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과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슬기 Sep 20. 2020

돈의 문제

#일상 #안정적인삶 #코로나19

돈의 문제



며칠 전 하늘을 올려다보니 잔잔한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하늘을 찍었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사진으로 찍는 행동도) 오랜만이었다. 오늘 하늘은 뭉게구름이 떠있었다. 문득, 하늘을 본다는 건 여유가 생겼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이러나저러나, 코로나19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건가, 만만하게 여유부리기 무섭게 다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격상되고 나의 몇 없던 수업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달력에 적어둔 일정에 줄을 그었다. 다음 달 달력엔 적을 게 없었다. 취소되지 않은, 소규모로 하는 수업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거라도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 여겼다.


나는 자주, 돈 욕심 없다고 말한다. 취업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공공연히 떠들어댄다. 많은 돈은 이번 생엔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돈을 벌고 또 유지하려면 그만큼 나를 소모시켜야 한다. 그건 싫다. 나는 적당히 맛있는 거 먹고, 지금 사는 전월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면 된다.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더 집중하며 살고 싶다. 이제껏 내가 가진 것으로 ‘지금, 여기’를 사는 데 충분하(다고 믿는)다. 


가진 걸 따지자면 비교대상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일단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강의하는 일은 시간대비 페이가 좋다. 준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드는 건 고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적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덕분에 스스로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며, 연극도 하고, 넷플릭스를 보고, 늦잠도 잔다.


사실 작년은 여유 없이 바빴다. 30대가 되면서 유독 작년이 내겐 물 들어오는 시기였다. 남들은 하나같이 이때 노 저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두 달 만에 포기했다. 일 한 만큼 통장에 돈은 쌓였지만 마음이 기쁘지 않아서였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쳐냈다. 누구는 배가 불렀네, 라고 하겠지만 난 그냥 적당히 벌고 적당히 게으르게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올해도 여전하다. (단지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어쨌든. 


얼마 전 시민극단에 참여해 올렸던 연극이 끝나고 원래 일상으로 복귀했다. 코로나 여파에 반백수의 생활은 반, 그리고 1/2이 더 늘어난 백수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 하면 좋을 것 들이 피어올랐다. 


그 중 한 가지, PT를 받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약 2년 전 학교 근처에 살 때 크로스핏을 꾸준히 했다. 자그마치 3년 정도. 그러다가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온 후 근처에 있는 새로운 크로스핏 박스에 다녔지만, 그곳이 버스로 두세 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떠난 후 잘 가지 못했다. 한때 운동 중독증은 아닐까 싶었던 나는 운동을 귀찮아하게 되었고 점점 체력도 깍여 갔다. 뱃살이나 보기 싫은 살이 삐져나오는 몸보다 더 심각한 건 쉽게 피로해지는 체력이었다. 운동을 하라면 하겠는데, 문제는 의지박약이라 혼자서는 못하겠다는 것. 


동네 헬스장에 가서 PT 상담을 받았다. 가격을 물으니 역시나 비쌌다. 지금의 내 재정상태로는 PT를 받을 여유가 안 되었다. 돈에 욕심은 없지만 이럴 땐 아쉬운 맘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한 달에 한 번, 글쓰기 수업을 하러 가는 곳이 있는데, 수강생은 40대에서 60대 어머니 들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재밌다거나, 돈 욕심 없이 적당히 버는 게 좋다는 말을 하면 그곳의 수강생 분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그날 수업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결석도 많아서 이런저런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연극공연을 하면서 얼마나 재밌었는지를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돈을 많이 벌기보단 하면 즐겁고 재밌는 일을 쫓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수강생 한 분이 “선생님, 이제 30대인데, 돈은 좀 모아두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몸이 아파오는 게 한 순간이라는 말과 함께. 


수업이 끝난 후 돌아오는 길에 그 분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조금은 돈을 버는 데 욕심을 부려야 할까? 그렇다고 지금의 하고 싶을 일을 쫓는 삶을 잃기는 싫다. (가장 좋은 건 국민기본수당을 받는 것. 바람이다.)


그 분 말대로 내 나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40이 될 테다. 그럼 지금과는 또 다르겠지. 아직은 상상할 수 없는 늙음도 더 가까워질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40대에도 지금처럼 일거리가 있을지 미지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지금처럼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놓지 않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돈 버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할까, 아니면 내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이를테면 독서와 글쓰기, 갖가지 경험들- 힘 써야 할까? 


스스로 결론은 있지만 생각은 얼마든지 바뀌니까. 그게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당분간 PT는 못한다는 것이고, 오늘도 스쿼트를 꼭 하고 자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정의(正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