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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Oct 25. 2017

[파괴지왕], [서유쌍기], [식신]으로 보는 주성치

 주성치의 영화는 유치하다? 저질 개그로 가득하다? 어쩌면 틀린 말 하나 없을지도 모르는 이러한 견해에도 필자의 가장 좋아하는 영화 배우이자 감독은 단연 주성치이다. 물론 주성치만큼 작품 편차가 큰 인물도 없을 것이다. 가령 [홍콩 레옹] 같은 경우는 그가 찬사 받는 [서유쌍기], [희극지왕], [도학위룡] 같은 작품들과 나란히 봤을 때 정말로 괴작이다. 그의 온도 차에도 불구하고 다작 배우답게 명작 내지 수작 쯤은 되는 작품들이 많다. 오늘은 정말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 필자가 선별한 영화 3편을 중점으로 그의 작품에 스며든 감성을 알아보자.


# 줄 거 리


 [파괴지왕]

  거지에게 자신의 옷과 신발 심지어 팬티까지 줄 정도로 심성이 착하고 바보 같은 아금(주성치)은 자주 배달 가는 학교의 퀸카 아리(종려시)를 짝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아리의 유도부 주장인 흑웅에게 창피를 당한 후 자신이 중국고권법의 계승자라고 사기 치는 매점 주인(오맹달)에게 '무적풍화륜'이라는 무술을 배우게 된다. 아금은 아리를 추행하려는 흑웅에게 승리한 후 자신의 정체를 알리려고 하지만 아리의 옛 친구인 공수도부 주장이 나타나게 되고 그와의 마지막 대결을 치르려 하는 데...


[서유쌍기]

  서역을 구하러 가는 여정에 지친 손오공(주성치)은 우마왕과 결탁하여 당삼장을 죽이려 하고 이를 알아차린 관세음보살에게 죽임을 당하나 삼장이 목숨과 맞바꾼 간청으로 500년 후 산적 두목 지존보로 환생하게 된다. 그러던 중 반사대선(주인)의 두 제자, 춘삼십장과 백정정은 삼장의 환생에 맞춰 먼저 환생한 손오공을 찾아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우마왕 일당까지 쫓아와 결전을 벌이게 된다. 백정정을 사랑하게 된 지존보는 그녀를 되살리기 위해 월광보합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기를 반복하지만 끝내 구하지 못한 채 500년 전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하 선인(훗날 반사대선)에게 월광보합을 빼앗긴다. 자신의 검을 뽑은 지존보를 낭군으로 지목한 자하에게 거짓 사랑을 고백해 월광보합을 되찾지만 자하는 우마왕과 강제 결혼을 하게 될 운명에 처하는 데...


[식신]

  잘 나가는 식신으로 요식업계 사업을 휘두르는 큰 손인성치는 안하무인의 성격으로 동업자인 오맹달과 제자 광우에게 배신 당한 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성치는 뒷골목 묘가에서 험한 꼴을 당하던 중 그곳을 주름잡는 칠면조(막문위)의 도움을 받게 된다. 두 세력으로 양분된 묘가에서 칠면조의 '쇠고기 완자'와 상대편의 '오줌싸개 새우'에 대한 판권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던 와중에 성치는 두 메뉴를 결합한 신 메뉴를 개발하여 다시 사업을 일으킨다. 점점 커지는 성치의 사업을 볼 수 없던 오맹달은 새로운 식신인 광우와 요리 대결을 제안하고 성치는 중국요리학원에 가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오맹달이 보낸 킬러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는 데...



