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목격한 다양한 "기술적" 그리고 "사회적" 변화
잠자던 사자가 깨어나고 있다!
일본에 가면 늘 묘한 기분이 든다. 참고로 본지는 2023년 봄부터 매년 서너 차례씩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를 오가며 다양한 행사에 참여 중이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나라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주 오사카에서 열린 Global Startup Expo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정부측 관계자가 지난 5월 "왔으면 좋겠다"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경험상 그들의 이런 말은 "반드시 와야 한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경제산업성 주도의 딥테크 전시회라는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현장에서 본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변화였다.
마치 30년간 잠들어 있던 사자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자신의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이 결실을 맺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사실은 운이 따른 것에 가깝다. ChatGPT로 촉발된 AI 열풍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잘 탄 것일 뿐이다.
이런 현상은 대게 낙후된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서 신기술로 도약할 때 자주 나타난다. 아프리카에서 M-PESA 같은 모바일 송금 시스템이 발달한 것도, 중국에서 QR코드 기반 위챗 페이가 급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까지는 최첨단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거기서 멈춰 있었다. 지금도 거리에서 주차 단속원들이 2000년대 초반 똑딱이 카메라로 단속하는 모습을 보면 그 정체된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AI가 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일본 전철역에서 직원들이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로봇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하다'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삶의 방식과 시스템. 역설적으로 그 시스템이 이제는 경쟁력이 되고 있다. 철도, 제조, 유통 분야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매뉴얼과 데이터가 생성형 AI, 예측형 모델과 결합하면서 운행 통제, 설비 유지 보수, 고객 운영 최적화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JR 동일본은 도쿄권 열차 관제에 AI 에이전트와 전용 대형 언어 모델을 시험 적용해 장애 대응의 자동화와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인구 감소와 숙련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기술적 처방이기도 하다. 통신 인프라 영역의 NTT 역시 전문가 의사결정 과정을 가시화하는 AI를 개발해 현장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만난 스타트업들의 외형은 여전히 수수했지만, 농업 로봇과 딥테크 기업들은 데이터-하드웨어-서비스를 끝단까지 묶어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내놓고 있었다. 다른 나라 스타트업들이 그럴듯한 계획만 늘어놓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응용과 실용화에 특화된 일본인들의 DNA가 AI 시대에 맞아떨어진 셈이다.
주목할 점은 일본 정부의 전략이다. 19세기 말 탈아입구를 외치며 근대화에 나설 때 미쓰비시 같은 대기업에 일감을 몰아준 것처럼, 이번에는 선택과 집중 기조를 강화해 특정 유망 기업과의 협업과 무대 노출을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사카나AI 같은 최단기간 유니콘 기업에 대기업과의 동맹을 통해 상용화를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승자에게 모든 것을 거는 전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그늘도 있다. 에너지 제약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화된 규제 하에서 단계적 재가동을 이어왔지만, 2025년 3월 기준 상업 운전을 재개한 원전은 14기에 그치고 있다. 가시와자키 가리와 6호기와 7호기 재가동도 각각 2031년과 2029년으로 연기된 상황이다.
AI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원전과 재생에너지 병행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단기 공급 여력은 정치적 상황과 지역 수용성에 좌우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방인의 눈으로 이번 행사는 자민당 당수 선거를 앞둔 정치적 쇼의 성격도 짙었다. 각종 장관들이 와서 행사 흐름을 끊는 모습은 어디선가 보았을법한 익숙한 풍경이었다. 보여주기식 기획이라면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높다.
그럼에도 올해 추정 1인당 국민소득에서 우리가 일본을 앞지른 상황에서, 그들이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경제 규모 2.5배, 인구 1.2억 명의 이웃 나라가 AI라는 새로운 게임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현시점. 그리고 대한민국과 일본이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비슷한 산업구조로 경쟁하는 입장에서, 잠에서 깨어난 일본이라는 사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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