서 하면 되었고,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서비스직이라 고객에게 존댓말을 듣는다. 잘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선행되는 건 내게도 선한 영향을 준다. 비록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또래에 비해 급여가 적어도 나름 괜찮을 수 있는 이유다.
취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서서히 자리 잡았다. 한 군데에만 얽매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넓어진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할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왠지 제대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때론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나를 소개할 때 애매하기도 하다. 내 일거리는 주로 어딘가에 가서 말을 하거나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업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보통 프리랜서라고 하면 무난하다. 최근에는 디지털노마드나 N잡러라는 말도 나를 표현해주는 적당한 말이다. 스스로 만든 명함에 ‘노마드 워커’라고 명명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나는 퇴사한 후 뭘 하고 싶은지 찾아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정확히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것. 바로 취업하지 않음으로써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한 군데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기회 속에 있는 게 나에게 맞는 일의 형태다. 혹시 불안하지 않느냐고? 글쎄. 과연 무엇을 해야 불안하지 않을까?
국제신문, '청년의 소리' 2020.1.28일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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