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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오토바이는 없다.

by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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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우안나(이하: 우):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미생이며 바깥 생활을 좋아합니다.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요?

우: 회사 생활하고 틈틈이 취미 활동을 하며 지냈죠. 최근 회사 구조가 바뀌면서 업무량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거기에 에너지를 쏟고 있죠. 도쿄에 출장도 다녀왔고요(웃음). 1년에 두 번 정도 시장 조사를 위해서 일본에 방문하는데요. 회사생활을 14년 간 하면서, 일본에는 지금까지 40~50번 다녀온 것 같아요.





일본, 특히 도쿄에 수십 차례 다녀온 이유가 있을까요?

우: 다양한 브랜드와 수많은 스타일이 존재하는 도시다 보니까요. 체형도 우리와 비슷해서 한국 시장에 적용하기 편하고, 패션을 소비하는 속도도 아시아권이 훨씬 빨라서 트렌드를 파악하기에도 좋아요. 물론 그 안에서 필요한 것을 잘 선별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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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장이 아무래도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요.

우: 산업 전반에 걸쳐,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브랜드들이 수십 년 세월에 걸쳐 명맥을 이어온 것을 보고 문화 충격을 겪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거든요.


일본 몽벨 매장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를 하자면 '이것 무슨 옷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독특한 우비가 있었어요. 자세히 봤더니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옷이었던 거예요. 그 옆에는 임산부를 위한 재킷, 배낭 멘 사람을 위한 재킷이 있더라고요.

사용자를 많이 고려한 옷이지만, 이런 옷은 판매(수익화)를 위한 옷은 아니에요. 대다수를 위한 옷이 아니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라봤을 때, 돈이 안 되는 상품인 거죠. 그럼에도 이러한 옷을 생산한다는 일, 저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게 충격과 동시에 감동이었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갖게 됐나요?

우: '한 사람이 100년을 산다면 50살이 되었을 때 인생의 절반을 지나온 것인데, 그때 뒤를 돌아봤을 때 과연 후회가 없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신문의 한 사설이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그전까지는 사회 정의 구현에 관심이 많아, 법학과나 경찰대, 육군사관학교를 생각했거든요.

사설을 읽고 처음으로 '육사나 경찰대에 가는 게 맞나?'는 의문을 가졌어요. 이후 후회하지 않을 것과 후회해도 괜찮을 게 무엇일지 일주일 정도 고민하다가 그림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그전에도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했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저 취미라고만 생각했거든요. 학교도 집안도 모두 뒤집혔죠(웃음).


이후 무작정 미술학원에 가서 테스트를 보고 입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겨울방학이었는데, 10개월 정도 미친 듯이 준비했죠. 입시 미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석고상을 똑같이 따라 그리는 방식과 하나의 사물이나 주제를 두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방식이에요. 저는 정형화된 사물을 똑같이 그리는 게 재미없다고 느껴서 후자를 선택했어요. 이 시험 방식은 보통 디자인 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준비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디자이너를 꿈꾸게 됐죠.





1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치관이 쌓였을 텐데요.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 회사에 속한 사람인지라 수익적인 부분을 가장 중요시해요. 아침에 출근해서 전국 일매출 보고를 확인하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부분이죠.





회사의 수익, 그 짧은 단어 안에 여러 의미가 포함됐잖아요.

우: 개개인의 능력이 분명히 발휘가 돼야 하고 옳은 의사 결정도 필요하죠. 여기서 옳다는 말은 시장 흐름에 적합한 판단을 말해요. 아무래도 1년 이상을 예측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빨간색 재킷이 잘 팔릴 것이라 생각해서 30억을 투자해서 생산했는데, 판매량이 저조하면 30억 이상의 손해를 보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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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미래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니, 많은 실패도 경험하겠어요.

우: 너무 많죠. 그래서 분산 투자를 잘해야 해요. 상품 기획이라는 머천다이징의 기본은 10 중 3이, 나머지 7을 이끌 수 있도록 기획하는 거예요.





해외 출장이 시장 예측과도 맞닿아 있나요?

우: 그건 아니에요. 오토바이로 말하자면 엔진은 아닌 거죠. 외관에 가까워요. 가장 우선되는 건 국내 소비자 분석이에요. 현재 무엇을 원하고, 원할 것인지 혹은 무엇을 기대하는 지를 판단해야 해요.

이를 위해 경제, 정치적인 상황도 분석해야죠. 심리적인 부분도 중요하고요. 경제 상황이 좋은 경우, 소비 텀이 짧아지기 때문에 사실 걱정할 부분은 아니에요. 그런데 반대라면 다르죠. 작년에 산 옷으로 올해를 버티게 되니까요. 그래서 경제적 상황을 가장 먼저 고려해요.





현재 바라보는 1년 후의 한국 시장은 어떨 것으로 추측하나요?

