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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얌 Feb 05. 2023

국어시간에 글쓰기

자존감을 위한 글쓰기 1

국어와 글쓰기


대한민국 학생들이 글쓰기에 제일 좋은 시간은?

국어시간.

?

어쨌거나 써야 하니까.


가뜩이나 주입식 교육이라는 비판이 거센데 이제 글쓰기도 주입식이 좋다는 건지? 시험 범위를 다 한번 훑기도 버거운데 언제 글을 쓰게 하란 건지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국어 시간의 글쓰기는 여러 모로 좋다.


첫째, 교사는 학생들의 국어 실력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학생은 학교와 교사라는 인프라를 활용해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셋째, 학부모는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다.


방송작가를 하던 나는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 친구들을 시작으로 독서 논술 과외를 했다. 몇 년 간, 초등 2학년부터 고 2까지 수업을 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시간 부족'이었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 후 내게 왔고 내 수업 이후 또 몇 개의 사교육 수업을 받으러 가야 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이 '국어 시간에 글쓰기'였다.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글을 쓰면 어떨까?'


내가 어릴 때도 각종 사교육 학원들이 있었지만 학원은 일부 아이들이 필요한 것 한두 개만 다니는 식이었다. 학교마다 문예부, 합창부, 합주부, 미술부, 축구부 등 수많은 동아리가 있었고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글쓰기는 문예부에서 할 수 있었기에 아예 사교육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내가 다니던 초, 중, 고 역시 글을 쓰는 건 문예부 학생들의 영역이었다. 지도교사가 있었지만 교사가 특별히 글쓰기에 관해 가르치지는 않았고 문예반을 관리하고 아이들과 소통, 교내외 글짓기 대회를 담당하는 일을 했다.


특별히 글쓰기를 안 배웠는데도 매일 방과후에 한 편씩 뭐라도 써야 했다. 이 '쓰기'의 꾸준함이 아이들을 변화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학교에서 모든 학생에게 글쓰기를 하게 하면 어떨까를 상상했다.


하지만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에서 그건 국어 공부 할 시간에 '신선 놀음'을 하자는 걸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생각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가 찾아왔다.




글 쓰는 직종에서 논술 과외 교사로 전직했던 나는, 아이가 중학생이 될 무렵 기간제 교사로 재취업하게 되었다.


모 과학고의 기간제 교사로 간 첫날,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는 내게 두 가지 당부를 하셨다.


"영재 학교 전환을 앞둔 학교입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해주세요. 또 대외적으로 학교의 이미지를 홍보할 일들을 해주세요."


교내 활동이 곧 입시의 스펙이 되고 또 대외 홍보도 되게. 국어 교과와 이 모든 것들이 연계되게 하면 일석삼조가 되게 하고 싶었다.


'글로 먹고 산 경험과 국어를 접목시켜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단계별 목표를 정했다.


국어교과->수행평가->교내활동->입시 스펙 겸 미래 직업 소양->학교 홍보 자료


국어 단원은 다양한 글의 종류를 본문에 싣는다. 국어 시간에는 각 단원을 분석하는 이론 수업을 한다. 이를 글쓰기에 적용할 훌륭한 도구가 수행평가이다.



수행평가


수업의 단원들과 연계해 수행평가를 내어줬다. 이것은 모든 교사들이 하고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 방송작가, 카피라이터, 자유기고가 등으로 일한 내 경험 접목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생활,  새벽 6시대에 기상, 밤 12시에 자율학습이 끝났다. 수학, 과학 중점인 학교인 만큼 이과 쪽 내신 공부와 수행평가 과제도 벅찰 것이다. 나는 국어 수업 시간에 핵심만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에 글쓰기나 토론 등을 하게 하기로 했다. 이를 수행평가로 삼고 교내대회를 위한 연습 시간이 되게 하면 된다.


과학고의 블록타임 수업은 이러한 시도에 효율적이었다.  1교시와 2교시를 묶든, 1교시부터 3교시를 묶든 교사의 재량. 리큘럼도 교과서를 기본으로 하되 다양한 부교재나 활동이 가능하다.


나는 내가 했던 광고, 토론  프로, 뉴스, 다큐멘터리, 연극(대학 시절의 경험)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행평가 커리큘럼을 짰다.  모든 활동은 교과의 내용이 이론이 되게 시간표를 짰다.


칼럼 쓰기, 토론 하기, 광고 만들기 세 가지를 중심에 놓았다. 럼 쓰기는 수행평가로 시작해서 학기 말에는 학교 소식지에 우수작은 실을 예정이었다.


토론 역시, 국어 토론 단원을 실습해 수행평가 활동으로 한 다음, 교내 과학 토론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광고 만들기는 학교 소식지에서 기사의 헤드라인을 뽑거나 이미지 카피를 쓰는 쪽으로 연결시킬 계획을 했다.


시작은 국어이지만 방송이나 출판, 광고 등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누가 아는가. 훗날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그런 쪽 일을 하거나 겸하게 될 지.



글쓰기의 기본은 에세이


시작'에세이'였다.


과거에는 글 쓰는 일은 '문과'의 일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가뜩이나 이과생들은 국어 과목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국어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글쓰기와 담 쌓고 사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 공대들은 이과생이라고 글쓰기를 등한시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일찌기 커리큘럼으로 보여줬다.  MIT 등 유명 공대들은 '테크니컬 글쓰기' 과목을 개설했다. 실험 보고서를 비롯, 연구 결과를 프리젠테이션 하거나, 크고작은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 이과생들에게 매우 유용한 과목이다. 우리나라도 카이스트에서 교양 과목으로 이러한 글쓰기를 개설, 타 대학 국문과 교수들을 임용하고 있던 때였다.



