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나에게 황금 같은 기회를 줬던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나자 조금 더 큰 곳에서 일하고 싶어졌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나를 성장하게 할 동력을 찾기 위해 여러 회사를 검색하던 중에 한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두 달여의 시간 동안 서류에서부터 PT 면접, 임원면접을 거쳐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하기까지 어찌나 마음고생을 했던지 살이 쭉쭉 빠지고 밤에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얏호! 합격이다 합격.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괌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혼자 여행을 하필 괌으로 가다니, 주변에서 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다. 거긴 연인이나 가족이 가는 휴양지 아니야? 거길 어떻게 혼자 갔어? 혼자서 재미없지 않았어?
그건 뭘 모르는 소리다. 괌이 누군가에겐 출산 전 여행으로 유명한 곳일지 몰라도 나에겐 눈부시게 빛나는 투몬 비치가 있는 고요한 여행지다.
괌에서 나는 트롤리를 타고 이리저리 관광도 다니고 스노클링도 하고 수영장에 앉아서 책도 읽었다. 아주 작은 괌 시내를 산책하며 음악을 즐기기도 했다. 여행 내내 아침이면 일어나 해변가를 산책했다.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며 바닷가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제껏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준 것만 같았다.
나는 나와 여행하는 시간을 무척 사랑한다. 그 시간을 충만하게 누려본 사람은 절대로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그곳이 어디든 혼자서도 잘 지내는 법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여행이 얼마나 좋았던지 돌아오는 날엔 너무 아쉬워서 꼭 다시 오겠노라 다짐했다.
여행이 끝난 것은 아쉬웠지만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게 된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곳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그 일들을 어떻게 해 내게 될까.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얼마만큼 성장하게 될까.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여 전날 밤엔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로또가 되면 회사를 그만두겠냐 안 그만두겠냐는 설문에 많은 사람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퇴사하겠다 답한 것을 보고 나도 잠깐 행복한 상상을 해 보았다. 로또가 한 20억쯤 된다면 뭘 할까? 회사는 어떻게 할까? 물론 마음가짐은 지금과 다르게 여유로울 테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너무 순수하게 믿고, 순진한 구석까지 있어서 좋게 말하면 해맑고 나쁘게 말하면 세상물정을 몰랐다. 회사에 다니고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상황을 만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지혜로운 삶의 방식도 배우게 되었다. 이것은 내게 큰 재산이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예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로구나. 어린 시절 나는 세상이 꽤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굴러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세상은 어찌 보면 무척 엉망진창으로 굴러간다.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싶은 일도 가능하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잘 되지 싶은 일은 부지기수다. 사실상 이치에 맞는 일이란 많지 않다. 나는 그것을 회사에서 배웠다. 회사는 나에게 아주 좋은 학교이자 위대한 스승들을 많이 만나게 해 주었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가르침을 준 스승들)
삶은 때론 투쟁이었다. 잔혹하고 맹렬한 투쟁. 나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키려면 강해져야 했다.
한편, 회사는 자존감을 완전히 바닥으로 내던져 버리기에 최적의 곳이기도 했다. 나는 모임에 나가 감정을 나누고 프로그램을 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살자. One day at a time."
이직을 하고 나면 아무리 경력직이라고 하더라도 적응 기간이라는 게 필요하기 마련인데 새로 온 회사는 나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는 상사 복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인데 회사에서는 유독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로운 팀장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내가 첫출근한 다음날부터 성과를 강요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자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고 교묘하게 몰아붙였다. 나보다 연차가 낮은 직원에게 내가 무능하다는 험담을 하고, 일을 하다 막히는 부분을 얘기하면 내가 일을 못해서 그렇다는 식의 피드백만 받았다.
구인공고에 쓰였던 일과는 무관한 업무가 매일 쏟아졌다. 도무지 이게 뭔지 정신도 채 차리기 전에 또 다른 업무, 보고, 기획의 연속이었다.
명확하지 않은 업무 지시와 어색한 사람들, 아직 채 파악하지 못한 업무 시스템 등등 거의 매일 강펀치를 맞는 심정으로 출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당시에는 퇴근할 때마다 퇴사를 생각했다. 이렇게 다니는 게 맞는 걸까? 회사에 잘못 들어온 것 같다. 어쩌자고 인정받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걸까? 어떻게 해야 하지?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같은 팀의 후배들은 내가 지금 당장 사표를 던지더라도 다 이해한다고 말했다. 버티고 있는 내가 불쌍하다고도 했다. 내가 불쌍한 사람인가? 나는 그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들어오자마자 달라진 업무 때문에 헤매고 있는 것이 불쌍할 일인가?
이런 상황에서 나를 지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내가 왜 불쌍한 사람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무언가 매우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고에 있던 업무는 하나도 주질 않았다. 상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그걸 스스로 알아내지 못한 내 탓이라고 했다.
나는, 회복 프로그램에서 배운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만두느냐, 그만두지 않고 여기서 하나라도 프로젝트를 만들고 가느냐의 기로에서 두 번째 옵션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 회사에 이직하기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었다. 나는 인정받고 나름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불안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기회로의 도전을 선택한 것이었다.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뭐가 됐든 끝까지 한번 해 보기로 했다. 포기는 조금 더 이따가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상사는 정말 악덕한 사람이었다.(경력이 10년 가까이 쌓인 지금 돌아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는 상대의 심리적인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서 자신에게 굴복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능력하고 농땡이를 피워 프로젝트가 결국 실패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 사람이 한 말이 나와 무관하고, 그는 비열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런 식의 평가를 거의 매일 들은 나는 결국 자괴감에 빠졌고 과연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 것인가를 매일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나의 자존감에 매우 즉각적이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정말 괴로운 하루하루였다.
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거의 사직서를 내기 직전에 조직 개편이 있었고 곧 새로운 팀장을 만나게 되었다.
‘만세!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구나.’
더 나쁜 상사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에는 팀장이 아니라 본부장이 나를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다.(아마도 전팀장이 나에 대한 어떤 평판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우리가 하는 업무나 사업의 디테일은 알지 못한 채로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대하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는 종종 사업의 실패를 언급하며 그것이 마치 나의 책임인 냥 말하곤 했다. 사실상 나에게 100%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깎아내렸다. 사업의 실패가 어째서 팀장이나 팀의 책임이 아닌, 입사한 지 고작 1년이 넘은 내 책임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는 권력을 가진 자였고, 나는 힘이 없었다.
본부장은 능수능란하게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수치심을 주고는 나와 마주할 때는 무척이나 비즈니스적인 미소로 대했다. 그는 반드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만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나에게 모욕을 주었다. 더불어 내가 기획한 모든 프로젝트를 통과시켜 주지 않았고 나는 점점 할 일이 없어졌다. 생존과 직결된 파워 게임에서 나는 철저하게 약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