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단계. 자존감 타령 좀 그만하라지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패기 있게 회복에 목숨을 걸었다, 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피에, 뼈에, 골수에 새겨진 과거는 망령처럼 되살아나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잔인하게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럴 때마다 계속해서 과거의 사슬을 끊기 위한 노력(오늘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태도를 바꿔 나가는 것)을 할 뿐이었다.


속도는 놀라웠다. 내가 놀란 게 아니라 멤버들이 놀랐다. 나의 경험담은 사람들을 울렸고 자신의 자녀를 이해하게 해 주었다. 내가 그들을 보며 엄마를 이해한 것처럼 그들도 나를 보며 자녀를 떠올렸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듣고 배우고’ 있었다.


회복의 속도가 빨랐다는 것은 내가 '정상'의 상태로 돌아왔다는 것,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는 것, 해 보고 싶은 것, 가슴 벅찬 일이 생겼다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했다.

가장 불행하던 시절에 나는 끊임없이 슬프거나 우울했던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없었다(無)고 말하는 게 맞았을 테니까.


녹음이 푸르기 시작한 어느 봄날, 문득 벚꽃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벚꽃이 이렇게 예뻤구나, 녹음이 푸르다 못해 눈부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졌다. 내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나서 나는 곧바로 이 사실을 모임에서 나눴다. 세상이 컬러풀하게 변했다는 것, 이전의 나는 세상이 온통 회색이라고 일기장 가득 써 놓았는데, 이제 내 세상은 오색 빛깔을 찬란하게 뽐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격스럽게 말했다. 마침내 나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정말 많은 걸 느끼고 있었다.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심장. 세상은 그대로인데 그걸 바라보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회복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위대한 힘(Higher power)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종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특유의 종교 문화, 기복 신앙, 외식하기 좋아하는 종교인들에 질린 거지 신을 떠난 적은 없었다. 내가 알 때나 모를 때나 신은 늘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었다. 내가 겪는 고통에도 이유가 있을까? 나는 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까? 그분의 뜻을 전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연한 세상이 당연하게 보이지 않았던 나에게 지금의 찬란한 세상의 빛깔이 감격스러운 건 긴 어두움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신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종교 생활을 했는데. 내 청소년기는 각종 종교 봉사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기꺼이 나의 재능(?)을 기부했다. 그 결과가 고작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니. 신은 참 자비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가치 교환 몰라요? 나는 다 드렸는데, 당신은 왜 하나도 안 주나요? 단 하나도.


프로그램은 특정 종교를 언급하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를 떠나 인간을 초월한 힘에 대해 '위대한 힘'으로 표현할 뿐, 그것이 알라든 부처든 예수든 모임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이란 실로 대단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을 우리 마음대로 규정짓고 형상화한다. 누군가는 신을 벌하고 분노하는 존재로, 누군가는 한 없이 관대하고 자비로운 존재로 생각하니 말이다. 각자가 이해하게 된 대로의 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다만, 회복을 위해선 왜곡되고 병든 나를 뛰어넘는 어떠한 존재가 나를 도울 것이며, 그 존재는 세상 만물을 주관하고 나의 생명도 기꺼이 맡아 주시리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2단계. 우리보다 위대하신 힘이 우리를 본 정신으로 돌아오게 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3단계. 우리가 이해하게 된 대로, 그 신의 돌보심에 우리의 뜻(의지)과 삶(생명)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2단계에서 말하는 '본 정신'의 의미를 이해하자 정신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이제껏 내가 반쯤 미친 정신으로 살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세상이 이토록 눈부신데 온통 회색 빛깔이라고 생각했으니, 도대체 나는 얼마나 병들었던 걸까.


죽음을 떠올리던 그때,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내가 정말 많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 순간에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살아 보기로 결심하고 연고도 없는 호주로 훌쩍 날아간 그 순간에도, 다시 돌아와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어떻게든 건강해지리라 다짐한 그 순간에도 나를 일깨운 건 분명 나 스스로의 힘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를 이해한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던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존 브래드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네가 태어났을 때 신께서도 너를 보고 기뻐하셨단다.



내가 알지 못한 순간에도 나의 존재를 기뻐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큰 힘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실제이든 아니든,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 내가 얻게 되는 위로와 희망의 가치는 그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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