#1. 희극지왕


 그의 코미디는 어렵지 않다. 모두 원초적인 개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월광보합] 속 중요 부위에 불이 붙었으나 보리선인이 준 부적을 몸에 붙여 요괴들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산적 무리는 두목인 지존보의 '그곳'을 사정없이 밟는다. 하지만 춘삼십장의 이혼대법으로 지존보의 오른팔인 이당가(오맹달)가 부적을 바꿔치기한 탓에 춘삼십장과 백정정은 발가벗은 채 부적만 두른 산적 떼가 보인다. 얄궂게도 두 요괴는 다시금 지존보의 그곳에 불을 붙인다. 이내 체념한 지존보의 아련한 표정연기는 [월광보합] 속 많은 킬링파트 중 가장 많은 웃음을 유발한다. [파괴지왕]에서는 어떠한가, 식당에서 음식에 벌레가 나와 컴플레인을 건 고객에 대한 응대는 음식을 바꿔주는 간단한 방식이 아니다. 식당 종업원들이 전부 달려들어 그 파리를 흠씬 두들겨 팬다. 역시 [식신]에서도 물론 이러한 폭력적인 코미디 장면이 있다. 소림사를 탈출하려는 주성치를 소림18동인들이 달려들어 패는 데 앞에 4-5명 정도만 쿵후 자세로 온갖 폼을 부리고 결국은 나머지 인원들이 각목과 의자로 집단 구타를 할 뿐이다.


그의 코미디가 비단 '폭력성'만 내포할까? 그의 코미디는 '저질성'까지 지녔다. [식신] 속 소림주지스님에게 구해진 주성치, 주지는 그의 몸에 독이 가득하다며 모두 입으로 빨아내야 한다고 말하며 그의 중요 부위까지 가려 한다. 물론 딱 거기까지에서 멈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지만 그의 작품들 속에서 이러한 저질개그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게다가 요즘 세상에 나왔다면 많은 뭇매를 맞을 만한 여성혐오와 서로의 욕배틀 장면 속 장애인 비하, 외모비하 개그까지 말 그대로 정말 저질스럽다. 하지만 그의 코미디가 비단 '폭려성'과 '저질성'에 국한되어 있다면 그는 지금처럼 많은 팬들을 보유한 성공한 배우 겸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파괴지왕], [식신], [쿵푸허슬]의 경우를 보면 그는 때때로 만화에서 영감을 얻는 듯한 장면들을 많이 보여준다. [파괴지왕]에서 공수도부 주장이 다른 체육부 주장들을 쓰러트리는 장면에서 발차기 한 번에 흑웅을 날려 벽을 무너트리는 장면이나 자신이 흑울응 쓰러트렸다며 동네 모든 남정네들이 가필드 가면을 쓰고 쫓아 오자 도망가는 아리를 쫓기 위해 작은 소형차에 전부 타서 사고가 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트램펄린에서 뛰어놀듯이 튕겨져 나오는 장면은 만화적 연출을 실사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해낸 장면들이다. [식신]은 음식을 먹고 극락을 맛보는 시식자의 모습과 요리 재료를 공중에 띄어 칼질 몇 번에 가지런히 요리에 쓰이는 장면, 모두 [요리왕 비룡] 속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 [쿵푸허슬] 속 주인집 아줌마에게 쫓기는 장면은 [벅스 버니] 속 추격장면 그대로이다. 위 장면들 연출 모두 일부러 더욱 만화스럽고 촌스럽게 꾸민 것이 포인트이다.


