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고, 떠나보내며 걷는 사람들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길에서 떠났다.

by 서은
다리 위에 있는 우리를 보고 웃어주는 여행자

열두 번째 순례잡기


거리 : 29.2km

시간 : 7시 30분 - 15시

도시 : 팔라스 데 레이 - 아르주아

Palas de Rei - Arzua













그제부터 한국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했는데, 아르주아에서 묵은 알베르게의 방에는 두세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다. 어쩐지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걷다가 만난 옆 침대 아저씨

옆 침대에 있던 외국인 아저씨는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침낭 안에 몸을 쏙 넣은 채 우리 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기분이 나빠져 나도 지지 않으려고, 아저씨 눈을 계속 따라가며 쳐다봤다. 서로 물러나지 않으려는 이상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팬티바람으로 침낭 안에 있었다. 침낭 밖으로 나갈 타이밍을 노렸던 건가? 괜히 더 당황스러워졌다.


방에는 점잖고 인상 좋은 외국인 할머니도 계셨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신 분인데, 배낭에는 그동안 다녀온 나라의 와펜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창가에 앉아있던 우리에게 여행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주셨다. 그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단했다.


한국 순례자들은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우리보다 훨씬 먼 곳에서 출발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오는 길에 서로 여러 번 만나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친구와 나는 그들 사이에 섞이기엔 조금 어색했다. 함께하자고 마음 써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내향적인 나는 슬쩍 그 자리를 피해서 나온다.


오늘 아침은 한국에서 온 순례자 한 명과 함께 출발했다. 어제 함께 배낭을 부치고, 우리는 가벼운 어깨로 길을 나섰다. 그분은 오늘 처음으로 배낭을 보내고 걷는다며, 발걸음이 가볍다고 했다.

가볍게 걷는 길

나는 몸이 좋지 않았던 초반부터 계속 배낭을 보내고 걸어왔다. 그래서 배낭을 메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하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잘 걷고 있는 거라고.


며칠 전에 지나온 오 세이로무시로 가는 산길에서, 한 외국인 순례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산을 오르던 중 스틱이 부러져서 앞으로 넘어졌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친구는 그 현장에서 오랫동안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했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지만 너무 늦었고, 외국인 순례자는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우리는 그날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 오 세이로무시까지 가지 않고 바로 전 마을인 라파바에 머물렀었다. 라파마까지 가는 길에도 언덕길이 끝나지 않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하늘의 별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 걷고 있던 친구들은 가까운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고, 다시 길 위로 돌아왔다고 했다. 죽은 친구가 순례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길 위에서 행복했을 거라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도와준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의연할 수 있을까? 슬프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가슴속에 슬픔을 품고 걷고 있을 것이다.


어제 걷는 동안 지젤을 보지 못해 지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오늘 같이 걷는 친구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항상 밝게 웃던 지젤이었기에, 그 이야기는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차라리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과, 그게 사실이라면 이 길이 그녀의 아픔을 위로해 주고, 그녀를 조금은 단단하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다리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모습, 식당 찾던 우리를 뒤따라와서 화살표를 잃었을 때 당황한 모습, 숙소 계단 위에서 손키스를 날리던 사랑스러운 모습. 이 길이 끝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픔을 내려놓고 떠나는 사람과, 아픔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 순례길의 기억만큼은 모두에게 따뜻하게 남길 바란다.

데보라와의 커피타임

늘 우연처럼 만났던 한 사람이 있다.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준 사람. 오늘 카페에서 우리 셋은 함께 커피를 마셨다.


파리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12년 전 파리에 갔었다고 하자, 그녀는 12년 전 한국에 갔었다고 했다. 묘하게 이어진 시간 위에서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녀는 언어 능력자였다. 불어, 영어, 스페인어, 거기에 한국어까지. 처음 만났을 때는 한국어를 조금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만날 때마다 새로운 한국말을 들려주었다. 오늘은 '커피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이름을 물었는데,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내가 입은 보라색 티셔츠를 가리키며 '보라' '데보라'라고 했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우리가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는 거 아닐까?


그 모습을 보며, 오래전 포기했던 외국어에 대한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영어를 잘했더라면, 이 길 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이 길도 두 번의 걷기밖에 남지 않았다. 아프고 난 뒤에는 '내가 이곳에 왜 왔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런데 그런 의문들이 점점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만 몰두해, 빠르게 걷기만 했던 시간이 떠올라, 괜히 그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진다. 남은 이틀은 더 많이 보고 느껴며 걷고 싶다.


그래서 남은 이틀은 다시 배낭을 메고 걷기로 했다. 처음 순례길을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내일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조심히, 천천히

안전하게 순례길 걷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