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멤버 안입니다.
어느 허름한 병원의 지하. 쾌쾌한 냄새가 입구부터 코를 찔렀다.
내가 대체 왜 여기에 와야 하는 걸까 참담한 심정 반, 낯선 경험 앞에 불안한 마음 반을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많게는 할머니, 적게는 엄마 정도의 나이대의 여사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앉았다. 곧 모임이 시작되었다. 알코올 중독자 가족(친구, 친척)의 모임, 즉 알아넌(al-anon)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것이 ‘중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건, 그의 모습이 TV나 영화 속에서 봐 왔던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라면 손을 덜덜 떠는 건 기본이고,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더럽고 냄새 나는 사람. 집이 없어 길거리 아무데서나 박스를 깔고 자는 사람.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중독자와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고, 우리 집은 꽤나 돈이 많았으며 더럽기는커녕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청소 문제로 엄마를 들들 볶아 댔다. 당연히 손도 떨지 않았다.
내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빠가 나에게 알아넌(al-anon)을 권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라고, 너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았을 테니 모임에 나가 회복 프로그램을 해 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니, 갖다 붙이기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말했듯이 전형적인 중독자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콧방귀를 뀌고 오빠의 조언을 저멀리 기억 너머로 던져 버렸다.
"말도 안 돼.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니, 완전히 엉터리."
실제 알코올 중독자의 증세와 삶은 천차만별이다. 손을 덜덜 떨고, 사회 생활이 안 되는 중증 중독자도 물론 있지만 멀쩡하게 사회 생활을 잘 하는 경증 중독자들도 많다. 물론 겉으로 볼 때 멀쩡해 보이는 것이다. 속은 병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결국엔 알코올로 인한 각종 정신적, 신체적 문제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알코올 중독은 진행병이기 때문이다.
알아넌에서 '모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까지 폭넓게 정의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알아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일 것이다. 한국의 관대한 술 문화가 알코올 문제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중독자의 자녀이기 때문에 더욱 뼈아프게 느껴진다.
첫 회사에서 만난 부장님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다니는 분이었다. 낮은 직급의 직원들과도 격이 없이 지냈기 때문에 나와도 종종 시시한 일상 얘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날 그가 이렇게 물었다.
“안 대리는 주말이나 여가 시간은 뭐 하며 보내요?”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하죠.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수다 떨거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쇼핑할 때도 있고요.”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에이, 그런 게 재미가 있어요? 친구들이랑 술 한잔 안 해?”
그때 즈음 나는 모임에 나가며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인가 아닌가 헷갈려 의심스러웠던 차라, 가급적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면 나도 중독자가 될 기질을 가지고 있을 지 모를 일이었다.
“저는 술 별로 안 좋아해요. 술 안 마시고도 재미있게 보내는데요.”
그러자 그는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정말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술을 한 잔씩 해야 재미있지 술도 안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냐'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나는 그 얘기가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문득 '이분이 혹시 알코올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이라면 그냥 애주가로군 하고 지나갔을 일이다. 그런데 모임에 다니기 시작한 내게 술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어쩐지 조금 과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 후로도 여러 번 술 애찬론을 펼쳤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는 내 인생을 측은해 하며 '좀 즐기며 살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와 대화할 그 당시 그는 이미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심지어 재발이었다. 두 번째 암 수술을 마친 후에 그는 당분간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몇 번이나 내게 경과가 좋아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술자리'를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수술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분기별로 1회 정도는 마셔야겠다며 술자리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렇게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 정말 멀쩡하게 회사에 다니며 자기 생활 잘 하는 사람이 알코올 중독자라니, 흔히 생각하는 알코올 중독자와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지만 그는 암 3기라는 그것도 재발한 심각한 상황에서도 술을 끊지 못했다. 그럼으로 분명히 알코올 중독자가 맞다.
나는 그를 보며 중독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리게 되었다. 나역시 중독자에 대한 어떤 '상'을 만들어 놓고, 그정도가 되어야 중독자라고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중독자들은 우리 주변의 어느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아주 매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 대단한 착각이 우리 삶에 중독의 씨앗을 얼마나 많이 뿌리고 있는지 조금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술을 적당히 즐기는 것은 쉽지 않다. 술에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중독적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독약과 같다. AA(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익명의 모임)에서는 ‘첫 잔을 주의하라.’는 슬로건이 있다. 중독자는 한 잔이 들어가면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독은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증이 진행병이라는 것은 자신을 애주가라고 ‘착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아주 무섭고도, 잔인한 사실이다.
알아넌(al-anon) 모임은 보통 자신의 경험담을 3~5분 정도 말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듣고, 후원자(sponsor)와 함께 12단계 프로그램(12 steps program)을 하며 회복해 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익명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부자인지 가난한지, 학력이 무엇인지 등등 사적인 정보를 알지 못 한다. 자신을 멤버 O(성) 이라고 소개할 뿐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멤버의 한 사람일 뿐, 그 외의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모임에서 헤어지면 우리는 서로가 어디에서 사는지 조차 알지 못 하는 낯선 관계로 돌아간다. 이러한 알아넌의 익명의 원칙는 우리가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불행과 고통, 참담한 현실을 가감 없이 나눌 수 있게 하고 어떠한 판단 없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는 회복의 토대가 된다.
모임을 1년 이상 다니면서 마침내 나는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이고, 내가 알코올 중독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그곳에서 만난 알아넌 멤버들은 우리 아버지는 그래도 낫다, 고 했다. 비참한 일이었다. 비참하고 참담했다. 이보다 더한 지옥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회복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