우: 가장 중요한 화두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경제성장률과 기후 변화요. 경제 성장률은 3% 미만이니 경제 성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내년에 더 힘들 거라는 말이 많아요.





국내 시장을 키울 수는 없으니, 해외로 타깃을 넓히는 방안도 있을 텐데요. 현재 국내 패션 브래드들은 주로 어떤 나라를 타깃으로 삼고 있나요?

우: 해외를 공략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중국인데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이 한국의 패션을 선망하는 점이 가장 크다고 봐요.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요(웃음).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또 다른 이유는 수익률이죠. 대부분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다 보니, 중국에서 판매를 하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가장 큰 고려사항 중 하나가 정치적인 문제예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하루아침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요. 몇 년 전, 사드(SAAD) 때처럼요. 개인적으로 인도나 동남아시아가 훨씬 큰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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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라고 하면 자신의 생각을 옷을 통해 보여주고 싶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이익 창출, 경제 상황 등에 관한 이야기만 했네요.

우: 의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후 지금까지 '나만의 패션 가치, 신념을 디자인을 통해 자아 실현 하겠다.'라는 생각을 갖진 않았어요. 처음부터 상업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의 가치관이 충돌하거나 이로 인해 혼돈을 겪지는 않았어요. 패션은 완전한 제조업 기반의 이익 창출을 위한 산업이니까요.





마켓 분석부터 작업 지시서 전달까지. 여러 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은 무엇인가요?

우: 마켓 분석이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정확한 마켓 분석이 적용된 어떤 아이디어죠.





마켓 분석을 트렌드 예측이라 불러도 될까요?

우: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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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예측할 때 본인만의 방식이나 루틴이 있을까요?

우: 우선은 현장이죠. 쇼핑하는 손님들이 어떤 상품에 관심을 갖고 구매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입고 오는지 같은 더 큰 범위도 고려해요. 기사에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한강에 러닝 크루가 많다는 뉴스를 보면, '요즘 러닝이 사람들의 취미로 각광을 받나 보다.'라고 인식하고, 왜 러닝이 취미로 떠오르는지를 찾아보는 거죠. 단순히 러닝을 하는 사람이 많네, 어떤 러닝화를 많이 신네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 게 마켓 분석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주목하고 있는 시장의 변화나 이슈는 무엇인가요?

우: 그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날씨거든요. 지금 한국의 여름이 굉장히 길어졌어요. 9월이 되면 재킷이 판매가 돼야 하는데, 몇 년 전부터 판매량이 줄어드는 거예요. 정작 저도 9월에 반팔티셔츠를 입고 다니니까요.

그래서 SS, FW로 나누어 기획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FW 시즌에도 반팔티셔츠나 긴팔티셔츠를 추가했죠. 소비자가 실제로 겪는 날씨에 맞는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서요.





타 브랜드나 경쟁사도 비슷한 예측을 했나요?

우: 기존 방식대로 진행하던 브랜드는 매출이 많이 떨어졌죠. 지금은 또 다른 혼란이에요. 여름이 길어지다 보니 객단가를 올릴 수 있는 기간이 짧아졌거든요. 그러면 박리다매 전략을 택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우리나라 내수 시장이 너무 작아요. 이 부분을 타계하는 게 모든 국내 브랜드의 목표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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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 여겨보는 브랜드가 있나요?

우: 국내 브랜드는 마뗑킴(Matinkim)도 있고요. 디스이즈네버댓(thisisneverthat)은 이제 글로벌 브랜드가 됐죠. 편집샵 개념으로 확장한 카키스(Khakis)의 전개 방식도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해외 브랜드도 하나 소개하자면 캐피탈(Kapital)이요. 최근 LVMH에서 캐피탈을 인수했는데,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저는 옷의 원가를 짐작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캐피탈은 티셔츠 한 장에서도 그들의 노력과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에 좋아하고 존경해요.





명품 브랜드는 없네요.

우: 글쎄요. 엄청난 자본으로 그 정도의 옷을 만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인지, 크게 감동을 받진 않더라고요. 그런 옷이 대단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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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디자인 스타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무엇일까요?
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게 상업 디자이너에게 가장 위험한 일인 것 같아요. 만약 제가 미니멀한 브랜드에 속해있는데, 화려한 패턴이나 소재를 좋아해서 그런 풍의 디자인을 한다면, 제가 그 브랜드를 망치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상업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덕목에, 디자인 철학이나 시각은 없다고 봐요. 본인이 속한 브랜드에 맞게 디자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직장인이고 브랜드에 속한 열 명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기 때문에, 회사를 우선시하는 게 맞다고 판단해요. 하지만 나의 개성과 캐릭터, 취향으로 뭔가를 뽐내고 싶다면 더 이상 조직에 있을 수 없죠.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야 그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거든요.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하려고 한다면, 대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만약 본인의 브랜드를 운영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고 싶나요?

