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등산화와 파란 배낭
거리 : 20km
시간 : 8시 - 14시
도시 : 레온-비야당고스델파라모
león-villadangosdelparamo
해가 뜨기 전 새벽 레온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알베르게를 나왔다. 10년 전에 큰 마음먹고 산 오래 노란색 등산화를 신고 얼마 전에 당근에서 산 파란색 배낭을 멨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룩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파란색 파탕 위 노란색 화살표를 보고 걷는다.
알베르게에서 나오니 몇몇 순례자들은 벌써 순례길을 시작했다. 앞서 가는 순례자의 가방이 단출하다. 작은 배낭 주머니에 텀블러를 끼고 혼자서 씩씩하게 걷는다.
필요한 것만 추렸다고 생각했는데 내 배낭은 아직도 무겁다. 화살표가 보이지 않아 일단 작은 배낭을 멘 순례자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조금 걷다 보니 앞에 있던 순례자는 사라지고 새로운 순례자들이 나타난다.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길 건너 카페는 문을 열고 순례자들에게 아침을 제공한다.
우리도 걷다가 조금 지칠 때쯤 아침을 해결하고 휴식도 취할 겸 길가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는 이미 순례자들로 북적였다. 오늘도 아침은 빵과 커피다. 그리고 카페 화장실을 두 번 이용한다. 도착해서 한 번. 떠날 때 한 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것이 걷는 동안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순례길 첫날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수월한 느낌이다. 앞 뒤로 사람들이 줄 서서 걷기도 했지만, 어떤 길 위에서는 친구와 나 둘 뿐이었다. 마을 길을 걷기도 하고, 사람이 없는 들판을 걷기도 했다. 잠시 쉬어갈 때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사진을 보내니 "스페인에 간 거 거짓말 아니냐? 사실은 제주 올레길을 걷고 있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왔는데 이렇게 쉽게 연락이 닿으니 나조차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채취라고는 하나도 맡을 수 없는, 갈대만 무성한 허허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그 말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이 길에 내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슬슬 다리가 아파온다.
한 마을에 들어서자 순례자들을 위해 작은 사과가 담긴 바구니와 메모를 남길 수 있는 노트가 보인다. 우리는 작은 사과 하나씩을 고르고 노트에 이름과 모두가 좋은 여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Buen Camino'라고 짧은 글을 남겼다.
누군지도 모르는 순례자를 위해 기꺼이 내놓은 따뜻한 마음이 너무 고맙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조금씩 지쳐 가고 있던 우리에게 낯선 이의 환영과 응원은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첫날이라 쉬엄쉬엄 조금만 걷기로 했다. 보통 순례자들은 하루에 25킬로에서 30킬로 정도 걷는다고 하는데 오늘 우리는 20킬로만 걷기로 했다. 조금 지칠 때쯤 '비야당고스델파라모'라는 마을 입구에 도착했고, 혹여나 우리가 그냥 지나칠까 'albergue'라고 큰 글씨를 바닥에 새겨놨다. 우리는 그 앞에서 첫 순례잡기를 마친 기념으로 지친 기색을 잠시 숨기고 양팔을 허리에 올린 채 사진을 남겼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우리에게 먼저 먼지가 가득한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넣길 권했다. 신발을 벗은 채 서 있자니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닿는 발바닥이 어색해 양발을 번갈아 가며 바닥에서 멀리 떼 놓는다.
친절한 아저씨는 노트에 우리 이름과 'COREIA DO SUL'이라고 적는다. 그리고선 SUL이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어보신다. 아저씨는 북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얼렁뚱땅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도착했다는 기쁨과 쉴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웃음이 절로 난다.
교실처럼 큰 방에 끝도 없이 2층 침대가 늘어져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작지만 깔끔한 주방도 있다. 24인실 도미토리 47번 베드 오늘 내 방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인지 순례자가 별로 없어 우리에겐 좋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사람들이 들락거리지 않아 제일 편할 것 같은 끝 침대를 골라서 자리를 잡았다. 쌓여있는 이불더미에서 제일 깨끗해 보이는 이불도 하나 끄집어와 침대에 깔아놓는다. 햇볕이 좋은 뒷마당에서는 우리보다 더 일찍 도착한 커플 한쌍이 사이좋게 요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순례잡기 중 생긴 또 다른 루틴인 샤워를 하고 입었던 옷을 빨아 뒷마당에 널어놓고 마을을 둘러보러 나갔다. 아저씨가 지도에 체크하며 알려주신 빵집도 약국도 모두 닫았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한산한 동네를 산책했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간신히 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선택권 없이 마을에 하나뿐인 식당에 들어갔다. 인당 두 접시씩 나오는 정식 메뉴뿐이다. 정식 하나만 시켰어도 둘이 실컷 먹었을 것 같은데 그 말을 하지 못해서, 그게 실례일까 싶어서 우리는 정식 두 개를 시키고 음식을 너무 많이 남겼다.
휴대폰 지도가 아닌 노란 화살표를 보고 걷는 일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다. 핸드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삶. 목적지를 찾을 때도 표지판 대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어렸을 적 아빠 차를 타면 항상 문 옆에 지도책이 있었다. 지도책을 보고 도로를 찾고 안내 표지판을 보고 우리 가족은 한 여름 동해를 누볐다. 길을 잘 못 들면 돌아가면 됐다.
그렇지만 요즘엔 최단거리, 최단시간을 검색해 목적지만을 향해서 간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순례길에서는 잠시나마 온라인 세계에서 강제로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과거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을 나도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화살표가 없으면 내 앞에 가는 순례자가 그 화살표를 대신해 준다. 누군가도 내 등을 보고 걷고 있겠지? 나도 그들에게는 노란색 화살표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