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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남자.

by BD

이번 편은 아래 링크의 음악을 감상하며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운드 클라우드 링크: https://soundcloud.com/realbonari/9-spread-love-pt-2-outro)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정봉수(이하: 봉): 음악과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남자 정봉수입니다.





핀란드에 거주하고 있잖아요. 유럽이 고향인가요?

봉: 대한민국 토종 한국인입니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게 됐어요. 얼마 후 아내는 핀란드로 돌아갔고, 제가 무작정 핀란드로 날아갔죠(웃음). 비자 때문에 9개월 정도 고생하며 여권까지 뺏기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혼인신고를 통해 다소 쉽게(?) 해결됐죠. 비자가 3일 만에 나오더라고요.





사랑의 힘이군요. 비자 문제는 해결됐지만, 언어 차이라는 관문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봉: 3년 간 이민자 정착 프로그램을 통해 핀란드어를 배웠어요. 이후 재즈 스쿨에 입학했고요.











어떤 재즈 스쿨인가요?

봉: 팝&재즈 콘서바토리오(Pop & Jazz Konservatorio)이라는 곳에서 2022년부터 3년 간 공부했어요.





핀란드가 사우나와 높은 세율로 유명하죠?

봉: 많은 분들이 '사우나'가 핀란드 말인 줄 모르더라고요. 저도 그랬고요(웃음). 사회 복지를 위해서 세율이 높기도 유명한데, 저는 아직까지 한국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어요. 파트타임 근무를 하면, 1.5%만 세금으로 제해지거든요. 거의 무임승차급 복지 혜택인 거죠(웃음).

3년간의 이민자 프로그램 동안, 매달 생활금도 지원받았어요. 이민자를 외국인이 아니라, 자국민으로 인정하고 도와주는 정책에 많이 놀랐고요. 어떻게 보면 나라로부터 투자를 받음 셈이죠. 제가 이 사회에서 모범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요.





한국에서도 색소폰을 전공했잖아요. 어떻게 음악에 빠지게 됐나요?

봉: 처음에는 힙합을 좋아했어요. 이후 힙합의 뿌리를 찾다가 색소폰을 만나게 됐죠.











힙합과 색소폰은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듯 들려요.

봉: TV 애니메이션 <심슨>의 한 에피소드에서, 리사 심슨이 색소폰을 물려받는 장면이 있어요. 에피소드 마지막에 색소폰 연주가 흘러나오는데, 그때 처음으로 색소폰 소리에 흥미를 가지고 취미로 배우게 됐죠. '제랄드 올브라이트(Gerald Albright)'의 연주 'Georgia on my mind'에 꽂혀서, 과장 없이 천 번 이상 들었어요. '색소폰이 내 길이고, 이거 못한다면 차라리 죽을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인생의 전부였어요.





색소폰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봉: 맛있는 커피 마시면 그냥 느낌이 좋지 않나요? 물론 맛이라는 원인이 있긴 하지만, 저는 이유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느낌인 거죠. '베이스가 두껍네, 고음이 일정하네'하는 게 아니라 느낌이요. 어떤 음악은 마치 저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다 줄 때도 있어요. 현실을 잊게 하죠. 답이 너무 추상적인 것 같지만. 제 느낌이 이래요(웃음).





가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있죠. 조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특히 음악이라는 장르에서는 같은 곡일지라도,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곡이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확 달라지듯이요.

봉: 진실된 연주자라면, 청자에게 본인의 느낌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주자이기도 하고요. 반대로 자의식이 강해서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은 티가 나요.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선보여야지.'같은 아집에 빠지면 안 돼요. 그런 생각 대신 '지금 여기서 즐길래.'가 돼야죠. 물론 이런 말을 한다고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웃음). 저도 가끔 버벅대니까요. 아직도 배우는 중이에요.











좋은 연주자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겠네요.

봉: 다양한 무대에서, 여러 경험을 하는 게 도움이 많이 돼요. 게다가 재즈는 느낌을 즉흥적으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음악으로 대화하는 거죠. 이미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손짓, 눈짓만으로도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반대로 제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도 있고요.

영화 촬영에서도 애드리브가 장면을 더 살릴 때가 있잖아요. 지금 인터뷰도 마찬가지고요. 그저 우리가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재밌는 결과가 기대되듯, 재즈도 마찬가지예요.

(사전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함).





연주자들이 서로의 니즈를 파악한다면, 100점 만점의 무대가 되겠네요. 흔한 일은 아닐 것 같아요.

봉: 저희 밴드 <도넛 타임> 친구들과 합주를 하거나 공연을 할 때, 다 같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그때는 음악에 저를 맡기면, 하늘로부터 무언가를 받아서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가 된 기분이에요.











음악을 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을 텐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뮤지션은 누구인가요?

봉: 케니 가렛(Kenny Garrett)이요. 알토 색소폰 연주자인데, 핀란드에 공연차 방문해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어요. 그때 함께 연주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죠. 색소폰에 사인도 받았는데요. 평생 간직하려고 사인 위에 PPF 시공도 했어요(웃음).





특별한 경험도 있었겠죠?