일단 쓰게, 교사는  뚫어줄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쓰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특별한 것을 가르칠 게 아니라 일단 써보게 하자! 아이들을 컴퓨터실에 데려갔다. 좋은 글의 원칙 몇 가지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개미를 관찰하던 아이란 이야기, 자신의 삶이 직업이 된 사람들의 에세이를 복사해 나눠줬다.


난생 처음 국어 시간에 2교시 연속으로 글을 쓰게 된 아이들의 첫 반응은 다양했다.


컴 앞에서 '여기는 어디고 나는 왜 여기에?'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 컴으로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인터넷 바다에서 써핑을 하는 아이, 상반신을 컴에 밀착, 내가 지나갈 때마다 무슨 기밀을 숨기는 양 글을 가리던 아이, 손 들어 부르기에 반가워 달려가니 질문 대신, "샘 숨소리가 방해돼요. 그 소리 안 들라게 해주세요~" 하던 아이.


책상 사이를 조용히 돌아다니며 말했다.

"글 쓰다 막히는 사람은 조용히 손 들어. 선생님을 '뚫어 뻥'이라 생각하고."라고.


인터넷 써퍼나 게이머들에겐 경고 카드!

"수행평가 태도 점수에 반영할 거당!" 같은 엄포도 살짝 놓았다. 소리 내지 말라던 녀석 옆을 지나갈 땐 수영장 잠수 때처럼 숨을 잠시 참으며 생각했다.

'아, 이래서 교사는 힘들구나. 숨도 못 쉬고 말이지.'


오래 전 유명입시학원 출제위원이던 지인이 논술을 가르친다기에 나는 물었다.

"글도 쓰시는 줄 몰랐어요." 라고.

그분은 소탈하게 웃으며 작은 소리로 고백했다.

"글을 쓰진 않지만 글 쓰는 법은 가르칠 수 있습니다."

논술 선생님답게 논리적으로는 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론가에게 배우는 글쓰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지는 않을까? 


성악가가 아닌 사람이 성악을, 축구 선수가 아닌 사람이 축구를 가르친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가르치는 그 분야를 전공했거나 경험한 사람이다. 글쓰기도 글을 써본 사람이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 잘 써서가 아니라 '해봤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며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다. 아이들이 국어 시간에 글을 쓸 때의 표정과 태도, 한숨의 길고 짧음만 들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때로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놓고 머리를 쥐어뜯을 때가 있다. 


물론 경험이 왕도는 아니다. 글쓰기 이론서를 참고하면 더 체계적인 글쓰기 수업을 할 수 있다.



수학처럼 꾸준히 쓰기


과학고 학생들은 수학 성적이 뛰어났지만 국어의 평균 성적은 일반고보다 낮았다. '국어' 같은 문과 교과 시간은 수면 보충 시간으로 여기는 아이들도 있었다. 거기다 글쓰기라니.... 


글쓰기 첫 시간에 당황해하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글을 쓰는 데 익숙해져갔다. 키보드 치는 소리가 귀여운 클래식 소곡 리듬처럼  교실에 명랑하게 울려퍼지면 나는 창가에 기대섰다. 햇살이 등 뒤에서 들어와 아이들의 모습은 인상파 그림 속의 인물들처럼 따스해 보이고...


어느새 글쓰기의 위상은 달라져있었다.  쥐어짜도 안 나오는 변비 같은 것에서 입시지옥의 현실을 날아오르게 해줄 천상의 뮤즈로. 그 해, 아이들도 나도 '글쓰기 역시 수학처럼 조금씩 해나가면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출처: 픽사베이, StartupStockPhotos



관찰과 지식이 글을 만날 때 


그렇게 국어 시간에 쩜짬이 글쓰기를 한 지 한 해가 지나자 놀라운 일들이 속출했다. 원래 좀 썼던 아이들이야 놀라울 것이 없었다. 지 앞에서 얼굴이 하얗던, 컴 앞에서 전원 나간 사이보그 같던 아이가 과학 칼럼을 썼다. 수업 시간에 너무나 조용히 앉아서 눈만 깜빡거리던 여학생이 학년이 끝날 무렵, 제출한 수행평가는 제목부터 놀라웠다.

'노란 손님'

꿀벌이 인류에게 주는 이로움, 환경 문제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어릴 적 즐겨본 만화 '꿀벌 마야'와는 사뭇 다른 제목이다. 


문장은 화려하지 않았고 간결했지만 세심했다. 글의 전개도 차분했다. 약간의 생물학적 지식만 더 넣으면 최재천 교수님의 칼럼이라 해도 될 글이었다. 나는 내가 어릴 적 즐겨읽던 <파브르 곤충기>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아이들에게 자신의 글을 낭독하게 하고 낭독하는 태도도 수행평가에 반영했다. 그 여학생이 글을 낭독한 후,  한 남학생이 그 여학생이 지나갈 때 장난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부르는 것을 들었다. "노란 손님." 이라고. 여학생은 싱긋 웃을 뿐 결코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 해 말, 학교소식지에 그 여학생의 에세이를 실었다. 소박하고 담백한 과학 칼럼의 향기가 나는 글이었다. 귀여운 꿀벌 삽화로 장식해 자칫 건조해보일 글에 시각의 포인트를 주었다. 수행평가 과제로 끝내지 않고 잡지처럼 32페이지짜리 소식지에 실은 이유는 아이들에게 칼럼니스트의 체험을 하게해주고 싶어서였다.


'에세이'는 '국어 시간에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었다. 과학고는 현장 학습, 국내외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보고서를 쓴다. 국어 시간에 수행평가를 위해 쓴 에세이는 이런 보고서 작성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에세이에서 시작한 아이들의 글에 대한 열정은 시와 소설, 희곡, 광고 문구 등 다양한 글로 이어져갔다.


출처: pixabay, marianan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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