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단계. 더 이상 두려움 때문에 도망치지 않을 거야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입사를 제안해 준 두 군데 회사 중에서 고민 끝에 1순위였던 회사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는 일하기에 만만한 시스템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그들이 말한 것처럼 실무 경험도 부족하니 두 배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혼도 나고 크고 작은 성과도 내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회복 프로그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건강하다고, 많이 회복되었다고 말해 주었지만 나는 누구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프로그램을 하고 모임에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여전히 회복이 필요했다.


회사란 세렝게티 못지않은 약육강식의 세계이므로 두려움이 많은 나, 불안한 나, 믿음이 부족한 나, 눈치 보는 나를 직면하고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실천해 볼 기회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게 주어지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6단계. 신께서 이러한 모든 성격성 결점을 제거해 주시도록 완전히 준비했다.
7단계. 겸손하게 신께서 우리의 단점을 없애 주시기를 간청했다.






내가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회사에도, 모임에도)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비교가 되고 일도 많이 생기니 그런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절박했다. 수없이 떨어졌던 면접의 경험이 나를 각성하게 했고, 나는 그 기회가 정말 소중했다. 귀중한 기회를 준 곳이니 만큼 열심히 일해서 실력을 쌓고 싶었다. 모두들 아쉽다고 입을 모았던 그 실무 경험. 그 경험을 남들보다 빨리, 제대로 쌓아야만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나에게 기회를 많이 주었다. 그만큼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다. 고작 입사 2년 차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다. 정말 일뿐인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2년의 지나자 소위 말하는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주어진 일을 주도적으로 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번은 나를 미워하다 못해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팀장이 나를 불렀다. 회사는 연간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큰 행사를 준비 중에 있었다. 대부분 사업 계획 발표는 팀장급이 해 왔는데, 이번에는 나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눈치가 빠른 나는 그녀가 중요한 자리에 나를 세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하고 한번 긴장하면 패닉에 가깝게 얼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쯤 나는 업무 자신감이 최고치에 다다른 상태였다. 뭐든 배우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입사 이후 해 온 많은 일들로 이미 증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도 할 수 있다. 누군가 한다면, 나도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녀의 교활한 꾀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제까지 나의 역량에 대해 잘 모르던(당연히도 팀장은 내 성과를 자신의 성과로, 팀 내의 실수는 내 실수로 보고해 왔다.) 임원급에 나를 어필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자 오기가 생겼다.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내가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한다는 건 사실이었다. 발표공포증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고 들면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스크립트를 든 손이 떨려 패닉 상태가 되었다. 영어 학원에서 스피치 발표를 할 때도 너무 떨리니까 나를 쳐다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한 후에야 겨우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지금 생각하면 아이러니인 건, 늘 발표 평가가 좋았다. 그럼에도 나를 믿지 못하고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생각하다 보니 공포증이 생긴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면 떨리더라도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연습하자.


수백 번 연습했다. 과장이 아니다. 정말 수백 번이다. 동료들은 나에게 지독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징그럽다고 했다. '니들이 그렇게 말하든 말든, 나는 이걸 해내야겠어. 나의 두려움에 직면하고, 더 이상 두려움 때문에 피해 다니지 않을 거야.'


아침에 출근하면 물 한잔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가 하루 종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였기에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혼자서만 연습하다 보니, 긴장될 때의 상태가 가늠되지 않았다. 옆 부서에 부탁해 몇 명을 앉혀 놓고 해 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 평가도 좋았다. 긴장될 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가쁘니까 오르막을 오르면서도 해 보자. 마침 집 근처에 오르막 길이 있었다. 퇴근길이면 일부러 그 길을 내려가 다시 오르며 연습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제법 말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심장이 뛰는 것에 익숙해지고, 숨이 가쁠 때 말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스크립트부터 읊으니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밥 먹으면서도 중얼중얼,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도 중얼중얼 외웠다.


발표를 며칠 앞둔 날 엄마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떨어져 살면서 서로 좋은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사이가 좋진 않았어도 나에게는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고 애쓰는 게 느껴졌다. 내가 먼저 회복되는 것이 중요했으니, 두 사람 문제는 두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러자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지고 있었다.


"너무 떨려. 다른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만 발표하던데, 나는 왜 이렇게 떠는 걸까? 내일 발표를 망칠까 봐 정말 무서워."


나의 부모가 그들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내게 최선을 다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무지했던 그들이, 아프고 찢긴 그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나를 위해 내편에 서 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나의 두려움 앞에 엄마와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서 기도할 때 정말 떨리더라. 모두들 떨려. 그런데 떨려도 하는 거야. 안 떨리는 게 아니라. 우리 딸은 말을 잘하니까, 조금 떨려도 곧 잘할 거야."


"아빠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땐 떨려. 만약에 필요하면 안정제를 처방받아서 먹는 것도 좋지. 누구나 떨리고, 떨리는 건 당연한 거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해. 잘 못하면 또 어때? 했다는 게 중요한 거야."


나는 두 사람의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받고, 만약 발표를 망치더라도 절대로 나를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두려움에 직면하고 '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 길을 택했고, 최선을 다 했다. 설령 망치더라도, 최선을 다 한 나는 실패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백 명이 넘는 업체 대표님들을 모아 놓은 신사업 발표에서 기립 박수를 받았다. 대표님이 내년에는 유명 연사를 부를 것 없이, 내가 1시간 특강을 진행하는 것도 고려해 보겠다고 하셨다. 다른 업체의 대표님은 나에게 찾아와 혹시 대기업에서 오신 분이냐고 물었다. 주간 업무 회의에서 직원들이 이렇게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사람을 처음 본다고 칭찬했다. 이 일로 나는 2년 만에 과장으로 조기 승진을 하게 되었다. 회사 설립 이례 최초의 조기 승진자였다.


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최선을 다 하고 그 결과를 맡겨 버리니 아쉬운 게 전혀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보상이 주어지니 인생이 참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세상이 아주 신나는 놀이터 같았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나를 미워했던 팀장은 이 일로 나를 포기했다. 포기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를 괴롭게 하려는 시도를 모두 멈추고, 나에게 마음을 조금 열어준 것도 같다. 그리고 그녀는 곧 퇴사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합격 불합격 불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