봉: 제가 지은 'WD40'라는 곡을 핀란드 공연에서 부른 적이 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조바심을 내려놓고 현실에 집중하자'고 말하는 곡인데, 한국어로 불렀거든요.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몰랐을 텐데, 어떤 이들은 감동받았다고 했어요.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됐기 때문에 같은 감정을 느낀 거죠.

(사운드 클라우드 링크: https://soundcloud.com/realbonari/5-wd40)





한국에서는 재즈 연주를 들으려면, 목적으로 두고 방문해야 하거든요. 핀란드에서는 좀 더 보편적인가요?

봉: 한국과 비교하자면 보편적이죠. 큰 재즈 페스티벌도 열리고 재즈로 유명한 학교도 있어요. 어디서나 재즈 공연을 관람할 수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핀란드에서 음악 하는 친구들은 힘들다고 하는데요. 한국에서 제가 겪은 경험에 빗대자면 '배부른 소리 하네.'라는 생각이 들죠(웃음).

갑자기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별 걱정이 없어요. 스스로를 100%, 200% 믿고 있거든요. 물론 골방에 틀어 박혀 무릎 꿇고 기도만 하는 건 아니고요. 예를 들어 공연 계약을 따낸다거나, 새로운 곡을 쓰는 거예요. 연습을 꾸준히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요.

먼 미래에 있는, 보이지도 않는 목표를 흐린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연습하고 공연을 찾는 등.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고 있어요. 실제로 시간이 흘러 뒤를 돌아봤을 때 '어느새 나 여기에 와 있네.'라는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고 있어요.










만약, 한국에서 쭉 음악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봉: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요? 진작에 음악을 포기했을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다들 한 번씩 해외 유학을 꿈꾸거든요. 저도 그중 한 명이었고요.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크게 좌절했죠. 평일에는 학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웨딩홀에서 연주자로 일해도 월 100만 원도 벌지 못했거든요. 현실이 이러니까 '수천만 원을 들여 미국에 다녀온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절망감뿐이었어요.





음악에 대한 고민을 오래 가졌나 봐요.

봉: 한국에서 시작된 고민이 핀란드까지 이어졌어요. 어느 날 장인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여기는 무언가를 잘하든 못하든 그걸 하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이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사실 너무 두려웠거든요. 스스로 경쟁의식이 심해서, 연주나 공연을 즐기지 못했어요.

연주 실력이 모자라면 '저딴 식으로밖에 못해?'라며 감히 판단하고, 잘하면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받았겠지.'라며 질투했어요. 핀란드에 적응하면서 제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지금은 저도 실력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게 됐고요.










'무엇이든지, 어떻게 해서든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강박을 놓을 수 있게 됐군요.

봉: 한국에서는 스스로도 모자라, 서로를 감시하는 노예 감독관처럼 굴잖아요(웃음). '야, 너 지금 놀아? 그러면 뒤쳐질걸? 빨리 성공해야 될걸?'같은 생각과 시선에 목을 조이잖아요. 그런데 핀란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아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오토바이를 예로 들자면, 한국에서는 마냥 안 좋게만 보잖아요. 그런데 저희 장모님은 취미를 가지는 건 좋은 거라며, 취미로써 그리고 그걸 좋아하는 저를 정봉수라는 사람으로서 생각하시더라고요. '있는 그대로.', '나라는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감동이었어요.





한국과 핀란드에서 색소폰을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왜 처음에 음악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나요?

봉: 제 음악관을 좀 더 설명하자면, 힙합 음악에 재즈 색소폰을 연주한다고 보면 돼요. 한국에는 '쿠마파크'라는 재즈 힙합팀이 있는데, 그곳의 마스터 '쿠마'님께 색소폰을 배웠어요.

힙합과 재즈는 흑인 음악이라는 같은 선 상에 있는데요. 재즈가 힙합 음악의 뿌리인 거죠. 래퍼 라킴(Rakim)도 어렸을 때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연주를 들으며 자랐고, 색소폰 연주에 랩을 하면서 라킴이 됐죠. 저는 라킴과는 반대로 힙합을 색소폰으로 보여주고 싶은 거고요.

힙합 안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려면 단순 반복되는 비트보다, 좀 더 즉흥 연주가 가미 된 트랙이 필요해요. 힙합 비트 위에 색소폰을 연주하고, 신디사이저나 보코더로 전자음을 얹어주는 거죠. 랩을 할 수도 있고요.





지금은 온전히 음악 활동만 하고 있나요?

봉: 제가 이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음악으로 먹고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핀란드 택시 운전 면허증을 취득했어요. 택시 운전도 하고 자동차 탁송일도 하고 있죠. 운전을 좋아하기도 하니까 일종의 취미라고 여기며 즐기고 있어요.











핀란드에서 운전하는 건 어때요?

봉: 너무 좋죠. 오토바이로도 어디든 갈 수 있고 요금도 따로 지불하지 않아요. 톨게이트가 없거든요(웃음). 시내를 제외하면 헬싱키에서 30분만 외곽으로 나가면 차를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도로가 고요해요. 다들 운전도 여유롭게 하고요.