우: 제 브랜드를 운영한다면, 일본스럽게(?) 할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앤드원더(Andwander)처럼요. 그렇지만 의류 브랜드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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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몰두하는, 관심 있는 분야가 있을까요?

우: 이너피스(Inner peace), 나 자신의 정식적 평온함과 멘탈 관리요. 이를 위해 책도 읽는데 쉽지 않네요(웃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갖기 어렵다는 뜻일까요?

우: 인간 혐오가 생긴 것 같아요. 타인이, 그것을 이해하는 일이 참 괴로워요. 좋든 싫든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잖아요. 이에 대한 해결을 찾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서 나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어요. 제가 그릇이 큰 사람이 아니라 이런가 봐요(웃음).





개인주의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개인주의자 선언>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기 좀 힘들어요.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게 한국의 결혼 문화가 되겠네요. 한국은 관계주의가 깊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나의 존재 가치로 인식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관계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그게 굉장히 불편한 사람 중 하나거든요.


결혼식에 초대받았어도 '내가 가고 싶은가? 그게 아닌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의지로 생긴 관계라면 상관이 없죠. 그런데 직장 동료는 내가 선택해서 생긴 관계는 아니잖아요. 서로 원하는 목적 때문에 회사에 온 것일 뿐이잖아요. 제가 판단하는 사적인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적인 관계에서 내가 해야 할 예의와 의무를 적절히 수행하면 충분하다고 봐요. 게다가 결혼은 완전한 개인사잖아요. 만약 회사 동료인데 9 to 6 외에 연락도 하고, 저녁도 먹고 여행도 간다. 이런 경우는 사적인 관계죠.


그러나 회사에서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9 to 6 외 연락을 하지 않고 나의 사적인 범위 안에 있지 않다면 저는 공적인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내가 왜 그 사람의 사적인 결혼식에 나의 사적인 시간을 내서 가야 하지?'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 거죠. 그래서 직장 동료의 결혼식은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도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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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본인의 정의는 언제쯤 세워졌나요?

우: 23살쯤 인가 봐요.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도 결혼식에 가지 않았어요. 그때 조금 힘들었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안 좋은 눈초리를 받았어요. 조직에서 바라봤을 때는 모난돌처럼 여겨진 거죠. 잘못한 게 아닌데, 한국 사회에서는 잘못이 돼버려요. 그래서 지금까지 결혼식 간 횟수를 따지면 10번 정도 일거예요.





그중에서 직장 동료분도 계셨나요?

우: 두 분 계세요. 그 둘은 저에게 사적인 관계인 거죠. 여름휴가를 같이 보내기도 하니까요. 저는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건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어떻게 보면 가장 공평하게 주어졌기도 하고요.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한 거죠.

진심 어린 마음으로 결혼식에 방문하면, 언제 끝나는지, 밥은 뭐가 나오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나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친구의 결혼식이기 때문이죠. 저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요.

소중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눈인사 몇 번 한 사람의 결혼식을 가기 위해, 주말이라는 소중한 사적인 시간을 쓰는 게, 저는 아주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출근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나요?

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요. 어떻게 해서든지요(웃음). 집에 있는 시간은 평일 퇴근 후밖에 없어요. 잠만 자는 거죠.





어딜 그렇게 가세요?

우: 캠핑을 주로 가고 비가 오는 날은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요. 아주 가끔은 집에서 퍼즐을 맞추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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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피스를 찾기 위해 캠핑을 시작했나요?

우: 어떠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스킨 스쿠버, 스노 보드 같은 아웃도어 활동을 즐겨하며 자연스레 범위를 넓혔어요. 학창 시절 잡지 <고아웃>, <뽀빠이>를 통해 생각만 해왔거든요. 그러다 스물일곱 쯤에 백패킹을 처음 도전했어요. 그때도 저 혼자 다녔어요. 주변에 캠핑을 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웃음).





노지와 캠핑장 중 어디를 더 선호하나요?

우: 노지스러운 캠핑장을 찾아가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여자라서 혼자는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지인들과 함께 간다면 상관없겠죠. 그런데 지금까지 거의 99% 혼자 캠핑을 했어요(웃음).

저는 혼자가 좋아요. 수치를 숫자로 표현하자면 혼자 일 때 100. 남들과는 60 정도예요. 엄마와 함께 하는 캠핑도 마찬가지고요(웃음). 저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잘 못하는 편이에요. 비슷한 경험으로써 공감을 할 수 있을 텐데, 저는 그 길에서 살짝 비껴나갔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 제 성향도 굉장히 외골수인데, 취미도 대중적이지 않잖아요. 거기에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지도 않고요. 취미로 즐기는 오토바이, 캠핑, 프라모델. 이것만 봐도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자 사람'과는 거리가 멀잖아요.

