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출판 #제작사례 #출판이야기
올해 초 출판사를 등록하여 차근차근 책 한 권을 만들어나갔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함께 글을 썼던 지인에게 책을 내자고 해서 원고를 다듬고 디자인을 한 후 인쇄를 맡겼다. 요즘은 전자책, 오디오책 등 다양한 책의 형태가 있지만 나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질감과 잉크 냄새가 나는 종이책이 좋다. 종이책을 실물로 만나게 되는 실질적인 단계가 바로 인쇄와 제본이다. 책 파일을 넘기고 인쇄소에 감리를 보러 갈 때 기사님들께 드릴 커피도 샀다. 책이 잘 나오길 바라는 그 생각만으로 설레서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도 드렸다.
책을 받기로 한 날, 인쇄소 사장님으로부터 제본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상황을 들어 보니 다음 날까지도 받기는 무리인 듯했다. 당장 그날 필요했지만 내가 떼써봤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인쇄소 사장님이 된다고 한 날짜에 다시 받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기다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며칠 후 책이 도착했을 때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박스를 뜯고 책을 꺼내 이리저리 보고 펼치고 냄새도 맡고 만져보았다. 나는 들떠 있었다. 곧장 택배 발송을 위한 책 포장 작업에 들어갔다. 책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주문을 받는 방법을 진행했기에 약속한 날짜까지 선주문한 독자 분들에게 책을 보내야 했다.
포장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책의 결함을 발견했다. 책은 무선제본의 형태였는데, 책의 앞과 뒤를 연결하는 책등 부분이 매끈하지 않고 자글거려, 일명 종이가 울고 있는 책, 풀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 낱장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책, 이곳저곳 찍히고 찢어져 상처 입은 책, 뭔지 모를 더러움이 묻어 있는 책, 앞과 뒤에 들어가서 책 전체를 감싸는 면지가 버젓이 내지 한 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책, 재단선이 제대로 잘리지 않은 책 들이 셀 수 없이 나왔다. 앞서 열거한 흠집이 없더라도 전체적인 여백이 한결같지 않고 내지마다 뒤죽박죽인 경우도 많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원래 디자인한 책의 크기보다 무려 0.5mm나 더 잘린 것이 아닌가.
이 사태를 어찌할까. 일단 최대한 흠집 없는 책만 골라 포장을 계속했다. 다음 날 인쇄소 사장님께 전화해 책의 상태를 말씀드렸다. 불량의 수만큼 다시 만들어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어쨌든 해결과 보상을 받아둔 상태로 택배 포장이라는 급한 불부터 끄고 남은 책 7~800권을 일일이 검수했다. 이왕이면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새벽 두세 시까지 작업을 이었다. 천천히 해도 되는데 내 마음은 그렇지 않고 하루라도 어서 이 사태를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검수를 끝내고 종류별로 파본을 분류했다. 의외로 화는 나지 않고 대신에 속상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흠집이 난 책의 상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내가 어찌할 수 없기에 화를 내는 것이 무의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흠집이 난 책의 운명은 쓸모없이 버려진다는 사실에 속상했다. 나는 나의 선택을 반성했다. 인쇄소를 알아볼 때 고려한 것은 가격과 위치가 1순위였고, 그 다음은 지인의 소개 여부였다. 그것이 나에게는 신뢰를 의미했지만, 내가 받은 결과물은 그 신뢰를 배반했다.
이 또한 경험이었다. 출판이라는 일은 내게 처음이었고 대체로 운이 좋게 흘러갔지만 이런 경험이야말로 앞으로의 내 선택에 밑거름이 되어줄 터였다. 그리고 덕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