지금 어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봉: 91년식 야마하 SR500과 2022년식 혼다 CRF300L을 타고 있습니다.





어떻게 오토바이를 타게 됐나요?

봉: 수능을 망치고 잠시 중국 유학을 떠났는데, 그때 50cc 수동 오토바이를 처음 구매했어요. 오토바이에 대한 동경보다는 디자인에 끌렸어요. 이후 한국에 돌아와 효성 코멧 250, 혼다 CB400을 탔죠. 특히 CB400SF VTEC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제 인생 최고의 오토바이예요.












인터뷰에 모두 싣을 수 없지만, CB400에 대한 극찬과 감동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지금도 일본 브랜드 오토바이를 타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핀란드에서는 유럽 브랜드 오토바이를 관리하기가 더 편할 것 같거든요.

봉: 유지, 보수, 비용 등 모든 것을 따져도 일본 브랜드가 훨씬 편해요. 제 SR500처럼 오래된 기종도요. 심지어 제 색소폰도 야마하예요(웃음).





그러고 보니 색소폰도 오토바이도 야마하네요.

봉: 혼다를 오랫동안 사랑해 왔는데, 빅싱글 단기통 만큼은 야마하 SR500을 선택했습니다. 1978년부터 2021년까지 오랜 시간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생산되었고 커스텀 파츠도 그만큼 다양하거든요.












커스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현재 한국에서는 오토바이 규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핀란드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내는지 그리고 시민들은 어떻게 오토바이를 바라보는지 궁금하네요.

봉: 규제는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예요.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이들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지 않고요. 물론 어디든지 미꾸라지는 존재하는 법인데, 그런 사람을 이상게 생각하지 모든 오토바이와 라이더를 문제라고 인식하지는 않아요. 앞에서 저희 장모님도 좋은 취미라고 말씀하셨고 도심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스로틀을 당겨달라는 제스처를 취해요. 그러면 저는 팬 서비스를 해주고요(웃음). 사실 오토바이라는 게 엄청 특별한 게 아니잖아요.





왜 이런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하나요?

봉: 한국에서는 운전면허를 너무 쉽게 내줘요. 특히 2종소형 같은 경우는 장내에서 5분 만에 딸 수 있잖아요.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했다고 해서, 실제 도로에서 안전하게 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면허만 따면 바로 도로에 나갈 수 있다?' 이 자체가 너무 위험한 발상이죠. 아주 오래전에 바뀌었어야 된다고 봐요.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개체수가 적고 비싼 오토바이를 소유한 자체를 자랑처럼 여기기도 하는데요. '오토바이는 역시 리터급이지.'라는 말도 있고요.

봉: 솔직히 저도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좋아하고 만족하면, 커브든 할리든 상관없다고 봐요. 코너링 타는 걸 좋아해서, 핀란드에서도 일부러 고속도로보다는 시골길을 주로 이용하는데요. 천천히 배기음을 들으며 달리는 시간이 저에게 여유를 만끽하는 힐링이거든요.

그리고 오토바이를 바라보는 인식이 조금 달라요. 우선 타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고요. 크고 비싼 오토바이는 중년층이 타는 모델이라는 인식이 있거든요. 같은 모델이라도 한국에 비해 가격이 더 비싸기도 하고요.











핀란드에서 오토바이를 타면서 겪은 특별한 경험이 있을까요?

봉: 달리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경험을 했죠(웃음). 헬싱키에서 핀란드 최북단 우츠요키까지 약 1,500km 정도인데요. 북쪽으로 갈수록 날씨가 점점 추워져요. 북극권에 들어서니 갑자기 우박이 내리더라고요. 제일 더운 7월이었는데도요.





왜 최북단에 위치한 우츠요키였나요?

봉: 혼다 CBR1100XX 블랙버드. 핀란드에서 처음 산 오토바이인데요. 스로틀을 당기는 대로 반응하고, 에어로다이내믹이 기가 막혀서 비도 맞지 않는 전설적인 모델이에요. 훌륭한 초고속 장거리 투어러인데, 저한테는 너무 무겁고 빠르더라고요. 팔기 전에 용도에 맞게 한 번은 쓰고 싶어서, 아내랑 10박 11일 전국 투어를 떠났어요(웃음). 강 하나만 건너면 노르웨이인데, 당시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돼서 눈으로만 담고 왔죠.

오토바이로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위에서 석양을 옆에 두고 달려보고 싶어요. 핀란드 지형 특성상, 긴 모래사장이 없거든요. 멀지 않은 라트비아에 그런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조만간 가게 되지 않을까요(웃음)?











오토바이 타는 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봉: 오토바이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꾸려면, '인생을 즐기는 하나의 방식이다.'라는 것을 끝없이 증명을 해야 돼요. 그렇기에 위험한 행동보다는 멋지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요. 그러다 보면 그저 하나의 멋진 취미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봉수에게 오토바이란?

봉: 오토바이로 인해 훌륭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추억을 쌓으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도 얻었거든요. 지금은 저의 팔, 다리가 되어서 떼려야 뗼 수 없는 존재가 됐죠.




글 · 사진 BD




















정봉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bongsuo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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