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방식 #얽매이지않는삶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 프리랜서. 예전에 비하면 이 개념이 꽤 친숙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프리랜스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보다 두세 가지 일은 기본으로 하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자주 본다. 나 역시도 20대 후반 회사를 퇴사하고 다시 취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빌려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산다. 학원 강사를 거쳐 미디어교육 강사가 되었고, 글을 쓰다가 출판에 관심을 가져 1인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얼마 전에는 시민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시작했고, 집사 경력은 어느새 1년이 넘었다. 그야말로 N잡러! 부업과 부캐가 차고 넘치는 자칭 노마드 노동자다.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하는 근본활동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노동, 창작의 욕구를 발휘하는 작업, 공동체에 집중해 행하는 행위로 나눴다. 과거에 비하면 먹고 살만해졌다는 어른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요즘은 노동보다 작업의 비중을 늘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일의 형태는 점점 다양해진다. 평생직장의 개념도 무너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어쩌면 나는 제법, 제대로 이 시대에 편승한 것 같은 착각도 생긴다.)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한편 불규칙적으로 일을 한다. 한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대신 감내해야 할 대가랄까. 한 달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하루에 서너 가지의 일을 쳐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할 때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불균형이다. 일이 적어서 불안하고, 많아지면 고된 삶, 이게 바로 프리하지만 프리하지 않은 노마드 노동자의 삶 아니겠는가.
이렇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게 들어오는 일감은 거절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안 한다고 하면 다음부터는 일이 없을까 하는 조바심이 내재했다. 그럼에도 억지로 싫은 일을 한 적은 별로 없었는데, 대개의 나는 시간이 많았고 들어온 일들은 1인가구인 나를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오기를 몇 해 째. 나름의 커리어랄까, 경험치가 생겼다. 내게 들어오는 일의 가짓수가 늘었다. 한번은 작정을 하고 오전, 오후, 저녁 모든 시간대에 각기 다른 일을 했었는데 두어 달 지속하다 그만뒀다. 소위 번아웃이 왔다. 그 후론 적당히 게으름을 피울 시간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넷플릭스를 보며 야식을 먹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시간이 일을 지속할 체력을 선사함을 알게 되었다.
가끔은 돈을 주지 않거나 줘도 너무 적게 주는 일도 했다. 처음엔 상대방에 대한 감사함이 커서 돈의 문제는 별 것 아니었다. 돈에 연연하는 건 왠지 일을 대하는 나의 진심이 변질되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야 정당한 대가는 당연하다는 걸, 제대로 주지 않는 사람이 잘못되었고, 내가 그냥 넘겨버리면 나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일을 하게 될 사람까지도 힘들 수도 있다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능기부는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 프리랜서 사이에는 간혹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데 특히 여러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통해 해결비법을 적어둔 게 도움이 되었다. (이 지면을 빌어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아무튼 내게도 어떤 일은 선택하고 어떤 일은 거절하는 날이 왔다. (오래 살고 볼 일!)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고 거절하는 기준은 정당한 대가가 있는지가 첫 번째요, 재미있는지가 두 번째다. 재밌다는 표현에는 일의 난이도도 포함된다. 오랫동안 하던 일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한 대신 매너리즘이 온다. 내가 해보지 않아서 떨리는 것, 아마 실수투성이겠지만 그래서 긴장하고 더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일이 내겐 더 재밌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내 에너지를 어디에 소비할 것이냐와도 상통한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일부러 노력해야만 유지되는 체력이라 확실히 선택과 집중하는 게 유리해졌다. 내가 하는 일이니 이왕이면 내 중심적으로 하는 게 좋다고도 생각한다.
지금껏 일 한 시간보다 앞으로 일 할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일이 곧 삶이라면, 그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고 싶다. 앞서 선택의 기준을 들어 이상적인 척 했지만 사실 나는 꼴리는 데로 행하는 타입이다. 그러니 또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참 궁금하고 기대된다.
국제신문 칼럼, 2020.11. 03.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01104.22021000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