특히 그의 코미디가 단순한 수준이 아니라고 느낀 부분은 영화 [파괴지왕]에서 두드러진다. 영화 전반부 사기꾼인 매점 주인(오맹달)은 아금(주성치)의 돈을 뜯어 내기 위해 엉터리 훈련을 강행한다. 그러나 더 이상 아금에게 뜯어낼 돈이 없음을 알게 된 오맹달은 아금을 떼어 놓기 위해 거짓 권법 '무적풍화륜'을 알려준다. '무적풍화륜'은 높은 계단에서 상대와 함께 굴러떨어지는 권법으로 만약 훈련을 못하겠다면 재능이 없는 것이니 자신을 찾지 말고 굴러떨어져 살아남아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아금의 착한 심성이 신경 쓰인 오맹달은 서둘러 계단을 찾아온다. 그러나 실수로 그만 자신이 굴러떨어지게 되고 온갖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오맹달을 아금이 일으키며 사부님을 치켜세운다. 이 장면은 걱정하던 것과 다르게 헤어진 후에도 멀쩡한 아금의 모습과 오히려 크게 다친 오맹달을 대비해주고, 또 그런 오맹달(사기꾼)을 치켜세우는 아금의 아이러니하면서 얄미운 상황이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 앞 장면에서 줄게 없던 아금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아끼던 시계를 건네는 장면은 슬프게 연출된다. 희비극이 적절하게 교차하는 것이다. 이는 웃긴 장면을 더욱 상승시켜주는 효과를 지녔다. 여기까지도 아주 훌륭한 코미디 장면이지만 여기까지라면 최고의 장면이라며 극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끝마치지 않고 이 '무적풍화륜'이 뒤이어 있을 흑웅과의 대결에서 그를 이기는 진짜 필살기로 쓰인다. 매점 주인의 거짓이 순수한 아금에게 전해져 진짜가 되는 것이다. 단순한 개그에 쓰이는 소재인 줄 알았던 거짓 권법이 중간 보스 흑웅을 이기고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까지 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코미디가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여 영화의 지루함을 타개하는 소 재료로써 쓰인 것이 아니라 영화 진행의 핵심 요소를 개그에까지 복수로 활용한 휼륭한 예시이다.



#2. 사랑에 대한 담론


 그의 영화가 단순히 가벼운 코미디 영화가 아닌 부분은 그의 영화 전반에 내재된 사랑에 대한 견해에서도 나온다. [서유쌍기]에서 지존보는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백정정을 구하기 위해 월광보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월광보합은 이내 자하선인에게 빼앗기게 된다. 지존보는 월광보합을 얻기 위해 자하선인에게 거짓 사랑을 고백한다. 자하선인을 우마왕 소굴에 버려둔 채 500년 전의 백정정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혼인을 올리려 하지만 지존보는 자꾸만 떠오르는 자하가 혼란스럽다. 지존보는 단지 그것을 자하에 대한 죄책감으로 치부하려 하지만 백정정은 지존보의 몸속으로 들어가 심장에게 그가 진실로 좋아하는 이가 누군지 대답을 듣고 떠나 버린다. 버려진 채 혼자 남겨진 지존보는 자하선인의 제자가 되려 찾아온 춘삼십장을 마주하게 되고 그녀에게 아주 빠르게 심장을 갈라 보여달라고 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알지 못해 심장에게 물어보려 하는 것이다. [식신]에서는 어떠한가? 성치는 자신을 일으켜세운 칠면조가 얼굴이 다치게 된 경유를 듣게 된다. 그녀는 오랫동안 식신인 주성치의 팬이었고 그의 깃발을 망가트린 깡패들과 싸우다 얼굴을 다치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된 주성치는 그녀가 부담스러워 도망친다. 그녀를 뒷골목에 버려둔 채, 중국요리학원에 가기 위해 홀로 떠나지만 그곳까지 쫓아온 칠면조는 주성치를 죽이기 위해 사주된 킬러의 총에 대신 맞게 되고 또 한번 주성치를 살린다. 주성치는 그녀의 죽음 이후에 그녀에 대한 진정한 마음을 깨닫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은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 [파괴지왕]의 경우는 역으로 여주인공인 아리가 눈앞의 진정한 사랑인 아금을 인식하지 못한다. ) 지존보는 춘삼십장에게 죽임을 당한 후 손오공이 되고 그는 긴고아를 하며 불가에 몸을 담는 의미에서 속세와의 모든 것을 등 돌린다 약조한다. 삼장을 구하기 위해 우마왕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자하는 손오공이 지존보임을 알아차린다. 자신의 사랑이 자하에게 향해있음을 알지만 이제 그는 그녀에게 갈 수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우마왕과 대치 중 자하는 손오공을 대신해 창에 찔리게 되고 그녀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긴고아는 더욱 조여오고 결국 떨어지는 그녀를 잡지 못한다.


