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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Oct 15. 2020

독립출판과 입고메일

#독립출판 #출판이야기 #입고에대한단상 #속상함

내 의지는 보란 듯이 나를 배신한다. 여러 방면에서 내 의지는 내 욕망에게 패배를 일삼곤 하는데 그 중 스마트폰을 대하는 내 의지는 정말 비루하다. 그래서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었다. 잠들기 전이나 일어나서나 하물며 한밤중에 잠깐 깰 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다.


스마트폰을 좀 덜 써보려고 애쓰는 내 의지가 얼마나 빈약하냐면, 한 번은 스마트폰 앱에서 울리는 알림을 모두 무음으로 바꾸었다. 나름 사용하는 시간을 줄여보려는 노력이었다. 근데 의도가 무색하게 시도 때도 없이 더 자주 확인하게 되는 건 나만 그래? 이럴 거면 차라리 알림음이 울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냥 포기했다. 나는 스마트폰의 노예임을 인정한다.


에스엔에스 앱을 열어 수시로 좋아요와 댓글을 확인하고, 메시지도 웬만하면 곧바로 확인하는 편이다. 읽지않음 표시인 빨간색 동그라미, 그 안의 숫자를 가만 놔두지 못한다. 반려묘의 사랑스러움을 담기 위해 카메라와 사진 앱도 자주 쓴다. 남들이 보기엔 다 같은 사진처럼 보일지라도 미세한 다름이 있어 단 한 장도 버릴 수 없는 사진을 수 십 장 찍는다. 그렇게 도배된 사진첩은 기계 용량을 넘어서는 일이 빈번해지고 결국 클라우드 서비스까지 가입했을 정도다.


중독이라는 표현은 확실히 어감이 좋지 않다. 스마트폰을 자주 들여다보는 바람에 집중력이 안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나름 편리한 기능도 많이 누린다. 메모 앱은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게 아주 유용하다, 광고의 홍수 속에 원하는 것이나 필요한 걸 소비할 때도 터치 몇 번으로 결제를 할 수 있다. 통장 잔고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건 나의 즐거운 습관이다. 쓸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 액수가 많든 적든 기분 좋은 일이니까.


자주 사용하는 앱 중에는 초록색 아이콘의 포털사이트 앱도 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카페의 새글을 확인하고, 매주 업데이트되는 웹툰도 보고, 무엇보다 매일 메일을 확인한다. 프리랜스로 일하는 내게도 메일은 중요한 소통창구이다. 가끔 프로젝트로 일을 할 때 주고받는 업무메일부터 시작해서 강연이나 북토크, 교육 관련 업무를 제안 받는 일도 메일로 올 때가 많다. (아니, 요즘은 에스엔에스 다이렉트 메시지가 자주 오는 편이지만 그럴 때면 정중하게 메일로 다시 요청해달라고 한다. 그 편이 뭔가 더 정리된 느낌이랄까. 나는 그렇다.) 일이지만 설레는 일이랄까. 직장인일 때 업무메일을 받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독립출판을 하고나서는 책방들과 주고받는 메일도 생겼다. 올해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대형서점과 거래를 텄는데, 책 주문이 있을 때마다 입고신청 메일이 온다. 단 한 권이라도 입고신청서가 들어오면 설렌다. 또 한 달에 한 번, 분기별로 한 번, 등 여러 시기에 걸쳐 각각의 책방에서 정산메일이 온다. 이건 더 설레는 일이다. ‘유후~ 오예! 아싸~!’를 마음속으로 외친다.


물론 쓸데없는 광고나, 읽을 필요도 없는 스팸메일도 있다. 노트북을 사용할 때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메일목록을 자주 확인하니까 광고나 스팸메일이 몇 십 통씩 쌓이는 일은 잘 없다. 이만큼 집안 청소도 부지런하게 하면 좋을 텐데. 아무튼.


나는 메일을 확인하는 게 좋다. 유통업체인 배본사와 계약을 하지 않고 직접 책방이나 서점과 계약을 맺다 보니 입고요청을 주로 메일로 하게 되고 그렇게 서점으로부터 답신도 메일로 받는다. 제목 앞에 ‘Re:’가 붙어 있으면 얼른 확인하고 싶은데, 너무 바로 확인하면 마치 기다린 사람 같을까,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싶어 일부러 조금 있다 메일을 눌러보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여러 책방으로부터 답변 메일을 받는다. 출판사를 시작하며 펴낸 두 권의 책을 입고해달라는 간결하면서도 예의를 갖춰 입고요청 메일을 보낸 곳들인데 소위 ‘읽씹’하는 경우도 많아서 답장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하다. 메일 내용에 입고해달라는 말이 있으면 일단 안심이 된다. 다행이랄까. 거절하는 내용의 메일에는 아쉽기는 해도 속상하진 않다. 책방도 저마다의 기준과 스타일이 정해져있고 내가 펴낸 책이 안 맞을 수도 있는 거니까.


속상한 경우는 이런 것이다. 답변은 약 세줄 정도였는데, 첨부파일을 확인하고 동의하면 보내라 정도로 압축 가능한 내용이었다. 글자에 표정이 보이는 것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마음이 확 상했다. 아는 사람을 붙들고 이 곳은 왜 이렇게 성의가 없는 거냐며 하소연하고 싶었다.


한 곳에라도 책을 더 입고해야 되는 처지로써 그냥 입고할 것인가, 아니면 내 감정의 품위유지를 위해 무시할 것인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나는 이미 그 책방의 에스엔에스 팔로우를 취소하고 있었다. 그 뒤로 몇 번을 더 그 메일을 다시 읽어봤지만 여기에 입고할 이유를 찾지 못했, 아니 않았다. 실은 좀 더 신중하게 입고메일을 보냈어야 했다고 나를 탓하기도 했다.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나는 더더욱 이런 걸 못견뎌하는 사람 같다.


결국 나는 그 책방에 책을 입고하지 않겠지. 그냥 오늘만은 나를 속상하게 만드는 일은 멀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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