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물안개의 공존, 포르토 마린

안개가 모든 것을 덮어버린 아침

by 서은
안개속 포르토마린

열한 번째 순례잡기


거리 : 24.8km

시간 : 7시 30분 - 14시

도시 : 포르토마린 - 팔라스 데 레이

Portomarin -Palas de Rei
















포르토마린에서는 냄새가 심한 공립알베르게에서 머물렀다. 우리는 강이 잘 보이는 언덕 위 알베르게로 배낭을 보냈는데, 그곳 문이 닫혀있자 말도 없이 공립알베르게에 배낭을 가져다 놓았다. 언덕 위에 올라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온 우리는 더 이상 걸어 다닐 기력이 없어 그냥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니, 알 수 없는 온갖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람 땀냄새, 덜 건조되어 나는 빨래의 쉰 냄새가 뒤엉켜 공중을 붕붕 떠다닌다. 코로 숨을 쉴 수가 없다. 아니 쉬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안 숨을 참았다가 최소한의 공기만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이제껏 맡았던 알베르게 최고의 냄새로 임명한다.


냄새가 너무 심해서 우리는 짐을 대강 풀고 복도에 나와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우리 코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복도에는 배낭을 메고 눈에 초점을 잃은 채, 방안을 응시하고 있는 순례자도 있었다. '언니 환불하고, 당장 도망쳐.' 마음의 소리가 울린다.


이제 열흘쯤 걸으니 눈에 익숙한 순례자들이 많다. 걸으며 마주쳤던 사람들이 이 공립 알베르게에 잔뜩 모여있었다. 빨래를 널러 마당에 갔더니 한국 언니가 배낭까지 빨랫줄에 널고 있다. 그것까지 빨았냐 물어보니 얼버무린다. 나중에 들으니 베드버그에 물려서 가지고 있는 짐을 죄다 세탁한 거라고 했다. 벌레 물린 자국을 보니 내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다.


베드버그용 스프레이를 가져왔는데, 다행히 벌레에 물린 적 없었다. 아까 방에서 맡은 냄새를 떠올리니 벌레가 있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스프레이를 열심히 뿌려야겠다.

풀떼기의 소중함


도착 루틴을 마치고 우리는 동네를 둘러보기로 한다. 오랜만에 일찍 도착해서 시간도 많았다. 딱 걷기 좋은 크기의 포르토마린,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 가운데 꽤 큰 성당도 있고, 거리에 사람들도 많고, 식당과 상가도 중심가에 밀집되어 있어 뚜벅이 순례자들이 머무르기 알맞은 동네이다. 오랜만에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여행자처럼 산책도 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스페인 식당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샐러드도 먹고 와인도 마셨다. 오랜만에 먹는 풀떼기가 왜 이렇게 맛있고 소중한지, 연신 감탄이 나온다. 와인 한잔에 술기운까지 오르며, 기분이 좋아진다. 식당을 나와서는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낯익은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신나게 인사를 해댔다.


술기운인지 모르겠지만 돌아온 알베르게에서 냄새가 조금 덜 나는 것 같다. 그렇게 몇 명인지도 모를 사람들 사이에서 잠을 청한다. 눈을 감았다 뜨니 벌써 아침이다. 맞은편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의 침대 위가 깨끗하다. 늦잠을 잔 것 같아 헐레벌떡 씻고 나오니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순례자

우리도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물안개로 가득하다. 어제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고요한 안개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발소리만 젖은 바닥에 닿는다. 물안개가 가득한 거리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앞에 가던 순례자가 물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잊고 싶지 않은 풍경이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돌바닥이 촉촉하게 젖어 찰박거린다. 오래된 신발을 신은 나는 미끄러질까 조심히 한 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한 걸음 걸어가니 조금 더 멀리 보인다. 우리도 새하얀 물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어제 미뉴강을 가로지르는 높은 다리를 건너왔다. 팔라스 데 레이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시 다리를 건너가야 했다. 엊그제 만났던 할아버지가 물안개를 뚫고 다리를 건너고 있다. 카메라를 꺼내기 무섭게 렌즈에 물기가 찬다. 안개인지 물기인지 모를 것을 필름카메라에 담는다. 이마에도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힌다.


다리를 건너고 언덕에 오르니 안갯속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안갯속에서 줄지어 걷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비장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떠오르니 물안개도 서서히 걷힌다. 우리만 존재했던 고요한 안갯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왔다.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순례자

알베르게의 충격적인 냄새만 기억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던 물안개의 도시 포르토마린. 이 도시는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새벽 물안개의 풍광이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