손오공과 식신의 주성치 모두 사랑에 깨달은 후에 불가에 귀의해 비범한 능력들을 얻는다. 그러나 그 비범한 능력들로도 그녀들을 구해내진 못한다. 이는 불가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즉, 능력을 얻지 못한 깨달음 전에도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능력을 얻은 후에도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서로 같고 이는 모두 하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는 무언가를 이룬 후에도 사랑이 온전히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랑이 곁에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리기연]의 결말에서 우마왕은 패배 후 그 지역 전체를 태양에 보내버린다. 태양과 가까워지자 오공은 월광보합을 통해 삼장과 사제들을 데리고 탈출한다. 엄청난 시간이 흘러 미래로 오게 되고, 오공은 다시 서역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길목에서 지존보와 자하의 환생인 것처럼 보이는 두 연인의 싸움을 보게 된다. 오공은 자신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는 남자의 몸으로 들어가 마지막 키스를 한다. 두 연인은 다시금 화해를 하고 사랑을 찾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유히 떠나는 손오공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굉장히 아련하다.



#3. 수미상관의 구조


 위에 세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또 있다. 바로 수미상관 구조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파괴지왕] 속 '무적풍화륜'의 쓰임을 보았다. 이 장면은 영화 속 마지막 보스인 공수도부 주장과의 대결에서도 다시 보인다. 둘의 대결은 큰 화제를 모으고 시청률에 혈안인 방송국은 이를 생중계한다. 대결은 아금과 사부의 특훈과 잔머리로 무승부를 이르고(애초에 아금과 사부의 목표는 대결에서 살아남기이다.) 대결 시작 전 아금을 대결에서 죽이겠노라 선언한 공수도부 주장은 격노하여 미쳐 날뛰게 된다. 그리고 아금은 마지막 필살기로 '무적풍화륜'을 쓰려 하지만 경기장에는 높은 계단이 없다. 그러던 중 방송 종료 후 복권 추첨을 하려 준비한 커다란 기계를 발견하고 공수도부 주장을 끌어안은 채 들어가 '무적풍화륜'을 구사해 승리한다. 마지막 필살기 역시 중간 보스 흑웅을 무찌르고 아리를 구했던 '무적풍화륜'을 사용한 것이다. [시신]에서는 어떠한가, 오맹달의 배신으로 무일푼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주성치는 뒷골목에서 두들겨 맞고 구해진다. 칠면조는 그에게 아주 간단한 중식 돼지고기 덮밥을 건넨다. 그는 허겁지겁 그녀의 요리를 맛보고 정말 맛있다며 감격한다. 마지막 결말부 광우와의 요리 대결에서 요맹달의 술수로 요리하던 불도장이 폭발한다. 요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성치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돼지고기 덮밥을 완성한다. 누구라도 만들 수 있고 길거리에서 파는 하찮은 요리로 그는 승리한다. [서유쌍기]에서는 자하에게 거짓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 하던 대사를 손오공으로 변하기 전 마지막 고백에서 똑같이 사용한다.(이 대사 중 마지막 부분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서 나오는 대사를 패러디한 것인데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대사 역시 코미디의 한 장르인 패러디라는 점은 그가 굉장히 수준 높은 코미디 영화인임을 보여준다.) 완전히 상반된 두 장면 속 같은 대사는 기가 막히게 절묘해 속세와의 인연을 끊으려는 지존보의 결심이 더욱 비장하게 느껴진다. 주성치 영화가 웃기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잘 짜인 이야기 틀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위에 소개된 3편의 영화 말고도 주성치의 영화는 가끔씩 생각날 정도로 기발한 생각과 웃긴 장면들이 많다. 최근데 tvn에서 방영한 '코미디 빅리그'에서 주성치식 개그로 가득 메운 코너를 보게 되었고 역시나 나는 그 코너를 보고 거실 바닥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 TV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웃은 게 얼마 만 인지... 그리고 다시 생각났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주성치 흉내를 내며 웃고 떠들었던 시절을. 그 시절 나의 친구이자 영웅이던 주성치는 이제 배우 일보다는 감독으로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연기를 못 본다는 것은 너무 아쉽지만 그의 코미디는 그가 감독하는 작품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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