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출판사를 운영하며 겪는 소소한 이야기_ 002
[1인출판사의 인쇄 이야기]
나에게 인쇄소는 멀고도 가까운 곳이다. 20대 절반의 시절을 편집디자인 회사에 있으면서 주 거래처가 인쇄소였다. 일하면서 인쇄 관련 지식은 반 정도만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주로 작업물을 발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30대가 된 지금, 독립출판에 여러 글쓰기 관련 프로그램이며 1인출판사까지 하게 되면서 다시 인쇄소와 가까워졌다. 전엔 직접 책을 만든다는 생각도 못했으면서 지금은 책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즐겁고 행복한 걸 말해 뭐해. 아무튼.
내가 돈 한 푼도 없이 출판사를 하겠다고 자신을 부린 데에는 스스로 디자인 할 수 있는 능력도 한몫했다. 디자이너를 따로 부리지 않아도 되니 인건비가 주는 건 당연지사. 그렇다면 내가 감당해야 할 출판비용의 대부분은 인쇄비와 작가의 인세였다. 이를 위해 첫 책은 텀블벅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벌었고, 두 번째 책은 작가님이 지원사업을 신청해 받은 지원금이 있었다. 덕분에 여차저차 책을 만드는 데 마이너스가 되진 않았다.
이틀 전 두 번째 신간을 인쇄소에 넘겼다. 파일을 넘기기 전까지도 오탈자 확인을 했지만 왠지 어디선가 오타 하나쯤은 튀어나올 것 같다. 제발 한 개만 있으면 좋으련만.
보통 책을 인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디지털과 옵셋 방식이다. 디지털인쇄는 1권부터 100권 정도의 소량인쇄에 적합하다. 나도 첫 에세이를 디지털인쇄로 100권 제작했다. 100권보다 많이 팔 수 있을지 자신 없었고, 인쇄비도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디지털인쇄를 해서 책을 판매할 수 있을까 싶은데, 요즘은 가격 면이나 품질 면에서 사정이 훨씬 좋아진 것 같다.
옵셋인쇄는 최소 300권 이상의 다량인쇄에 적합하다. 권당 단가로 따져보아도 디지털인쇄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유인 즉, 옵셋인쇄는 네 가지 컬러-C(사이안, 파랑), M(마젠타, 빨강), Y(옐로우, 노랑), K(블랙, 검정)- 각각의 인쇄판을 만들어 종이에 겹겹이 찍어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한 판을 만드는 비용 자체는 비싸지만, 그 판을 한두 장이 아닌 수백, 수천 장을 찍어낸다고 생각해보라. (어릴 적 미술시간에 했던 판화가 생각난다.) 예컨대 500권과 1,000권을 옵셋인쇄로 찍어낼 때 차이점은 종이 값 차이 정도이다. 한 번에 많은 부수를 찍어낼수록 단가는 저렴해진다. 그렇다고 몇 천 부, 몇 만 부를 찍는 건 또 곤란하다. 그럴만한 제작비는 나 같은 1인출판사에게는 어림도 없는 금액일 테니까.
약 10년 전 내가 편집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는 쿽익스프레스라는 편집프로그램을 써서 인쇄물 작업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맥킨토시 컴퓨터에서만 가능했다. 그때도 인디자인이 있긴 했지만 인쇄기계에 적합한 것은 쿽으로 작업한 파일이어야 했다. 옵셋인쇄기계가 워낙 비싸다보니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발달해도 바꿀 수 없는 한계였다.
지금은 거의 인디자인으로 작업을 한다. 이번 신간은 내지(본문)를 흑백으로 작업했다. 이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옵셋인쇄에서 네 개의 판 모두 찍으면 컬러인쇄지만, K만 찍으면 흑백인쇄 혹은 1도인쇄가 된다. 이렇게 인쇄하면 컬러가 들어간 것보다 단가도 저렴해진다. (당연히, 네 개의 판이 아닌 한 개의 판만 만드니까!) 1도인쇄를 위한 작업물을 넘길 때 작업물에 흑백이 아닌 컬러가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런데 인디자인에서 작업하다보면 검정색을 나타내는 컬러 두 가지를 혼용해서 쓰곤 한다. 하나는 ‘검정’이고, 하나는 ‘맞춰찍기’이다. 둘 다 검정이다보니 작업할 때는 이상이 없지만, 인쇄할 때는 문제가 된다. ‘검정’은 오로지 K만 있는 검정인 반면, ‘맞춰찍기’는 CMYK가 다 들어간 검정이다. 인디자인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분판미리보기’인데, 포토샵의 채널과 비슷한 개념이다. 분판미리보기를 통해 어느 부분에 컬러가 들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인쇄에서는 상관없지만, 만약 옵셋인쇄를 한다면 이 부분을 꼭 확인해줘야 한다.
이번에 소개받은 인쇄소에 책을 맡겼는데, 다행히 이 부분을 세심하게 챙겨줬다. 그리고 인쇄와 제본은 다르지만 보통 나같이 1인 체제 출판사나 작은 출판사는 인쇄소하고만 계약한다. 그러면 인쇄소에서 알아서 제본까지 해서 책을 제작해준다. 장점은 제본까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고, 단점은 제본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 첫 책을 제작할 때 나는 경험했다. 그래서 대형출판사는 인쇄소 따로, 제본소 따로 거래를 한다던데. 거기다 제지사까지 각각 다 따로.
흠. 나의 출판사도 좀 더 성장하면 그렇게 하고 싶다. 지금은 제작비를 최대한 아껴야 해서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곳을 선호하지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재질의 폭이 좁다. 예쁘고 색다른 종이로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무난한 종이를 택하게 된다. 아직은.
아무튼, 이번에도 인쇄가 잘 나오길, 무엇보다 제본이 잘 되어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번에 책을 판매한 돈으로 다음 책을 낼 수 있으면 진짜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