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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얌 Jul 24. 2023

'멍 시크릿', '말 시크릿'

개와 함께 달리는 시간 2

이웃을 사귀고 싶은가? 개와 함께 산책을 해보자!


불독이나 도베르만, 로트와일럿 같은 종은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말티즈나 푸들, 포메라니안 등 작고 몽실몽실할수록 좋다.

귀여운 아기처럼 강아지에겐 온 우주가 끌려온다.

이름하여 '멍 시크릿'.


한 달만 꾸준히 산책을 해보라. 

개를 안 키우는 동네 터줏대감 보다 더 많은 이웃들과 어느새 말동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울 강아지의 '멍 시크릿'에 끌려오는 절대다수는 10세 이하이다.

아이들은 금세 말을 트게 된다. 아이들의 특징은 안물안궁이라도 자기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주제는 당연히 '개를 키우고 싶지만 못 키우는 실정'이다.


"엄마, 아빠가 개는 안 된대서요."

"제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안 된대요."

"아파트라서 안 된대요."





어느 날, 이런 간절하지만 흔한 주제 말고 좀 색다른 얘기를 꺼내는 아이가 있었다.

예닐곱 살의 남자아이였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얘는 뭘 하나요?"



난 그 아이의 통통한 볼을 살짝 어루만지고 싶은 걸 참았다.

아이들을 귀엽다고 쓰다듬는 것이 실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강아지를 보며


"쓰다듬어도 돼요?"


하고 내게 허락을 구하는 아이들, 그들에게서 이런 매너를 배웠다.


학습만화 주인공 캐릭터처럼 동글동글한 아이는 웃는 얼굴이지만 꽤 진지해 보였다.


"자겠지? 개들은 심심하면 자니까."



개를 처음 키울 때 개를 두고 외출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내게, 아버지께서 안심하라며 그러셨다.


  "개는 심심하면 잔다. 걱정 말고 나가렴."


이라고.


내 대답에 아이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스쳐갔다.


자기 어린이집 종일반 친구들을 떠올리는 걸까?

엄마나 아빠가 저녁에 데리러 오길 기다리는...

어쩜 자신도 보호자를 기다려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놀이방이나 앞집 혹은 할아버지댁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려본 적이 있으리라.


난 아이들이 우리 강아지를 대할 때 자신들과 동격으로 생각하는 걸 알게 됐다.

강아지의 '기다림'을 상상하다니... 그 어린아이가.

이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감탄한다. 체력만 놀라운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관찰력, 어휘력에도 깜짝 놀란다.








나는 강아지의 '기다림'에 더 세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떡하면 그 기다림의 시간을 밝게 해 줄까?


생각 끝에 외출 전후에 작은 배려를 해주기로 했다.


외출 전 허그와 간식, 눈 맞추며 인사하기, 그리고 외출 후 허그와 진심을 다해 놀아주기이다.



그러고 보니 이 방법은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아 서적에서였다.

아이를 돌봄 시설에 맡겨야 하는 맞벌이 부모들에게 주는 실전 팁.

떨어져 있는 시간에 대해 너무 이에게 미안해하지 말라.

그 보다 집에 돌아와 충분히 진심을 다해 놀아주라는 것.

그러고 보니 아이와 개를 키우는 건 여러 모로 비슷하다.


유일한 차이가  '사교육'을 안 시켜도 된다는 것이라던가.




지나간 육아 일기를 되돌아본다.

강아지에게 하듯 우리 아이에게 했더라면...

아이를 맡기러 갈 때 나는 늘 손을 잡고 허둥지둥 걷거나 운전대를 돌렸다.


  "집에 가고 싶어."

  "아냐, 아침엔 모두 어디론가 가야 해. 아빠는 직장에 엄마는 학교에(당시 나는 공부 중이었다.) 그리고 넌 놀이방에 가야 해."


이게 정신없이 종종걸음 치는 엄마가 그나마 아이를 이해시킨다고 해준 말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내게 말했다.


  "집이 좋아."

  "집이 왜 좋은데?"

  "집에 가면 물도 있고요, 곰인형도 있고요, 아빠가, 아! 아! 해줄 텐데..."


이따금 남편은 아이를 높이 들었다 받았다 하며 아이를 까르르 웃게 했다.

그럴 때마다, 아! 아!라고 탄성을 질렀는데 그 얘길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는 아이의 솔직깜찍한 고백에 뽀뽀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늘 그렇듯 그 아침 시곗바늘을 쫓는 건지 시곗바늘에 쫓기는 건지 시간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우리를 기다리는 존재들에게는 '밝은 빛깔의 기다림'을 갖게 해야 한다.

약간의 시간과 관심, 몸짓, 표정으로 가능하다.

그들이 좋아하는 간식이나 소품을 쥐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기다렸던 보람을 느끼게 할 따뜻함, 기쁨을 느끼게 해 주자.


'기다림에 대한 보람'은 귀가 시간을 기다렸던 이들에게도 필요하다.


한번은 강아지를 데리고 주택가를 산책하다 역시 개를 키우는 어떤 집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늦은 저녁, 초로의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 문이 열리며 개 두 마리가 뛰어나왔다.

개들은 치어걸이 꽃술을 흔들듯 꼬리를 열렬히 흔들었다.

'멍 시크릿' 발동 시작인가 하는 순간, 머리가 희끗한 여인이 나오며 건네는 따스한 말 한 마디,


  "오늘 하루 애썼어요."


순간, 나는 '멍'해졌다.

흔한디 흔한 말 아닌가. 애 썼다니... 드라마 대사라면 그냥 형식적인 대사 같은.

그런데 저물녘 60대의 부인이 귀갓길 남편에게 건네는 순간, 그 스테레오 타입의 말은 마법의 주문 같이 변했다.

공중으로 따스한 입김 같은 것이 퍼져나가는 것 같았으니...


기다림은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밖에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다.

개에게 '멍 시크릿'이 있다면 사람에겐 '말'이라는 끌어당김의 시크릿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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