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내가 한국에서 11년, 미국 온라인에서 1년이 넘게 회복 프로그램과 자조 모임에 참석하며 많은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 자녀들을 만난 결과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마음이 약하다는 것
지나치게 착하고 여리고 눈치를 보는 우리들. 그건 어쩌면 불안정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제였을지 모른다.
분노와 원한, 원망과 증오가 걷힌 후에는 죄책감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잘못해서 부모의 삶이 이렇게 된 것만 같은 기분, 내 존재가 두 사람에게 짐처럼 느껴질 것 같은 죄책감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게 만들고 나의 가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망나니처럼 날뛰고 나면 엄마는 나를 붙잡고 신세를 한탄했다. 새벽이고 밤이고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앉혀 놓고 아버지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지긋지긋한지,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일탈을 멈추게 할 수 있을지를 하소연했다.
내가 독립해서 따로 살게 된 이후에는 전화였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자 시작한 대화는 이내 아버지에 대한 험담과 신세한탄으로 이어졌다. 영락없었다.
나의 회복에 방해가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자 마음이 아팠다. 그러면 엄마는 누구에게 마음을 푼단 말인가. 나라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듣는 게 그렇게 힘든가. 좀 들어드릴 수도 있지 너 참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다.
마음을 짓눌렀다. 이렇게까지 선을 그어도 되는 걸까. 저러다 엄마가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엄마는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하소연이 길어지면 전화를 끊고 집에도 가지 않기로 결정한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닌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죄책감 때문에 이전과 같이 살 수는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선택권이 있음을 기억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아버지와 계속해서 같이 살기로 한 것은 내 선택이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회복 프로그램은 ‘책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단계. 우리가 알코올에 무력했으며, 우리의 삶을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시인했다.
내가 무력했던 것은 알코올, 알코올을 마시는 아버지, 아버지와 여전히 같이 사는 엄마.. 나를 제외한 모두였다.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나의 삶을 수습할 수 없어 엉망진창인 삶에서 도망가려고 했었다. 다른 사람을 불쌍해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너나 잘하세요.”를 기억해야 했다.
삶이 망가져서 죽음이니 뭐니 하는 상황에서 누구를 불쌍해한단 말인가. 오만이었다. 내가 얘기를 들어주면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란 거였지만 마음이 풀리긴 커녕 나까지 병들고 있었다.
부모의 삶과 분리되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게 프로그램은 ’네가 먼저 회복하면 건강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Live and Let live.
살고, 살게 하자.
그 후로도 문득문득 엄마가 불쌍해질 때마다(아버지에
대한 연민은 한참 뒤에서야 생겼다.) 내가 건강해지면 엄마를 건강하게 도울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집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쳐버릴 것만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