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후원자와 4단계를 하기 전에는 긴장되기까지 했다. 워낙에 악명 높은 단계인 데다가 '도덕적 검토'가 뭔지 감도 잡기 어려웠다.
4단계. 두려움 없이 우리 자신에 대한 도덕적 검토를 했다.
후원자는 나에게 4단계 목록을 빠짐없이 작성해서 어느 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거기가 조용해서 4단계를 하기 좋을 거라고.
'도대체 4단계가 뭐기에 이렇게 비장한 거지?'
4단계 목록은 좀 복잡하긴 해도 어려운 건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과거에 내게 일어났던 사건들을 사람별로 정리하는데 아버지, 엄마, 오빠, 친구들 이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는 것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고통스러운 감정까지 함께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 씨발.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니들 때문이었어. 다 니들 때문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글인데도 욕하니까 후련한 건 왜인가!)
과거에 내게 있었던 개 같은 일들을 후원자에게 다 이르기라도 하려는 듯, 스프링 노트 반권 가까이 가득 채우고 나서야 목록 작성이 끝났다.
5단계. 솔직하고 정확하게 우리가 잘못했던 점을 신과 자신, 또 어느 한 사람에게 시인했다
그렇게 어느 호텔의 1층 레스토랑에서 몇 시간이고 그 목록을 읽으며 열변을 토했다. 그들이 얼마나 나에게 잘못했는지. 내 과거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모조리 다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봐 봐요. 진짜 내 인생은 완전 엉망진창이었다고요. 이러고도 사람이 멀쩡히 살 수 있었겠어요? 내가 이렇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해요. 아니, 어느 누가 이런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겠냐고요. 죽지 않고 산 게 용하지."
그러나 내가 지난 과거에 대해 고자질하면 고자질할수록, 프로그램은 나의 결점을 바라보게 했다. 쓸데없는 연민, 자기중심적인 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과거의 나, 나. 나..
부모는 부모의 삶이니 그렇다 치고, 나는 도대체 나에게 왜 이렇게 한 걸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꿔야 할 나의 태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4단계는 과거를 고자질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나의 과거를, 나의 과오를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나의 부모가 이렇게 병든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의 부모였다. 내가 기꺼이 나의 과거를 후원자 앞에,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실 위대한 힘(신) 앞에 드러내기로 결정하자 내가 무엇을 바꿔가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4단계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의 이야기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니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건 20대 초반 멋모르고 해맑았던 때 품었던 작은 로망 같은 거였다. 친구와 청계천을 걷다가 점심시간에 우르르 몰려나온 직장인들을 보고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커피 한 잔 마시는 그 시간이 회사 생활의 몇 안 되는 낙인 줄도 모르고 그냥 멋있어 보였다. 나도 그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마침 공부하며 관심이 생긴 분야가 있어서 관련된 회사를 몇 군데 추려 지원했다. 열심히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 오는 곳은 마땅치 않았다. 30대 초반의 무경력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회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지독한 우울증으로 20대를 거의 통째로 날려 버린 사람이었다. 이력서에 쓸 것이 영 없었다. 그나마 있는 몇 개의 경험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적었다.
연락은 대부분 오지 않았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실패자인데. 어차피 해 봐야 안 되는 거 아닐까?
어렵게 서류를 통과해서 면접에 가 보면 ‘지금 당장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며 불합격을 통보했다. 이런 걸 희망고문이라고 하던가. 면접 내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질문하던 면접관은 꼭 마지막에 가서 ‘회사에서 일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이 아쉽다.’고 기를 죽였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불합격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하도 많이 떨어져서 불합격 문구를 보고도 무덤덤할 지경이었다.
한 번은 한 회사에서 내 전공을 매우 반가워하며 면접을 보자고 불렀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가 절실했기 때문에 나름 회사에 대해 공부도 하고 깔끔한 옷을 챙겨 입고 찾아갔다. 대표라는 사람이 나와 “프로필이 마음에 드니 이 시험만 통과하면 바로 우리와 일할 수 있을 거예요.” 라며 시험지 한 장을 내밀었다. 시험지에는 난생처음 보는 용어들이 가득했다. 실무를 해 본 사람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고민하던 나는 성실하지만 엉터리인 답지를 냈다.
그러자 참 무안하게도 나를 면접장에 덩그러니 남겨둔 채로 긴급회의가 열렸다. 대표가 노발대발하는 소리가 들리고 눈치 빠른 나는 직감적으로 또 한 번 불합격 통보를 받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불합격 통보로 끝낸 것이 아니라 아주 모욕적인 방식으로 나를 쫓아냈다. 정말로 쫓아냈다. 그냥 ‘우리와 함께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고 말하면 될 것을 가방을 쥐어 주며 나가라고 했다. “이건 너무 아니잖아요?” 하면서 눈앞에서 시험지를 흔들어대더니만 나가라고 문밖으로 나를 밀어내고 쾅, 문을 닫았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멍하게 서 있는데 하필 비가 쏟아졌다. 쏴아아 아-
내리는 비를 맞으니 엉엉 눈물이 났다.