그래서 책을 읽어요. 최근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를 다시 읽었어요. 타인을 바라보며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요. 이해 안 되는 타인을 바라보며 느끼는 나의 감정적 분노를 내려주는 작업인 셈이죠(웃음).





이해 안 되는 타인을 마주치는 상황은, 주로 회사에서 일어날까요?

우: 아무래도 그렇죠(웃음). 아쉽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과 스트레스가 비례하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오토바이나 차를 타는 것 같아요.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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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처음 오토바이를 탔나요?

우: 2023년에 슈퍼커브로 입문했고 현재는 혼다의 헌터 커브를 타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 작성한 버킷 리스트에 '미국 66번 국도를 오토바이로 달리고 싶다'라고 써놨거든요.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는 일이 저에게 갑작스럽지는 않았어요. 언젠가는 타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신 '오토바이를 타게 된다면 적절한 시기에 타야겠다.'라는 생각은 했어요.





'적절한 시기'란 무슨 의미인가요?

우: 사회적으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때 타고 싶었어요. 사실 오토바이가 위험한 취미잖아요. 거기에 제 미래를 저울질하고 싶지 않았어요. 만에 하나라는 경우, 그리고 그 경우 모든 걸 잃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잠깐의 스릴이나 재미를 대가로 추구하기에는 제 미래가 더 소중했거든요.

회사에 입사한 후에는 제 목표를 위해 일에 파묻혀 살았어요. 커리어와 함께 정신적, 경제적 기반이 단단해지는 시기였죠. 10년쯤 지나 제 삶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도 했고, 마흔 전에는 타고 싶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우: 제 첫 오토바이가 엄마의 슈퍼커브예요(웃음). 엄마, 아빠 모두 딸바보라 걱정을 하시는 것 같지만, 두 분께 잔소리를 들은 적은 없어요. 어차피 인생은 스스로 오롯이 걸어가야 하는 자신만의 길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계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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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통한 경험 중, 지금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 원래는 빨간색 헌터커브인데 탄색으로 도색을 했어요. 다른 부분은 모두 정리 됐는데, CT125라고 적힌 스티커 외곽에 빨간 선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을 칼로 잘라냈어요. 그 순간이 지금 떠오르네요.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아는 그런 거요(웃음).





오토바이로 출퇴근도 하나요?

우: 보통은 차로 해요. 원래는 출퇴근도 하고 싶은데, 몇 번 하니 회사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돼서 안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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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네요.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을 것 같거든요.

우: 신경 쓰진 않는데, 저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라서요. 누군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원치 않아요. 있는 듯 없는 듯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싶어요. 그냥 나만 혼자 조용히 잘 살고 싶어요.





오토바이가 본인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우: 제 삶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수단이자 매개체예요. 저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즐기고 있어요. 오토바이를 탄다는 게 특별한 건 아니지만, 오토바이로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건 소수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는 게 저에게는 특별한 일이에요. 그리고 오토바이를 탈 때만큼은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잖아요. 내 맘대로 되는 게 몇 안 되는 게 인생인데, 그중 하나인 거죠(웃음).





오토바이 타고 자주 가는 곳 있나요?

우: 캡핑샵에 자주 가요. 뭐가 새로 나왔는지 구경하러 가요. 마실 가듯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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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오토바이나 캠핑 질문을 많이 할 것 같아요.

우: 사실 그런 질문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정말 마음이 있다면 이미 시작했겠죠. 왜냐하면 너무 좋은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네이버, 구글, 유튜브에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그런 질문하는 사람들한테는 '불편하고 위험해요. 그냥 하지 마세요.'라고 해요. 정말 하고 싶었다면 정보를 찾아보고, 시도하고, 실패도 경험했을 거예요.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의 취향을 알 수 있겠어요. 천천히 경치를 보며 달리고 싶은 사람이 레플리카 오토바이를 타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결국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를 아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그게 오토바이나 캠핑, 그 무엇이든지 간에요.





오토바이 타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우: 솔직하게 오토바이 타는 사람을 안 좋아해요. 특권 의식을 가진 듯, 허세 떠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오토바이를 타든 담배를 피우든 상관하고 싶지 않은데, 본인의 자유와 권리로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되잖아요. 자유와 권리는 의무와 배려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배려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오토바이 문화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라는 생각을 해요. 한국 사람들한테 오토바이는 혐오스러운 이미지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의 사고나 가치관이 그런 시선을 갖게 한 걸까요? 세상에 나쁜 오토바이는 없어요. 굉장히 멋진 스포츠이며 멋진 행위인데, 이를 행하는 인간이 문제인 거죠. 다들 멋지게 즐기면 좋겠어요.





글 · 사진 BD






















우안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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