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 모르겠다, 조까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

나는 눈치가 매우 빠른 편이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 말의 의도, 본질까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잘 파악한다. 이런 나를 보며 통찰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꿰뚫어 봐서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눈치도 많이 본다. 저 사람이 지금 불편하진 않은가, 나와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있는가, 눈치 보는 사람들은 늘 초점이 남에게 가 있다. 나의 감정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니 정작 자신을 돌보는 에너지는 쉽게 바닥 나 버린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삶이 무너져 버린 이상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시간에 나를 좀 더 챙겨주고 싶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그리고 사람이 잘못을 좀 할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맨날 검토하고 반성해. 그 사람이 기분 나빴으면 말을 하거나 나랑 관계를 끊겠지,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계속 곱씹고 반성하는 거야. 제발 이제 그만하자.’


스스로를 검열하고 채찍질하고 점수 매기는 일을 멈춰야 했다. 가혹한 심판자가 나 자신이라면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생각들이 떠오르면 반사적으로 ‘조까’라고 생각했다.



에라 모르겠다, 조까라 그래



희한하게 이 말만 하면 정말 조깐 것 같았다. 뭐가 됐든 아무것도 상관이 없어졌다. 나는 좀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다 조까라.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완벽과 거리가 먼 데다가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에라 모르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뭐, 어쩔 거야. 에라 모르겠다, 조까라 그래. 정 안 되면 싫은 소리 한 번 듣겠지 뭐. 아님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뭐, 그런다고 안 죽는다. 조까라 그래!’



매일 나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토닥였다. 정말 매일 했다. 내가 못마땅할 때는 더 괜찮다고 말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정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흔하디 흔한 실수 조금 한 것뿐이다. 대단히 죽을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건 불가능한 목표이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어쩜 인간적이기도 하지, 실수도 귀엽네.' 이렇게 나를 풀어주다 보니 정말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관대한 눈으로 보기 시작하자 세상은 온통 실수투성이였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도 하고 나도 누군가 때문에 기분 나쁘기도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었다. 완벽하게 살려고 노력해 봐야 완벽함의 기준이란 건 애초부터 없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는 대체 누가 만들어 놓은 완벽을 추구하며 살았던 걸까? 그 완벽함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누구에게 뭘 보여 주려고? 왜 완벽해져야만 하는데?


나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나에게 그걸 기대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잣대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에게 관대해질수록 남에게도 관대해졌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실수투성이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실수 좀 하지 뭐 까짓 거. 과감하게 실수하고 자책 대신에 ‘조까 마인드’를 가지자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것 같은 편안함이 찾아왔다.


매일 속으로 '세상아, 조까라!(난데없이 욕먹은 세상에게 미안하다.)'를 외치면서 떨리면 떨리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수업 시간에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다 보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여태까지 부족한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썼던 게 허무할 정도로 별 게 아니었다.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그래, 나 잘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뭐 어때. 너는 뭐 다 잘하냐?'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 한 하루하루를 지나 실수투성이인 논문을 통과하고 나는 결국, 무사히 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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