아직도 그날이 기억난다. 그런 시간을 버텨 온 내가 무척이나 대견하고 기특하다. 포기하고 싶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무척 쓰지만 좋은 약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시간들이 내게 필요했다는 걸 알겠다. 그러나 당시에는 얼마나 모욕적이었던지 버스에 앉아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펑펑 울었다. 가뜩이나 자존감이 낮아서 조까 마인드니 뭐니 하며 노력해서 겨우 새싹을 틔웠는데 아주 짓밟아 버린 꼴이었다. 이럴 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무런 사심 없이 나의 행복을 바라고 나를 위해 냉정하게 얘기해 줄 사람. 부모님이다.
집에서 독립하고 난 후 나와 부모님과의 관계는 오히려 좋아졌다. 두 사람은 여전히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난리도 아니었지만 물리적으로 벗어나 있었으니까 숨통이 트였다. 가끔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화로 의논하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면 됐다.
이런 ‘거리’ 덕분에 나에게 해가 되는 영향을 줄이면서도 부모-자녀 간의 유대감과 이해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를 내 부모가 아닌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시간은 정말 고통스럽지만 매우 의미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자주 부모님을 용서하고 나 자신을 용서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부모님과의 관계를 회복해 나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땐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유머러스하고 이성적이며 경험이 풍부해서 직장생활의 노하우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상담을 할 때마다 아주 현명하고 도움 되는 조언을 해 주셨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내 주제에 회사는 무슨 회사. 그냥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아야 하나 봐.”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문제가 있었고, 가정을 등한시하며 밖으로만 도는 사람이었지만 이럴 때 자식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는지 잘 아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어. 불합격이라도 그걸 정중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건데 그런 회사는 안 가는 게 나았다."며 내 편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정말 진지하게, 그리고 나를 타이르듯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 아르바이트가 네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야? 이제껏 너는 늘 인생이 불행하다 우울하다 힘들다고만 했는데 비록 많이 떨어졌지만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다니는 동안 네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처음 본다. 조금 더 해 봐라. 될 때까지 해 봐라. 네 인생에서 될 때까지 노력해 본 적이 없지 않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해 봐라. 세상은 거저 주는 것이 없는데 그까짓 몇 번 떨어진 걸로 네 인생 끝나지 않는다. 용기를 내고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될 때까지 도전해 봐라.”
아버지는 나에게 사회생활의 선배로서, 딸을 사랑하는 아빠로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었다. 맑은 정신의 아버지는 늘 세상을 강한 용기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나약한 사람은 살기가 힘들다고,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에 강해져야 한다고 자주 말해 왔었다. 불쌍한 우리 아빠. 이렇게 지혜롭고 좋은 사람인데 술은 그를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아빠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했고 존경하면서도 증오했다.
관계는 어긋나고 뒤틀려 버렸지만 그 안에도 희망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선한 마음이 있고, 신을 알고 계시며 유머 감각이 있다. 그리고 방법은 서툴지언정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충만했다. 증오와 분노를 벗겨 내고 나자 우리 가족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 이런 본래의 모습대로 살 수 없는 걸까. 마음이 아팠다. 이 병이 도대체 무엇인지,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그렇게 팍팍한 인생살이에 술만이 유일한 위로였을지 모를 일이었다.
한편, 아빠의 말은 좌절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맞다. 나는 이제껏 죽을 만큼 노력해 본 적이 없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그럼 그렇지.’ 하며 그대로 포기하고는 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가서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무슨 일이든 해 봐야 안 되겠지, 지레 짐작하고 포기해 버렸다. 뭐든 포기가 빨랐다.
그건 사실 도망치는 거였다. 나는 늘 될 때까지 노력하기보다는 도망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면 적어도 실패했다는 소리는 안 들어도 되니까, 안 해서 그런 거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변명도 할 수 있고 숨을 곳이 생긴 것 같아 더 깊은 곳으로 도망쳐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도망만 치다가 인생을 끝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용기가 생겼다. 내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것을 처음 본다는 아빠의 말은 가슴을 뛰게 했다. 그렇게 좋아하고 원한다면 다시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인데 뭐 어때. 떨어지면 떨어지라지, 아무렴 이 많은 회사 중에 단 한 군데도 갈 곳이 없겠어? 될 때까지 해 보자.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지 한 번 실험해 보자.’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라면 이런 야심 찬 다짐 후에 바로 빛나는 합격의 영광이 찾아오며 화면이 전환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불합격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좌절하지 않았다.
희망적인 것은 일단 면접에 가면 대부분은 나를 채용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경력이 1년이라도 있었다면 당장 채용했을 텐데 실무가 급한 상황이라 가르치면서 일을 하긴 어렵다는 게 대부분의 불합격 사유였다.
어떤 곳은 뒤늦게 문자를 보내와 꼭 같이 일하고 싶으니 나중에라도 실무 경험이 생기면 연락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응을 근거로(?)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았다.
초조한 시간을 보내던 중에 파트타임 자리가 생겼다. 급여는 적었지만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언뜻 봐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 팀장이 면접 자리에서 앞으로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느낌이 좋았다.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일,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아쉬웠던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나도 이제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점심을 먹고 청계천을 산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했다. 드디어 회사원이 된 것이다!
그렇게 일을 배우면서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도 계속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신기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일도 열심히 배우고 계속해서 이력서도 냈다. 두 달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오랜 전통의 기업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동시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회사에서도 정직원 제안을 했다. 두 군데 모두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모두들 아쉬워했던 경험! 바로 그 실무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안 될 때는 하염없이 안 되더니 터지니까 동시에 막 터진다. 인생이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골라서 갈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너무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내 인생에도 빛이 드는구나.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